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골골’ 농촌 여성농민들을 만나다

[ 르포 ]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 현장

  • 입력 2022.04.24 18:00
  • 수정 2022.04.25 08:4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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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9일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곡2리 경로당에서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이 진행되는 모습. 박종숙 공주시여성농업인센터장이 만능파종기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19일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곡2리 경로당에서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이 진행되는 모습. 박종숙 공주시여성농업인센터장이 만능파종기를 설명하고 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차가 지나가려면 반대 방향의 차가 갓길 가까이에 바싹 붙어야만 하는 작은 폭의 도로를 약 7분 정도 달린 뒤에야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덕2리 경로당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난 19일 찾은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 현장은 그렇게 농촌 마을 깊은 곳에서 진행됐다.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은 전문 강사가 마을을 방문해 여성농민과 관련한 정부·지방자치단체 정책과 사업을 소개하고 농작업 편의장비를 실습하는 등의 과정으로 구성된다. 농작업 효율 개선과 여성농민 근골격계질환 예방 등을 목적으로 하며, 참여자인 여성농민들의 열띤 호응에 힘입어 사업이 계속 확대·개선되고 있다.

경로당 앞마당에서 만난 박종숙 공주시여성농업인센터장은 준비에 앞서 큰 승합차에서 한가득 농기구와 소형 농기계를 꺼내기 바빴다. 동네 어르신들은 밖에 놓인 농기계 이것저것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며 바쁜 센터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격은 얼마인지, 이런 건 대체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또 배터리를 넣은 분무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이 주를 이뤘다.

경로당 안에는 20명 넘는 농민들이 모여있었다. 교육은 볕이 따가운 오후 1시 정각에 시작됐다. 박 센터장은 어르신들께 밝게 인사를 전한 뒤 커다란 교육판을 배경 삼아 또박또박 큰 소리로 여성농민 관련 정책을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들 ‘농번기 공동급식 지원사업’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이게 참 좋아요. 사업 참여하면 우리 한참 농사짓느라 바쁠 때 집 가서 부랴부랴 밥하고 어쩌고 안 해도 되는 거에요. 여기 경로당에서 밥해서 다 같이 모여 먹고 다시 일하러 가시면 돼요.”

센터장의 힘 있는 목소리는 여성농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이거는 75세까지 받으실 수 있는데 어머니들 쓰시라고 드리는 거니까 마트서 장 보는 데 쓰지 마시고, 꼭 ‘나를’ 위해 쓰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충청남도 농어민 수당 지원사업’. 요새는 경영체 등록 안 하신 경우가 거의 없어서 이거 다 아시던데, 받고 계시죠? 이거 올해 한시적으로 부부가 공동경영체 등록을 하면 수당을 10만원 더 준대요. 우리 어머님들도 뭐 아버님이랑 사실 똑같이 고생하고 농사지으시니까, 공동경영체 이참에 전부 등록해버리세요.”

조용한 호응이 잇따랐다. “아니 75세 넘으면 왜 안 주는 거여!” 하는 80세 고령 여성농민의 타박도 흘러나왔다.

센터장은 공감하며 “저도 아쉬워요. 지금 알려드릴 것도 70세까지긴 한데, 올해 공주시가 시범사업에 선정돼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을 진행하거든요. 근골격계, 그러니까 어머니들 허리랑 손목 이런 관절들을 찬찬히 검사해주는 거에요. 해당되는 어머님들은 아직 자리가 남았다니까 신청해서 꼭 받아보시고, 사실 이 건강검진만큼 우리가 몸 아프지 않게 편하게 농사짓는 게 더 중요한 거 아시죠”라며 자연스레 여성친화형 농기계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농기계 소개에선 보다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제품 사양 등과 함께 구매처를 묻는 경우도 많았고 “늙은 게 속상하네. 편히 농사지을 수도 있는 건데 이런 게 있는 줄 몰라서 그간 고생을 했네”라는 한탄도 터져 나왔다.

밭농사가 주를 이루는 지역 여건에 맞춰 콩 예취기와 파라솔 작업 의자, 주행형 충전식 자동 분무기, 전동차 등이 하나하나 소개됐다. 무릎 관절 보호를 위해 파라솔 작업 의자 사용 시 진행 방향을 뒤로 하는 게 좋다는 팁도 전해졌다.

수확물을 담을 수 있는 앞치마 형태의 ‘담는 쪼그리(작업 의자)’는 이날 특히 호응을 얻었다. 장화를 신고서 발을 넣기 힘들었던 기존의 쪼그리를 개선해 허리에 벨트식으로 채워 쉽게 착용할 수 있다는 점과 수확물을 담아 운반하기 용이하다는 점이 좋게 평가받았다. 정구지낫과 제주호미, 삼각괭이를 비롯해 반사필름 피복기와 만능파종기 등을 설명할 땐 상표를 직접 촬영하는 여성농민도 있었다.

이날 교육은 1시간 30분 남짓 이뤄졌다. “오다가 벌써 못자리들 하시는 걸 봐서 그런가 마음이 급했다. 한창 일할 때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 아까워하는 어머니들 마음 다 알고 있다. 근데 우리 건강은 우리가 챙겨야 건강히 농사지을 수 있으니까, 너무 무리들 하지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잘 활용하시면 좋겠다”라면서 교육을 마쳤다.

여성농민 권민정(67)씨는 “미처 알지 못했던 편의장비들을 많이 알게 돼 유익했다. 찬찬히 알아보고 구매해 사용해볼 예정이다”라며 “편의장비를 활용해 농사를 약게 잘 지으면 건강에 무리도 안 갈 것 같아 농기계임대사업소 등에 편의장비 구비를 건의하고 싶은데, 써본 게 아니다 보니 먼저 현장에서 사용해 볼 기회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교육 현장에서는 농기계임대사업소의 농기계 임대 기간이 너무 짧다는 문제점과 기계 등을 빌리려고 해도 트럭이 없는 고령의 여성농민은 운반·사용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 부각됐다. 이처럼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 교육은 농촌 최일선에서 농민들을 만나 현장 의견을 정부 등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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