[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최종 결과물인 각료선언이 채택됐다. 이번 선언문은 예정된 각료회의 일정을 이틀이나 넘기며 도출해낸 결과이며 ‘WTO 무용론’을 당분간 잠재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선진국’ 입장만 철저히 대변하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6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2차 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이번 각료회의는 15일까지 예정돼 있던 일정을 이틀이나 연장하면서, 7개 의제별 각료선언과 각료결정을 채택했다. 이번에 채택된 선언문은 △팬데믹 대응(각료선언) △식량위기 대응(각료선언) △위생검역협정(SPS)(각료선언)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제안서(각료결정) △코로나 백신 지적재산권(각료결정) △수산보조금 협상(각료결정) △전자적 전송물 모라토리움(각료결정) 등 모두 7개 의제다. 각료선언은 WTO 전 회원국 의견 합치 하에 채택된 최종 결과문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7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 대응 선언은 코로나19 이후 미래 팬데믹에 대한 WTO 차원의 대응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으로, 수출제한 자제·투명성 강화·무역원활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백신 관련 특허도 기존 WTO 협정에 비해 개도국의 경우 완화된 요건 하에 강제실시(긴급상황에서 적절한 보상 전제로 특허권자의 허가 없이 특허실시 허용)를 시행하도록 허용했다.
농업·먹거리 분야는 △식량위기 대응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제안서 등이 있는데, 농산물 교역에 있어서 불필요한 수출제한·금지 조치를 자제하고 식량안보를 위한 각국의 긴급 조치가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시행되도록 했다. 특히 빈곤·기아퇴치·식량안보 달성 등을 위한 WFP의 인도적 식량지원은 수출제한 조치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위생검역협정(SPS)은 WTO SPS 협정상 권리의무를 재확인하고, SPS 이행개선을 논의키로 했으며 이에 따른 신규의무 부과는 없다.
양지연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은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WTO 선언문에 대해, ‘선진국’ 입장에서는 큰 승리이지만 ‘개발도상국’ 입장에선 큰 패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인 농민단체 비아캄페시나(비아)의 소속 농민들은 이번 WTO 선언문에 대해 “코로나19 전염병, 가속화되는 기후변화, 다가오는 식량 및 경제위기 등의 중요한 문제는 또 한번 무시됐다”며 “식량불안정에 대한 긴급 대응 선언 역시 기아와 영양실조의 구조적·조직적 원인 해결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선언문 10항은 국내 식량비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개발도상국에 중요한 공공비축프로그램 및 공공조달에 관한 결정은 차기 각료회의까지 또 미뤘다”면서, 결국 WTO가 여러 위기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시켰다는 주장이다.
특히 선진국 중심주의가 이번 선언문 채택에서도 노골화됐다는 비판이다. 본회의 기간 중 선언문 합의에 실패하고 이틀 연장한 끝에 합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개도국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비아 소속 단체들과 선언문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면서 “다음주(6월 말)에는 비아 차원의 공식 성명서가 나올 예정이다. 이번 선언문의 요지는 한마디로 ‘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무역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국가가 농민을 위해 개입하는 모든 형태조차 ‘무역을 왜곡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곧 식량주권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질타했다.
비아캄페시나는 이번 WTO 각료회의 기간에 비아 소속 농민들과 스위스 시민단체 등 400여명이 참여한 WTO 반대 시위를 하는 등 ‘WTO 해체’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