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토종씨앗을 ‘삶의 공간’에서 싹 틔울 때

  • 입력 2022.04.03 18:00
  • 수정 2022.04.08 09:0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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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다시 토종씨앗을 주목할 때다. 식량·종자 주권을 위해,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토종씨앗 보전정책이 필요하다. 조례 제정도, 직불금도 중요하나 무엇보다 현지 보전, 즉 토종작물이 지역에서 잘 자라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과거보단 각 지자체 차원에서도 토종농산물 보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광역지자체 중에선 경상남도가 2008년 7월 3일 「토종농산물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를 최초로 제정한 이래, 2022년 3월 현재 8개 광역지자체(경남·전남·제주·강원·경기·충남·전북·경북)가 토종농산물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기초지자체 중에선 2016년 7월 1일 충북 괴산군의「토종농산물 및 종자보존·육성에 관한 조례」제정을 시작으로 전국 17개 시·군이 같은 성격의 조례를 만들었다.

각 지자체에선 어떤 정책을 펼칠까? 김황경산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원이 최근 전반적으로 정리한 전국 지자체의 ‘토종먹거리 정책’ 일부를 살펴보자.

경남도의 경우, 조례에 근거해 토종농산물 직불제를 실시 중이다. 2020년 기준 직불제 대상 농가는 585호(면적 114ha)에 사업비는 2억3,912만1,000원으로, 지급단가는 1㎡당 290원(일년생 작물 대상)이다. 직불금 지원이 가능한 품목의 경우 2009년 7개 품목이었으나 2020년엔 17개 품목으로 확대됐다.

김황 연구원은 “꾸준히 증가하던 직불금 사업 규모가 최근 감소하고 있다. 한 농가당 최대 5년 이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 등이 있는데, 경남도는 현재 농민들로부터 1년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한 평가·의견을 수렴해 보완해 나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지난해 5월 ‘토종농작물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소득보전 지원’ 내용을 담은「제주특별자치도 토종농작물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개정안이 통과됐다.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토종농작물 생산농가 소득보전 지원 시범사업계획’을 수립해, 올해 예산 3,000만원으로 토종작물 생산 농가당 10만~100만원씩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직불금을 받으려면 농업경영체 등록 농민이거나 1,000㎡ 이상의 농지를 경영 또는 경작하는 농민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시범사업인 소득보전 지원사업의 정식사업 변환, 13개 품종으로 지정된 지원대상의 확대 등이 과제로 남아있다는 게 김황 연구원의 설명이다.

지역에 토종씨앗 뿌리내린 여성농민들

지난달 29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전북 토종농산물 보존 육성 정책의 현황과 방향을 위한 세미나’ 직후 진행된 토종씨앗 나눔마당 중 한 농민이 토종콩을 손에 든 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전북 토종농산물 보존 육성 정책의 현황과 방향을 위한 세미나’ 직후 진행된 토종씨앗 나눔마당 중 한 농민이 토종콩을 손에 든 채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농민들, 그중에서도 토종씨앗 보전의 1등 공신인 여성농민들은 지역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까? 지난달 29일 전주시 전북도청 공연장에서 전라북도 토종농작물 민관정책협의회, 전북 토종씨앗 채종포 운영협의회 등의 주최로 열린 ‘전북 토종농산물 보존 육성 정책의 현황과 방향을 위한 세미나’ 당시 이현숙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북도연합(전북여농) 부회장이 소개한 전북 여성농민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전북의 경우 2017년 7월 고창군여성농민회에서 첫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든 이래 김제·익산·고창 여성농민회와 (사)전주푸드 등에서 채종포를 운영해 왔다.

김제시여성농민회는 토종콩으로 두부를, 구억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가을 토종축제 때 어르신들에게 나누는 활동을 진행했다. 고창군의 경우 처음엔 고창군여성농민회가 토종씨앗 보전활동을 시작했다가, 2019년 ‘고창토종씨앗연구회’를 결성해 토종벼·잡곡의 상품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씨나락간’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시판하기에 이르렀다.

이 부회장이 활동하는 익산시여성농민회는 2019년 700평 면적의 채종포를 만들었다. 토종씨앗은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면 내성이 없어 바로 죽는 만큼, 여성농민들은 힘들더라도 농약·제초제 없이 농사짓자고 결의했다. 1년 내내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았다.

첫 성과는 사과참외 및 고구마·옥수수·호박 등의 ‘대량생산’이었다. 사과참외의 경우 두 고랑에서 1,000개가 생산됐다. 2020년엔 토종고추의 일종인 수비초를 심었다. 토종고추는 작다는 편견과 달리, 수확해 보니 40cm 안팎의 고추가 140근 수확됐다. 비가 온 뒤 흰가루병이 발생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였다. 토종작물은 작고 생산량이 적으리라는 인식을 깬 계기였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전북여농 행사에서 사과참외를 나눴는데 다들 맛에 감탄했다”면서도 “사과참외는 단맛이 있고 식감이 좋으나 껍질이 얇아 상품으로서 길게 보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가까운 곳에서만 상품으로 팔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토종농사’ 지속 방안 논의 본격화해야

대다수 농민은 기존에 짓던 농사 시간 이외의 시간을 쪼개어 토종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쉽지 않다.

충남도에선 2015년 전국 최초로 진행한 공익형직불제 시범사업(농업생태환경프로그램)에 토종농산물 보존·육성사업을 연계한 바 있는데, 이 사업에 대한 농업직불금 시범사업 자문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주민 대다수는 시범사업 프로그램 중 ‘토종씨앗 재배 및 채종’ 프로그램이 수행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토종종자 확보 및 재배 과정의 어려움, 적은 수확량 등이 난관이었다.

김황 연구원은 ‘토종농사’의 지속가능성 담보를 위해 △토종농산물 직불제 강화 △증식포 사업 참여 농민을 위한 농산물 수매·판매 담보 방안 마련 △각 지자체별 토종자원 보존·육성 위한 민·관협의체 운영 △토종농산물을 재배하거나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에 대한 인센티브(에코 마일리지) 지원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06~2014년 전북도의원으로 재임하며 「토종농작물 보존 및 육성에 관한 조례」 제정 노력을 기울였던 오은미 전북여농 회장은 “토종씨앗 보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씨앗의 ‘현지 내 보전’”이라고 강조했다. 종자보관소나 씨앗은행 등에 잘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현지에서 농민·도시민이 직접 재배하고 그것으로 먹거리도 만들어 확산시키는 게 최고의 토종씨앗 보전 방안이란 뜻이다. 오 회장은 그 연장선상에서 △1회원 1토종지키기 등 지역별 역할 분담(책임증식) △토종농산물 주요 판로로서 농부장터의 활성화 △토종농산물 기반 먹거리 보급 등 토종농산물 활용 방안 강구를 촉구했다.

※참고자료: 김황경산, <토종종자·농산물 보존 육성 정책 현황과 방향>(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제339호 이슈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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