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부엌, 차별없는 먹거리를 위하여

  • 입력 2022.01.09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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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무항생제 한돈으로 만든 제육볶음과 탕수육, 지난 5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 열린부뚜막협동조합 마을부엌에서 직원들이 로컬푸드 인증 농산물로 만든 ‘열린부뚜막 밀키트’를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무항생제 한돈으로 만든 제육볶음과 탕수육, 지난 5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 열린부뚜막협동조합 마을부엌에서 직원들이 로컬푸드 인증 농산물로 만든 ‘열린부뚜막 밀키트’를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서울시민 모두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서울시민 누구도 경제적 형편 때문에 굶거나 질이 낮은 먹거리를 먹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사회·지역·문화적인 문제로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접근하는 데 곤란을 겪지 않아야 합니다. 서울시민은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받아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2017년 서울시가 발표한 먹거리 기본권 선언문의 내용이다.

선언문에 따르면 그 누구도, 시간·환경·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할지라도, 유력한 대선후보의 발언과 달리 ‘부정식품’을 ‘선택할 자유’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먹거리 빈곤층에 이어 먹거리 신빈곤층이 등장했고 이들은 간편한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음식, 방부제가 들어간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운다.

마을부엌은 누구나 안전하고 질 좋은 먹거리를 평등하게 공급받아야 한다는 먹거리 기본권의 이론을 머릿속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한 사례다.

마을부엌은 경제적 취약계층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청년·1인가구·맞벌이 가정 등 다양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의 먹거리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혼자 먹는 밥이 아닌 사회적으로 같이 나눠 먹는 밥상 문화를 복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마을부엌은 침체의 길에 접어들었고, 실제로 여러 곳이 문을 닫거나 부엌 운영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부터 활발히 운영을 이어오던 ‘신나는 마을 공동부엌(은평구)’은 대면 모임을 못하는 상황에서 임대료 부담이 커졌고 지난해 4월, 활동을 중단했다.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마을부엌이 문을 닫고 생긴 가장 큰 문제는 방과 후 아이들이 오갈 데가 사라졌단 것이다. 소혜순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장은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전혀 없고 한순간에 돌봄의 공백이 생겼다”며 “먹거리와 관련된 사회적 돌봄은 마을부엌 형태 말고는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이나 방법이 없다”고 씁쓸해했다.

하지만 깨진 틈새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마을부엌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은 갈수록 주목받고 있다. 마을부엌은 먹거리 빈곤층에게 먹거리 안정성을 보장하는 기존의 역할에 더해 도농 간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수마을밥상, 가배울, 건강한농부 사회적협동조합, 문턱없는밥집, 우리밥상공동체 짓다···’ 농촌 소농 공동체나 지역 농민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 건강한 음식을 나누고 있는 마을부엌들이다.

먹거리 기본권 선언문과 함께 제정된 서울시 먹거리 기본조례가 밝히고 있듯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위해선 도농상생을 통한 공공급식의 확산과 건강먹거리 조달체계가 확립돼야 한다(28조).

농민은 식탁 위 건강한 밥상이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전에서 마을부엌을 꾸려나가고 있는 추경미 열린부뚜막협동조합 이사장은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식량자급이 절실하다. 최소한 농산물, 먹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 자급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들을 잘 모셔야 한다(웃음). 대농 위주로 흘러가는 농업정책에서 지역 소농들이나 판로가 없어 힘들어하는 농민들과 교류하는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촌의 생산자 공동체도 도시의 다양한 소비자들과의 연계망이 필요하다. 특히 토종농산물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없고, 고정 소비자를 찾기란 더욱 어렵다.

전남 강진에서 농사짓는 고령 여성농민들을 지원하는 가배울은 농민들이 토종종자를 복원하고 그 씨앗으로 농사짓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하고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불러온다는 이론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작은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마을부엌이 불러올 변화의 바람을 앞으로도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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