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언니네텃밭’, 아직 식탁에 오르지 못한 ‘여성농민의 꿈’

언니네텃밭 꾸러미공동체 16곳→10곳
식문화 변화로 농산물꾸러미 소비 줄어
지자체가 인력·재정 측면에서 지원해야

  • 입력 2022.06.05 18:00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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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달 30일 강다복 언니네텃밭 김제공동체 대표(맨 왼쪽)와 여성농민들이 작업장에서 꾸러미에 들어갈 달걀을 포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강다복 언니네텃밭 김제공동체 대표(맨 왼쪽)와 여성농민들이 작업장에서 꾸러미에 들어갈 달걀을 포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정오가 막 지날 무렵 찾아간 전북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언니네텃밭 김제공동체(대표 강다복, 김제공동체) 작업장. 고령의 여성농민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들은 유모차와 자동차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내리더니 작업장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농산물을 소분해 흰 봉지에 넣고 무게를 잰 뒤 꾸러미 박스에 넣었다. 이날은 김제공동체가 꾸러미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이름 써논 거 잘 보고 넣어.” “상추 먼저 넣고 완두콩은 아이스팩 가까이 넣으세요잉.” “여기 부추가 두 개 들어 있잖혀. 그럼 숫자가 안 맞잖혀.” “차근차근 좀 하자니까요.”

김제공동체를 이끄는 강다복(61) 대표는 농산물을 꾸러미에 넣고 있는 ‘언니’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현재 김제공동체에는 강 대표를 포함해 6명의 여성농민이 일하고 있다. 평균 나이는 69세. 꾸러미 주문이 감소하면서 55세 막내가 정기적으로 나오지 않게 돼 환갑이 넘은 강다복 대표가 실질적인 막내가 됐다. 강 대표는 생산뿐 아니라 물품확인부터 택배 송장 출력, 정산까지 도맡고 있다. 꾸러미에 물품이 빠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배송 가는 등 ‘사고’가 나면 뒷수습도 강 대표 몫이다.

오후 2시. 택배기사가 작업장에 도착하자 언니들은 한숨을 돌렸다. 이날 꾸러미는 데친 얼갈이배추와 완두콩, 상추, 청경채, 오이, 부추, 우리콩두부, 달걀 등 8종류 농산물로 구성됐다.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 생산한 무항생제 유정란 달걀을 제외하면 모두 언니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꾸려진다. 완성된 꾸러미는 매주 또는 격주로 배송되는데, 이날은 전국 22곳 도시 소비자의 식탁으로 향했다.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지역 소비자가 대부분이다.

언니네텃밭의 정식명칭은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다. 전체 농업 인구 가운데 여성농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생산자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언니네텃밭은 여성농민의 권익 보호와 지위 향상을 위한 방법으로 텃밭 농사를 떠올렸다. 여성농민들은 지역별 공동체를 구성해 소규모 텃밭에서 생태농업을 추구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칙으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 지속가능한 농업 환경을 위한 노력이다. 이들은 생산한 농산물을 꾸러미에 담아 도시 소비자에게 보냄으로써 생태농업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받는다.

줄어드는 꾸러미공동체

“못혀. 그만혀.”

작업을 마치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강다복 대표가 언니들을 향해 “우리 7월까지만 하고 그만할까” 묻자 공동체 맏언니인 김정임(81)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2009년 강원 횡성에서 시작된 언니네텃밭 꾸러미공동체는 현재 강원, 경북, 경남, 전북, 전남, 제주 등 전국에 10곳이 운영되고 있다. 많을 땐 16곳에 달했지만,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원과 충북의 공동체 2곳이 문을 닫았다. 강다복 대표는 “다음은 우리가 중단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강다복 대표는 여성농민의 권리 향상과 자립을 위해서도 꾸러미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성농민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언니들이 언니네텃밭에 오기 전에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타 썼는데, 내가 본인들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농민은 농사를 지어도 남편이 돌아가면 그제야 농협 조합원이 된다. 그런데 (언니네텃밭을 하면서) 본인 명의로 통장이 생기니까 어머니들도 자긍심이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얼마 전 몸이 편찮아 그만둔 84세 언니는 꾸러미 판매한 돈을 모아서 손주 대학 갈 때 컴퓨터 사라고 150만원 줬대. 그랬더니 명절 때 원래 할아버지 부르면서 들어오는 손주가 이제 할머니 부르면서 온다더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언니네텃밭은 방송과 언론에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김제공동체의 경우 많을 땐 8명의 생산자가 꾸러미를 160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공동체가 꾸려진 2009년부터 함께 일한 김형순(81)씨는 “단체로 옷도 사 입고 같이 밥 먹기도 하고, 다 같이 모여서 하니까 좋지”라면서도 “그런데 요즘엔 보따리(꾸러미) 주문도 없고 돈도 안 벌려”라고 말했다.

언니네텃밭 김제공동체 맏언니 김형순(81)씨가 직접 재배한 완두콩의 껍질을 까고 있다.
언니네텃밭 김제공동체 맏언니 김형순(81)씨가 직접 재배한 완두콩의 껍질을 까고 있다.

“내 이름 쓸 줄도 몰러. 국민학교도 못 나왔어. 콩이고 팥이고 고추고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 살았지. 여기서 같이 하기 전에는 혼자 따고 다듬고 씻어서 전주 남부시장으로 가서 팔았어. 한 번 가려면 버스를 4~5번 갈아탔지.”

김형순씨는 전북 부안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7살에 장손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전북 김제에 정착했다. 시동생 3명과 함께 살면서 악착같이 일했다.

지금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50평 정도 되는 텃밭에서 상추와 완두콩, 쑥갓을 키우고 있다. 수익이 많진 않을 것 같다고 묻자 “내가 벌어서 어린이날에 손주들 용돈 한 푼이라도 주는 거지”라고 말했다.

81세 동갑내기 김정임씨는 “자식들이 힘든 농사 그만하고 쉬라고 했는데, 뭐라도 활동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김씨는 언니네텃밭을 만나고 처음 돈을 ‘소유’했다고 한다. 그는 “내 소유로 돈을 직접 만지는 건 처음이었지. 손주들 용돈 주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지금은 주문이 많이 없으니까 (강 대표에게) 하지 말자는 소리를 3년 전부터 하고 있다”고 했다.

‘언니네 꿈’이 지켜지려면

전문가들은 꾸러미 소비자가 줄어드는 이유로 식문화의 변화를 꼽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언니네텃밭은 1차 생산물 위주다 보니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식문화 변화로) 절대적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굳이 식당에서 안 먹더라도 집에서 간단하게 포장만 뜯으면 바로 음식으로 전환되는 ‘밀키트’도 잘 나온다. 식재료를 다듬고 무치는 그런 과정 자체에 이제 더 의미를 안 두게 돼 버린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고령화 문제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용하는 사람과 생산하는 사람 모두 나이가 들어가는데 식문화도 변하는 이런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다복 대표도 “농촌 지역에는 젊은 농사꾼이 없다”며 “실무자를 쓸 수 있는 인건비라도 꾸준히 나오면 좋은데, 여기서 나온 이익금으로는 활동비 주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어둡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도움 주겠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이렇게 여성농민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꾸려 10년 넘게 생태농업을 실천해도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여성농민들은 농촌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위상은 ‘조력자’나 ‘주변인’에 머물러 있어 농촌공동체적 대응과 이를 위한 인력·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은 최근 내놓은 ‘농촌 지역사회에서 여성농업인 지위와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여성농업인은 농업 노동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돌봄 및 관리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성농업인의 위상은 ‘조력자’ 또는 ‘주변인’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농업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민간에서의 노력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보다 조직화된 접근이 필요하다”며 “민간에서의 시도를 행정기관이 인력·재정 측면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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