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를 GMO라 못 부르게 된 미국인들

GMO표시제 한계에 맞서는 한국 시민사회에 ‘반면교사’

  • 입력 2022.01.16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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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미국 농무부가 최근 개정한 GMO표시제의 새 표시. 미국 농무부 누리집 인용
미국 농무부가 최근 개정한 GMO표시제의 새 표시. 미국 농무부 누리집 인용

이제 미국인들은 유전자조작식품, 즉 GMO를 GMO라 부르지 못한다. 미국 농무부(USDA)의 개정된 GMO표시제 때문이다. 미국의 최근 상황은 한국 반GMO 시민사회에 반면교사로 다가오고 있다.

USDA는 그동안 GMO표시제를 통해 ‘유전적으로 조작된(genetically engineered)’, 또는 ‘유전자조작생물체(GMO)’라고 GMO 식품에 표시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다가 USDA는 올해 1월 1일부터 ‘생명공학적인(bioengineered)’. 또는 ‘생명공학으로부터 파생된(derived from bioengineering)’이라는 내용이 담긴 새 표시를 국가 의무표준으로 준수하도록 개정했다.

미국의 반GMO 시민사회단체들은 미국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GMO’라는 표현 대신 애매모호한 ‘생명공학적인 식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을 비판하고 있다. GMO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던 미국인들 중 ‘생명공학 식품’이란 표현을 보는 순간 ‘과거의 GMO와는 별개의 식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표시제 개정에 발맞춰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국립과학원은 ‘생명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식품을 먹는 게 “인간의 건강에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선전했다.

또한 신규 GMO표시제 하에서 구체적인 유전자조작 관련 정보를 확인하려면 QR코드 등의 최신기술을 활용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스마트폰이나 휴대전화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1억명 이상의 미국인이 차별당한다는 내용도 시민사회 일각에서 지적됐다.

표시제의 허점도 적지 않다. 식품 포장재 또는 QR코드에 ‘생명공학’ 표시가 없다고 해서 GMO 식품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게, 소다·사탕·식용유 등 GMO 원료를 가공한 식품은 고도로 가공될 시 GMO DNA가 남아있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식품에 대한 GMO 표시여부는 표시 주체(즉 식품기업)들의 ‘자발성’에 맡겨진다. 또한 GMO 성분의 비의도적 혼입 비율이 5% 미만일 경우 표시가 면제된다.

이상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은 현재 우리나라의 GMO표시제가 갖고 있거나 조만간 부닥칠 문제이기도 하다. 가공 과정에서 GMO DNA가 소멸될 시 GMO 표시의무를 면제하는 내용, 미국의 5%보단 낮지만 유럽연합의 0.9%보단 높은 ‘3% 미만’의 비의도적 혼입 허용기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기되는 ‘유전자가위 기술의 GMO 규제완화’ 주장 등이 그렇다. 특히 미국에서 GMO를 ‘생명공학적인 식품’이라 명칭을 바꾼 것은, 유전자가위 기술이 ‘GMO와 별개의 신기술’인 양 호도되는 우리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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