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촌농협은 왜 ‘비상임 조합장’에 목을 매나

광주 대촌농협 지도부, 상임 조합장 비상임 전환 ‘필사적’ 시도

대의원회 부결 후 한 달 만에 동일 안건 재상정, 기어이 가결

농협법상 상임 조합장은 4선 제한, 비상임 조합장은 제한 없어

농민·조합원 일각 “현직 조합장 4선 출마 위한 꼼수” 비난

  • 입력 2022.03.1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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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조합장을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전환한 광주광역시 대촌농협(조합장 전봉식)의 정관 개정이 농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명분이 약한 무리한 정관 개정으로, 조합장 연임을 위한 ‘뻔한 꼼수’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다.

사건의 시작은 2020년 ‘상임이사제’ 도입이다. 대촌농협은 정관 개정을 통해 상임이사를 두기로 하고 당시의 전무를 상임이사에 앉힌 바 있다.「농업협동조합법」상 자산규모 1,500억원 이상인 조합은 상임이사를 둬야 하지만, 대촌농협의 자산규모는 당시에도 지금도 1,300억~1,4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손바닥 만한 조합에서 굳이 업무분장(조합장-상임이사)을 할 이유가 있나”라며 의아해하는 여론이 등장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전봉식 조합장은 상임이사제를 도입한 이유를 묻는 본지의 질문에 “전무가 정년이 돼 상임이사로 쓰려고 했다. 30년 이상 근무해 농협 사정을 잘 알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설명했다. 애당초 상임이사를 둔 목적이 ‘경영의 전문화’가 아닌 ‘직원 임기연장’이었다는 건 이 시점에서 이미 제도를 남용했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지난해 12월 15일, 대촌농협은 정기 대의원회에 돌연 ‘조합장 비상임 전환’을 내용으로 하는 정관개정안을 상정했다.「농업협동조합법」상 비상임 조합장을 둬야 하는 건 자산 2,500억원 이상의 조합.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대촌농협의 자산규모는 1,5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기준에 한참 미달한 상태에서 굳이 추진한 상임이사제와 굳이 추진한 비상임 조합장제를 연결시켜 보면, 결국 상임이사제는 조합장을 비상임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것이다.

표결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정관 개정은 출석 대의원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데, 찬성 39명에 반대 20명으로 아슬아슬하게 부결 처리된 것이다. 하지만 지도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한 달 뒤인 지난 1월 27일 정기 대의원회에서 이미 부결된 정관개정안을 다시 상정하는 비정상적 행보를 보였다. 이날 마침 반대 성향의 대의원 두 명이 병원 수술차 불참했고, 결국 찬성 38명에 반대 19명으로 역시 아슬아슬하게 개정안이 가결됐다.

대촌농협 대의원회에서 ‘조합장 비상임 전환’ 정관개정안이 가결된 지난 1월 27일, 조합원들이 조합장·이사·대의원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들은 최근 정관의 원상복구 또는 지도부 압박투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촌농협 대의원회에서 ‘조합장 비상임 전환’ 정관개정안이 가결된 지난 1월 27일, 조합원들이 조합장·이사·대의원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들은 최근 정관의 원상복구 또는 지도부 압박투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한 조합원이 대촌농협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한 조합원이 대촌농협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처럼 ‘필사적인’ 정관 개정의 명분은, 지역 내 산업단지 조성으로 조합의 자산규모 증가가 예상돼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불투명한 전망과 남은 시간을 고려하면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필요는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자산이 급증하거나 2,500억원에 임박했을 때 정관을 개정했다면 하등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무리한 추진을 한 목적은 무엇일까. 지역 농민들은 “조합장 연임을 위한 꼼수”라고 입을 모은다. 「농업협동조합법」은 조합장의 연임을 최대 2회까지 허용하고 있지만, 비상임 조합장에 한해선 연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전 조합장은 3선 조합장으로 내년 선거에의 재출마가 불가능했는데, 이번 정관 개정으로 4선 출마가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3선 조합장의 연임을 위한 편법적 비상임 전환은 그동안에도 유수의 조합에서 공공연히 이뤄져왔고 그중 일부는 지역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촌농협의 이번 행보는 그중에서도 특히 노골적인 모습으로, 역시 잡음이 상당할 전망이다.

전 조합장은 4선 출마 의중을 묻는 질문에 “내 나이가 거의 80이다. 건강이 안좋으면 못 나가는 것이고 좋으면 나가는 것”이라며 “그동안 적자였던 농협을 반석 위에 올려놔 조합원들이 다 좋아하고 있다. (의혹에 대해)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촌농협 조합원 A씨와 B씨는 “오랜 기간 측근경영으로 문제제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지만, 직원 수(인건비)를 줄이고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손익을 개선하고 있어 농협으로서 사실상 퇴보하고 있는 것”이라며 “농협의 설립목적을 생각하고 본연의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야욕을 갖고 경영하다 보니 이런 편법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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