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텃밭이 꾸는 꿈

  • 입력 2021.11.14 18:00
  • 수정 2021.11.14 23:42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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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언 손을 녹이는 따뜻한 차 한 잔에 웃음꽃이 폈다. 지난 9일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에 위치한 언니네텃밭 오산공동체 작업장에서 박은자 대표(왼쪽 두 번째)를 비롯한 회원들이 제철꾸러미를 싸던 일손을 멈추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신상옥, 박 대표, 권명옥(주민), 이정숙, 서근영, 한영미씨. 한승호 기자
언 손을 녹이는 따뜻한 차 한 잔에 웃음꽃이 폈다. 지난 9일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에 위치한 언니네텃밭 오산공동체 작업장에서 박은자 대표(왼쪽 두 번째)를 비롯한 회원들이 제철꾸러미를 싸던 일손을 멈추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신상옥, 박 대표, 권명옥(주민), 이정숙, 서근영, 한영미씨. 한승호 기자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오늘까지 왔다. 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이사장 박점옥, 언니네텃밭)이 만들어지고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래전부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양옥희, 전여농)은 토종씨앗을 지켜 먹거리 주권을 되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들고 토종종자를 나누는 등 최일선에 섰다.

언니네텃밭은 이를 더 확장하기 위한 전여농의 식량주권사업단으로 출발했다. 지난 2009년 4월 첫 꾸러미사업을 시작해 토종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고, 제철·토종·친환경 농산물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천하고자 했다.

또한 농민-도시 소비자들과의 직거래로 기존의 농산물 생산·유통에 대안을 제시했다. 이후 그 외연을 넓혀 GMO 반대운동이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채식꾸러미를 기획해 공유농업의 지평을 열어갔다.

언니네텃밭에서 판매되는 농산물은 꾸러미공동체와 장터공동체를 통한다. 꾸러미공동체는 잘 알려져 있듯이 지역에서 길러진 제철 농산물을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매주 꾸러미를 싸 배송하는 공동체다. 현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농산물꾸러미의 물꼬를 튼 곳이 바로 언니네텃밭이다.

장터공동체는 지역의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먹거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모델을 발굴한다. 생산자들이 농사지은 배추로 김치를 담가 저소득층에게 전달하는 기획꾸러미를 만드는 식이다. 최근 전남 구례에서도 새로 장터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초기부터 함께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생산자들로 하여금 더 철저하게 언니네텃밭의 생산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보호해줬다. 지역 공동체 텃밭에서는 무제초제 이상의 친환경 농법으로 화학비료나 석유 등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소규모 다품종으로 생산한 건강한 농산물은 곧바로 소비자에게 전달돼 불필요한 유통 마진 없이 여성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많다. 단체나 법인 없이 생산자 개인들이 모여 일궈야 하는 공동체 활동은 그야말로 좁은 길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시작한 꾸러미공동체는 전국으로 퍼져 16개 마을에서 뿌리를 내렸으나 현재 그 숫자는 10개로 줄어들었다. 또한 농촌이 처한 현실이 곧 언니네텃밭의 어려움이기도 해서 인력은 늘 부족하고 생산자들은 고령화돼 가고 있다. 돌아가시고 치매에 걸려 비어있는 공동체의 공석엔 오래도록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네텃밭을 말하며 희망을 떠올리는 이유는 언니네텃밭이 ‘개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꾸러미사업 초창기 횡성공동체는 소비자들과 계약했던 60개의 꾸러미 중 40개를 다른 지역과 나눴다. 상주·김제공동체에 각각 20개씩 분배해 소득이 3분의 1로 줄었음에도 ‘언니’들은 입을 모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열악한 공동체가 정착할 수 있도록 꾸러미를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공동체의 꾸러미를 다른 지역에 넘겨주는 행위가 바로 언니네텃밭이 갖고 있는 ‘같이’의 ‘가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니네텃밭은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함께 움직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구점숙 언니네텃밭 운영위원장은 운영위원장을 맡고 지난 8월까지 지난한 절망과 괴로움 속에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미래가 있을까’ 고민하던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 있는 지역 공동체들이 살아나고 결실을 맺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다시 새롭게 희망을 품게 됐다고.

오산 꾸러미공동체에 방문해 보니 그가 말한 희망이 어떤 모양인지 알 것도 같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움 틔우는 언니네텃밭 공동체와 머지않아 열매 맺힐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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