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밀 육성에 농협중앙회가 빠졌다?

맨땅에서 기반 다지는 국산밀

조직력 갖춘 농협이 키맨인데

농협중앙회 의지 아직 안보여

  • 입력 2022.02.1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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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정부의 국산밀 육성정책이 힘겨운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농협중앙회(회장 이성희) 역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녹록잖은 국산밀 산업의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반전을 도모하려면 농협중앙회의 자본과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0년「밀산업 육성법」시행으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는 국산밀 육성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보급종 공급 확대, 생산단지 경영체 육성 등 생산 분야엔 일단 역동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문제는 정작 중요한 소비 분야다. 민간 매입량 확대가 이뤄지고는 있어도 당초 목표치를 많이 밑돌고, 이제야 간신히 급식 공급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생산의 체계화가 소비에도 진전을 가져올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소비 분야에 최소한의 비전이 먼저 제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산기반을 다진들 밀산업은 지난 수십년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수입산에 완전 장악된 국내 밀산업엔 그 비전을 제시할 만한 여력이 없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우리 농업엔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초대형 협동조합, 농협이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자본력과 전국적 사업망을 갖춘 한국 농협은 이처럼 불모지 상태의 개별 품목 문제에서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

국산밀 소비처 확대를 위한 농협중앙회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수확을 앞둔 밀이 자라고 있는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밀밭 모습. 한승호 기자
국산밀 소비처 확대를 위한 농협중앙회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수확을 앞둔 밀이 자라고 있는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밀밭 모습. 한승호 기자

문제는 농협중앙회 스스로 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성수 아이쿱구례자연드림파크 입주기업협의회 대표의 <오마이뉴스> 기고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국산밀 자급률 확대를 위한 국회간담회에서 농협경제지주 측은 ‘국산밀 제품을 농협하나로마트보다 소비자 접근성이 높은 편의점, 수도권 소재 빵집 등을 통해 유통하자’, ‘농협중앙회 차원에서의 유통 확대는 제품의 품질, 물류유통, 기존 입점 기업과의 관계 등도 헤아려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간담회에서 농협중앙회의 역할론이 화두에 오르자 이를 에둘러 거절한 것이다.

오 대표는 간담회 이후 “국산밀 판로 확대는 민간 유통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업·농촌에 밀접한 운영기조와 전국적인 인프라를 가진 농협중앙회가 나서야 할 일이다. 직접적인 판매 확대 외에 지역농협에 대한 인센티브나 판매쿼터 부여 등의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농협중앙회가 국산밀 산업에 소극적인 건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준규 국민건강푸드플랜연대 대표(전 국산밀산업협회 상임이사)는 “농협이 보리수매를 확대하는 건 조합장 선거 때 ‘표’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밀은 농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유지·발전해와 농협에게 실익이 없는 품목”이라고 전했다. 김보람 농식품부 식량산업과장도 “농협중앙회가 나서 주면 정말 고맙겠지만, 아직 밀을 주도적으로 생산하는 지역조합이 많지 않아 쉽지 않은 것 같다. 향후 지역조합의 밀 사업이 점점 커지면 중앙회도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산밀은 단순히 어려움에 처한 한 품목이 아닌, 우리나라 농업 전체의 구조개선을 도모하고 식량자급률을 비약적으로 높여낼 단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막중하다. 정부가 늦게나마 법률까지 제정해 특별히 육성하려는 이유다. 농업·농촌·농민 현장을 누구보다 깊이 고민해야 할 농협중앙회라면 실익을 떠나 주도적으로 역할을 개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농민들의 염원이 뜨겁다. 유재흠 전북 부안군우리밀영농조합법인 대표는 “국산밀은 국민들에게 아주 접근성 높은 방법으로 선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농협중앙회가 전면에 나선다면, 매출증대 효과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대중적 홍보효과가 발생하고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못 산다’는 말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처럼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농협중앙회가 역할을 해야 말이 잘 달릴 수 있다. 신경분리 이후 농협중앙회의 유통사업이 더욱 경제논리를 중시하고 있는데, 협동조합은 장사만 하는 곳이 아닌 만큼 운동적 관점에서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밀산업 육성법」에도, 농식품부의 세부계획에도 농협중앙회의 역할은 등장하지 않는다. 농협중앙회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면 정책적으로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준규 대표는 “만약 농협중앙회가 밀을 수매한다면 당장 쌀과 저장창고를 공유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정부가 필요한 시설 등을 지원하면서 강제로 역할을 부여하면 농협중앙회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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