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 입력 2022.02.27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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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를 꼭 2주 앞둔 날이었다. ‘1kg 700원, 양파 최저생산비 보장!’ 붉은 깃발을 매단 다수의 트랙터가 겨우내 양분을 머금고 그 몸집을 불려가던 조생양파를 짓이겼다. 양파밭을 갈아엎던 트랙터로 인해 흙먼지가 일어날 때마다 농민들은 담배를 꺼내 물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양파의 줄기로 파릇파릇했던 밭이 한순간에 황무지로 변했다.

농민들은 밭을 갈아엎기에 앞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온 국민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 관심이 가 있는 동안 국가가 농업, 농촌, 농민을 외면한 채 소비자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농산물 가격만 하락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피땀 흘려 키운 자식같은 양파를 갈아엎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냐며 제대로 된 농산물 수급대책을 정부에 요구해 달라며 국민들께 호소했다.

앞서 지난 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로 첫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열렸다. 유력 대선후보로 손꼽히는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후보의 TV토론이 펼쳐졌고 22일에는 군소후보들의 주요 공약을 발표하는 TV토론이 개최됐다.

공중파를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는 TV토론은 일반적인 선거유세와 달리 유권자들이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과 각 분야에 대한 정책이해도 등을 파악하고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를 제공한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대통령 선거의 ‘빅 이벤트’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토론에 나선 12명의 대선후보 중 농업을 언급한 이는 김재연 진보당 후보가 유일했다. 냉해, 가뭄, 병해 등 이상기후에 의한 농업재해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식량자급에 대한 국가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지만 이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설명하는 대선후보는 없었다. 먹거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또 이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공공성을 고려하면 TV토론에서 언급조차 않는 대선후보들의 인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에도, 더이상 애써 지은 농산물을 갈아엎지 않도록 함께 해달라는 농민들의 절절한 호소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첫 TV토론을 통해 깨닫게 됐다면 이는 한낱 기우에 불과할까. 더 늦기 전에 대선후보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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