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에 대한 기본 예의도 지키지 않는 현 정부 참담하다

  • 입력 2021.11.28 18:00
  • 기자명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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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지난 15일 통계청은 2021년 쌀 수확량이 전년 대비 10.7%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정부와 농민단체는 지난해 쌀 목표가격과 변동직불금을 폐지하며 ‘자동시장격리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양곡관리법 시행규칙에 자동격리의 요건을 명시해 놓았다. 하지만 정부는 수요량 대비 31만톤 가량의 쌀이 더 생산된다는 통계청 결과가 발표됐음에도 물가안정 때문에 쌀값을 낮춰야 한다는 정도의 언급만 언론에 흘리고 있다. 법에 명시된 어떤 대책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농촌 현장에서는 벼 가격이 매일 떨어지고 있다. 아마도 정부 의지대로 쌀 가격은 급락할 것이다. 양곡 가격은 흉년인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 의지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쌀값이 밥상 물가 상승의 직접적 원인이나 되는지 잠깐 살펴보자.

농산물이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의 0.65에 불과하다. 그리고 개인당 1년 쌀 소비량을 2020년 기준 57.7kg(통계청)으로 본다면, 2020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높은 쌀 산지 가격인 20kg 5만5,938원을 적용해 계산했을 때 1년 쌀 구입비는 16만1,381원밖에 되지 않는다. 소비자 가격으로 환산해도 1인당 1년 쌀을 먹는데 20만원의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밥상물가를 올려놓고 있는가? 한국의 사료 포함 식량자급률이 20%대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하면 밥상물가 상승의 원인은 쌀 등 우리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이 아니라 값싸다고 자립기반마저 포기된 수입농산물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밀 자급이 0.7%에 불과한데 라면값이 11%나 올라간 것을 보면 현재 밥상물가 상승 주범이 수입농산물 가격 상승임을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출하되는 농산물은 가격이 폭락해 밭에서 여전히 폐기 처분되고 있다. 현재도 콩, 고추, 참깨 가격이 폭락하고 있으며 전남의 가을 양배추는 밭에서 폐기 처분됐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다른 잡곡류 가격은 하락하는데 들깨 가격은 높아지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생산이 줄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전량 수입하다시피 하는 중국의 들깨 농사 흉년으로 수입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에 국내 들깨도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마치 밥상물가 상승의 주범 취급하고 있는 쌀은 전체 농가의 60%가 생산에 종사하고 있고 농가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작목이다. 때문에 쌀 생산기반이 붕괴되는 것은 곧 전체 농업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 정부는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쌀 생산기반 유지를 위한 노력을 놓지 않았다.

목표가격과 변동직불금 제도로 대표되는 그러한 노력들은 지난해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일정 기준에서 정부가 양곡을 시장격리하고 방출하는 방식의 ‘자동시장격리제’로 변경됐다. 하지만 밥상물가 상승 주범으로 몰린 쌀은 개정된 양곡관리법 시행 첫해인 올해부터 ‘제발 가격 떨어져라’는 주문을 외치는 문재인정부에 의해 외면받고 있다. 자신들이 만든 법조차 그냥 지키지 않는 것이다.

쌀값을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문재인정부는 농민에 대한 상식적 예의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다. 전국의 농민들이 여의도에 모여 농민총궐기대회를 진행한 지난 17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쌀 생산량 증가에도 여전히 가격이 높다며 정부가 쌀값을 낮추겠다고 발언했다. 이전 어느 정부에서도 하지 않은 홍남기 장관의 지난 17일 행보는 농민에 대한 모독이다. 3억원 하는 집값을 30억원으로 10배 이상 올려놓고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식량인 쌀을 1년에 20만원 주고 사 먹는 것이 그렇게도 부담되는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농민이 국민 같지 않았으면 농민대회가 계획된 당일 오전에 그런 행차와 언행을 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요소수 사태를 통해 충분히 확인하고 있다. 5년 연속 흉년으로 말미암아 지난해 37만톤의 쌀이 부족했던 경험은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는 현실이다. 정부는 더이상 지켜보지 말고 당장 법에 따른 대책을 시행하라. 그리고 식량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길 바란다. 기계를 먹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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