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곤충, 흙 상태가 ‘과정 중심 친환경인증제’의 핵심

  • 입력 2022.05.1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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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안용덕, 농관원)이 관리하는 현행 친환경농산물 인증제(친환경인증제)를 ‘결과 중심(잔류농약 검출 중심) 인증제’에서 ‘과정 중심 인증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친환경농업계의 오랜 화두다. 과정 중심 인증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친환경인증제 선진화 촉구하는 농업계

지난해 11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친환경농업 태스크포스는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기 위한 친환경농업의 역할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강화방안엔 친환경농산물 인증제 선진화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농특위가 제안한 인증제 선진화 방안은 △시험분석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 조정 △친환경인증 시 필요한 문서·기록에 대한 농민부담 완화 △생산현장의 위험평가에 따른 관리방법 도입 △국제 표준에 맞는 농식품 전문 인정기구 설립 등이었다.

현행 친환경인증제, 농관원의 입장은?

현행 친환경인증제에 대한 농관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정병석 농관원 인증관리과장은 “과거 농약을 투입한 농지에서의 잔류농약 발견 또는 비산(飛散)에 따른 농약 혼입 등 비의도적 사유로 인증표시 제거 처분을 받는 농민들로선 억울할 수 있다”면서도 “친환경농산물은 소비자들이 ‘농약·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신뢰하에 일반농산물보다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농산물”이라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이어 “어떤 이유로든 친환경농산물이라고 믿었던 농산물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된다면 소비자들은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높고, 농관원으로서도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친환경농민들이 일반농지였던 토양에서 잔류농약 성분을 제거하고, 항공방제 시의 농약 비산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농업환경평가’ 기반 인증제

친환경농민들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 인증제로 바꿔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사진은 충남 예산의 과수원에서 친환경사과를 수확하고 있는 농민들 모습. 한승호 기자
친환경농민들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 인증제로 바꿔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사진은 충남 예산의 과수원에서 친환경사과를 수확하고 있는 농민들 모습. 한승호 기자

친환경인증제 유지가 불가피하다면, 불합리한 내용의 ‘개선’은 불가능할까?

위에 언급한 농특위의 ‘강화방안’ 중 시험분석, 즉 잔류농약 검사과정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 조정과 관련해, 당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한국유기농업연구소에선 “과정 중심으로 심사방법론을 전환해도 시험분석은 당분간 실시하되, 무조건 시험분석하는 게 아니라 위험도 수준에 따라 시험분석을 시행하는 게 좋다”며 “시험분석은 친환경인증 3년차 이하의 농가에 집중하고, 인증 4년차 이상은 (시험분석을) 면제하는 게 효율적이다. 또한 농업생태계 평가, 위험도 평가 등을 기반으로 선별적 시험분석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개선 방향을 제안한 바 있다.

친환경인증제의 ‘과정 중심 전환’을 장기간 고민해 온 임석호 에코리더스인증원 대표(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이사)는 국내 친환경인증제와 유럽연합(EU)·미국 등 해외 유기농업 선진지역의 유기농업 인증제 간 주요 차이점으로 ‘농업환경에 대한 위험평가제도의 유무’를 언급했다. 임 대표가 농업환경평가 기준의 예시로 든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아이폼) 심사기준에 따르면, 인증심사원은 작물과 양분투입물의 잔재, 작물 건강 상태, 투입 물질의 증거와 상태, 흙냄새, 그리고 어떤 곤충이 돌아다니는지 등 작물과 농지의 관찰로 얻은 모든 정보를 기록해야 한다.

임 대표는 “예컨대 작물의 뿌리발달 상태를 보면 화학비료 사용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 화학비료를 사용한 곳에서는 퇴비를 사용한 곳에 비해 잔뿌리가 발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농지의 잡초군락 구성을 살펴 광대나물·환삼덩굴·개민들레·토끼풀(모두 제초제를 치지 않은 곳에만 자라는 잡초) 등 잡초군락이 다양하고 건강하다면 토양 비옥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 가능하며, 생태계 확인 시 풀잠자리나 칠성무당벌레 등의 곤충이 발견되는 건 유기합성농약을 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선 농약을 치는 게 자해행위”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이어 “이상과 같이 농업환경지표를 평가하되 이걸로 적합과 부적합을 단정하는 게 아닌, 위험도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확한 부적합 요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적합으로 처리하되, 뿌리발달 상태나 천적의 상태가 미흡하다면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하고 반대의 경우엔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해서 심사보고서에 기록해 사후관리와 갱신 심사 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험도에 따라 생산과정 조사를 차별화해 관리하는 것이 모든 농가를 연 1회 이상 일률적으로 조사하는 것보다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게 임 대표의 주장이다.

“친환경농민 기록부담 간소화해야”

친환경농업계는 친환경인증 시 필요한 문서·기록에 대한 부담 완화 필요성도 제기한다.

지난 11일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주최로 열린 토크쇼 ‘농담진담–고된 농사, 더 고된 기록’에서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과 임석호 대표는 농민들이 영농일지 및 인증품 생산계획서 기록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는 상황을 언급하며, 농업환경평가를 강화하고 농민의 기록부담은 경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현행 친환경인증제 하에서 농민은 인증품 생산계획서에 △품목별 생산계획량 △토양관리 계획 △비료사용 계획 △병충해 및 잡초방제 대책 및 농자재 구매계획 등을 기록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실상 ‘학교 일기 숙제’마냥 매일 영농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유 소장은 “△투입한 농자재의 구매영수증 수집 △농산물 판매 영수증 수집 △농자재 재고기록, 이 세 가지 이외엔 별도의 기록이 필요하지 않다. 노련한 인증심사원은 농자재 구매량과 재고량 파악으로도 농자재 사용량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 대표는 “영농일지 간소화도 필요하다. 현재 서술식으로 돼 있는 영농일지를 ‘표 형식’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영농일지를 빈 노트에 일지 형식으로 작성하다 보니 법에서 요구하지도 않고 인증심사에 반영되지도 않는 제초작업, 용수공급, 작물 생장 상태 등을 과도하게 작성하며, 정작 심사에 중요한 화학비료 사용량, 구매한 농약에 대한 사용처 등은 누락된다”며 “표 형식으로 영농일지 양식을 만든다면 심사도 좀 더 정확해질 수 있고, 농민 입장에서도 기록부담이 지금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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