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감염병에 그대로 노출된 가축방역 최전선

결핵·브루셀라·큐열 예방대책 전무 … 질병관리청, 정책연구 착수

  • 입력 2022.01.09 18:00
  • 수정 2022.01.10 16:0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가축방역사들이 우사에서 방역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지난해부터 질병관리청의 정책연구용역(고위험군 대상 큐열 혈청 병률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제공

 

가축전염병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방역사들이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기본적인 예방조치조차 없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950여명의 종사자들은 국민 밥상에 오를 고기반찬의 안전을 위해 매일 농장을 검역하고, 가축에 대한 각종 감염병 여부를 검사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안전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지역 사무소 중 전남만 정기적으로 보건소에서 큐열 정기 검사를 하고 있다. 작년에도 검사 결과 일반 큐열 수치보다 높은 직원이 6~7명 이상이었다. 큐열은 따로 치료제가 없기에 수치가 높다 해서 치료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검사했을 때 수치가 2,000~3,000 정도 됐다. 개인적으로 국립대 병원 감염내과를 방문해 CT도 찍고 했다. 결국 3개월 치 매독약을 먹고 치료를 마쳤다. 모두 사비로 처리했다.”

이민재·라연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자가 우리나라의 가축방역 시스템 및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동환경 실태에 관해 작성 중인 연구보고서 초안에서 발췌한 한 가축방역사 인터뷰 내용이다.

방역사가 의사와 상의한 끝에 결국 성병 치료에 쓰이는 약을 처방받아 치료한 이 큐열이라는 병은 정부 지정 11종의 인수공통감염병 중 하나다. 큐열의 주 감염경로는 소·양·염소 등의 젖, 대·소변이나 출산 시 양수 및 태반을 통해 병원체가 고농도로 배출될 때 오염된 먼지를 흡입하는 것으로, 관리지침에는 고위험 직종으로 축산업 종사자를 명시하고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인수공통감염병 예방을 위해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 또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드러난 사람 등에 대해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별도의 관리가 전혀 없었다. 큐열 뿐만 아니라 결핵, 브루셀라 등 가축방역사·도축검사원이 업무환경에서 상시 노출되기 쉬운 다른 인수공통감염병도 마찬가지로, 그간 이들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은 물론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예방을 위한 시스템조차 없는 현실 속에 치료를 위한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질환을 앓게 된 종사자들은 지금까지 개인의 비용과 노력을 들여 감염병과 싸워야 했다. 김필성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장은 “40도 고열이 발생해 응급실에 갔는데 뭔지 모른다. 감염병 의사가 있는 국립대병원에서도 의사가 ‘큐열이 뭐야’라고 할 정도로 관련 지식이 없었다”라며 “당장은 치료제가 없다면서 대체제로 매독약이 있다며 권했다”라고 증언했다. 연구진이 의료계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큐열 치료에는 독시싸이클린이라 불리는 항생제를 투여해 치료해야 하지만 국내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매독치료제 등 대체제가 쓰이는데, 만성 큐열로 진행된 경우 치료 기간이 대폭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

 

김필성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장은 큐열을 앓았던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정기검진과 업무상 질병 인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필성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장은 큐열을 앓았던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정기검진과 업무상 질병 인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4년 이전까지 많아야 20명의 감염자를 기록했던 큐열은 2015년 27명, 2016년 81명, 2017년 96명을 기록하더니 지난 2018년과 2019년에는 160명대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 2019년부터 노사 합의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운영을 시작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지난해 9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정기검진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질병관리청은 그제야 발맞춰 조치를 시작했다. 가축방역사·도축검사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오는 2023년 7월까지 인수공통감염병관리과 주관으로 정책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정책연구는 큐열균 노출 가능성이 큰 가축위생방역 종사자들의 작업환경 및 위험 형태를 분석해 고위험군 큐열 혈청유병률 및 원인균 감염 여부를 조사하고 맞춤형 예방수칙을 개발하기 위함이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조는 이 연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기검진이 시작되면 감염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인수공통감염병에 따른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집단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통계에 잡히는 큐열 감염자 수는 종사자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검사에 대한 접근성 또한 낮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낮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지난 2021년 가축방역 관련 종사자들이 코로나 백신 필수 접종대상 또한 아니었다는 점을 들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낮은 조직 위상이 농촌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까지 함께 침해할 수 있음 또한 지적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지난해 6월 백신 접종이 본격화될 당시 정부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백신우선접종 대상자 선정 검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들이 돌아다니는 곳이 농촌이고, 대면업무를 통해 고령주민들에게 각종 감염병을 전파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라며 “국가 필수업무인 가축방역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대우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