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최대 경제국 독일, 기후보호법 제정해 탄소중립 실천 앞장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공동기획 l 독일의 탄소중립 농업정책 ②

6개 분야, 연도별 탄소감축 목표 명시 … ‘농업미래위원회’ 각 분야 참여 이끌어

  • 입력 2021.11.21 18:00
  • 수정 2021.11.22 09:0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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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2019년 말 기준 독일에는 3만4,110개의 유기농 농장이 있으며 161만3,834ha를 경작하고 있다.    출처: 독일 식품농업부 홈페이지
2019년 말 기준 독일에는 3만4,110개의 유기농 농장이 있으며 161만3,834ha를 경작하고 있다. 출처: 독일 식품농업부 홈페이지

 

유럽연합(EU)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EU 역내 에너지전환을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경제 선진국이라는 발판도 에너지전환을 주도하는 원동력이지만, 역사적 사건도 그 배경이 되고 있다. 1970년대 두 번에 걸친 세계 석유위기 상황과 1979년 미국 트리마일 섬에서 발생한 최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서유럽 특히 독일의 환경보전 경계심을 키웠다.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기폭제가 됐다. 체르노빌에서 베를린까지는 약 1,100km 거리로, 독일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다량의 방사능 검출은 물론 산성비가 내려 숲이 말라 죽었다. 환경오염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한 독일 사회는 환경보호 및 에너지전환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독일 연방정부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독일 연방정부도 환경보호를 위한 제도와 법률체계를 정비하는 일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 독일은 EU 내에서도 탄소중립 정책의 선두에 서는데, 1990년 대비 2012년까지 탄소배출을 23% 감축하고 2020년까지 40%, 2050년까지는 80~95% 감축안을 결정했다. 하지만 탄소중립 목표를 더 단축하는 전 세계 흐름에 발맞춰 독일의 목표도 한층 빨라졌다. 독일 연방정부는 지난 2016년 11월 ‘기후보호계획 2050정책’을 수립하면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도 기준연도 대비 최소 55% 감축,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2019년 12월 12일에는 ‘기후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독일 사회 전체의 탄소감축 노력을 한층 강화했다.

‘기후보호법’ 제정, 부문별 연간 배출량까지 법에 명시

독일 연방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제정한 ‘기후보호법’은 명확한 목표와 실천계획까지 구체화한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3월 발간한 ‘최신 외국 입법정보(통권 153호)-독일 기후보호 입법례’에 따르면 기후보호법은 탄소감축에 대한 6개 부문(에너지경제·산업·건물·교통·농업·폐기물 및 기타)별 연간 감축목표까지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않은 소관 부처는 비상프로그램을 제출토록 했다. 농업분야는 농업·임업·어업에서 연료 연소 배출량을 2022년엔 6,700만톤CO2eq(이산화탄소상당량), 2030년엔 5,800만톤CO2eq로 각각 줄여야 한다.

기후보호법은 기후전문위원회를 구성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는 기후보호법에 따른 기후보호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한다. 운영비용은 독일 정부에서 부담하지만 관료조직으로부터 철저히 독립성이 보장된다. 위원회는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에 제출되는 진행사항과 조치에 대한 학술적 평가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구체적으로 △연방환경청이 작성하는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 검토 △연방정부와 연방의회 공개 데이터 평가서 제출 △연간배출량 초과 시 비상프로그램 조치에 대한 연방정부의 결의안 사전 검토 △연방의회 또는 연방정부가 결정을 통해 위임하는 특별보고서 작성 등이 있다.

위원회와 별도로 총리와 6개 부처 장관(환경·재무·경제·건설·교통·농업), 연방총리실장, 정부대변인(차관급) 등 9명의 기후내각도 구성·운영된다.

논의 단계부터 사회 각 분야 모든 주체 ‘공동실천’ 염두

독일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기후보호법은 전 사회적인 구속력이 있다. 무엇보다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목표 아래 온실가스 감축 효과만 좇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정의로운가, 비용은 적정한가, 경제성은 어떤가 등 전반을 고려해 설계하는 것이다. 기후보호 법제화 등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개방성·공개성의 원칙을 준수했고, 각 분야 모든 주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설정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보호를 위한 행동연합(기후보호행동연합)’이다. 기후보호행동연합은 사회집단과 독일 연방정부 간 기후보호정책에 대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포럼이며, 지난 2015년 3월 25일 연방환경부(BMU) 주도 아래 연방정부에 의해 조직됐다. 현재 200여개의 협의회 및 기타 단체들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은 1990년 대비 2020년 이산화탄소 배출을 41% 감축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연방정부도 이를 공식 발표한 바 있다. 한국EU학회 연구총서 1호 <유럽연합 탄소중립 경제체제 및 에너지전환정책>에서 저자 박상철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독일에 대해 “2050년 에너지전환이라는 장기목표를 설정해 정권의 변화와 관련 없이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이며 일관적인 에너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는 에너지전환 정책이 기후정책, 산업정책, 경제정책 등과 긴밀하게 연계돼 지속가능 발전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농업분야, 예산 투입해 탄소중립 목표 성공적으로 추진

독일 전체 탄소배출량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 미만이다. 농업분야 역시 탄소감축 목표를 설정해 적극 실행 중에 있다. 독일 연방 식품농업부(BMEL, 식품농업부)는 식품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세부 목표를 세워 실행한 결과 2019년과 비교해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6,600만CO2eq로, 2.2% 감소한 것으로 전했다. 이는 1990년 기준 대비 약 24% 감소한 수치다.

기후보호법은 2020년 농업분야 탄소감축 목표로 7,000만CO2eq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식품농업부는 이 추세로 가면 2030년까지 연간 5,600만CO2eq로 부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업분야 탄소감축 실행을 위해 식품농업부는 △질소 과잉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 방지 △퇴비 발효 강화 △유기농업 확대 △메탄가스 감축을 위해 동물사료 개선 등 축산 배출량 감축 △바이오가스를 에너지화, 신재생에너지로 활용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먼저 독일 식품농업부는 질소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총 1,000만유로(한화 133억7,000만원 상당)의 기후행동기금이 책정돼 있다고 밝혔다. 기금은 주로 ‘경작가능 농업전략’을 통해 실행되며, 환경보호 정책을 실천하는 농민들에게 뒤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데 보완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경작가능한 농업전략은 6가지 지침·12가지 활동 분야로 구성돼 있는데 6가지 전략은 △고품질 식품·동물 사료 및 바이오 원료 공급 보장 △농민 소득 확보 △자연 보호 및 자원보전 촉진 △농업 경관에서 생물다양성 유지 △기후 행동 강화 및 기후변화에 대한 경작방법 적용 △경작할 수 있는 농업에 대한 사회적 수용 증가 등이다.

농장의 퇴비도 발효를 더 강화해야 하는데, 올해부터 1억8,000만유로가 책정돼 있다. 식품농업부에 따르면 이는 새로 마련된 대책으로, 관련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의 자금조달 공고가 2020년 발표됐다.

유기농업 확대도 빼놓을 수 없는 탄소감축 전략이다. 식품농업부는 2023년 유기농업을 확대하기 위해 ‘농업구조 및 연안 보존을 위한 공동과제’에 따라 2,500만유로를 추가 출연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 유기농업 20% 달성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이다.

독일은 축산강국으로도 꼽힌다. 가축 사육문제에 관한 탄소중립 고민도 그만큼 비중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가축사육 배출량 저감 부분에는 별도의 기후행동기금이 책정되지 않았다. 식품농업부는 ‘농업부분의 투자와 미래를 위한 프로그램(농민을 위한 100만유로)’에 책정된 기금을 통해 슬러리(가축 배설물에 점토·분탄 등을 섞은 걸쭉한 물질) 저장·처리 등에 투자할 방침이다.

또 농업분야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탄소감축을 추진하는 데에도 1억5,600만유로가 투입된다.

 

지난 2019년 5월 독일 베를린의 일반슈퍼 매장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농산물 모습.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제공
지난 2019년 5월 독일 베를린의 일반슈퍼 매장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농산물 모습.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제공

 

 지속가능한 식생활, 육류섭취·음식낭비 줄여야

농업분야와 연관된 탄소감축 대책으로는 ‘식생활’ 분야가 있다. 식품농업부는 농업 및 임업부분의 기후행동 대책 패키지에 ‘음식물 쓰레기 방지’를 포함해 지속가능한 식생활과 식품 소비를 장려하고 있다.

율리아 클뢰크너 식품농업부 장관은 식품 및 영양분야 탄소중립에 있어 음식물 쓰레기를 대대적으로 줄이고 식품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을 집중 추진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저감에 대한 국가전략까지 수립했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 저감 문제가 처음으로 총체적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식품농업부는 저감대책 실행에 있어 농업·가공·거래·외식 케이터링(음식공급)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푸드체인 전 과정에 걸친 요구사항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EU 회원국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독일의 목표는 2030년까지 업계와 소비자 수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저감하며, 이는 식품 공급망 전반의 종합적 노력을 이끌게 된다. 구체적으로 독일 연방정부의 구내식당들은 식품농업부가 수정하도록 권고한 독일영양협회(DGE)의 품질 표준에 따라 더욱 지속가능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원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제철 식재료 사용, 식물성 음식의 폭도 넓히는 중이다. DGE는 일주일에 최대 300~600g의 고기를 섭취하라고 권장한다.

클뢰크너 장관은 학교와 유치원이 ‘실질적 영양 교육의 핵심’이라고 보고 DGE 표준을 유치원과 학교급식에 의무화하도록 연방 주에 촉구하고 있다.

농업미래위원회, 각 분야 대표자로 구성 농업발전 방향 논의

농업미래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도 농업분야 탄소감축 활동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농업미래위원회는 지난 2020년 농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구성됐으며, 농업 및 식품시스템 전환 프로세스에 대한 장기적 권고안과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구체적 목표는 독일 자국 내에서 기후행동, 환경보호, 식량안보 그리고 경제적 수익성이 보장되는 농업유지를 통합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위원회 구성은 농업·산업·상업·소비자·환경보호·동물복지·학계 등 모든 관련 분야 대표자로 구성돼 있고, 지난해 여름, 위원회는 최종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각 분야별 입장 차가 있지만 위원회가 농업분야 탄소중립 공감대를 이루고 상호협력을 통해 최종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은 큰 자부심이다.  

클뢰크너 장관은 “사회 전체의 노력 없이는 농업부문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면서 “표준을 높이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원회는 전환 프로세스에 필요한 추가 기금이 연간 70억유로에서 110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 비용은 농민이 단독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고 설명해 위원회 활동을 지지하고, 농업분야에 미래를 위한 사회적 비용 투입 필요성을 확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 정책 시행에 대해 농업계 반발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독일 최대 농식품산업 박람회가 열리는 1월이면 농민들은 대규모 집회를 연다. 탄소중립 농업정책을 주도하는 베를린 식품농업부 앞에 대형 트랙터가 늘어서는 것이다. 지난 1월 말, 멀게는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대형 트랙터를 몰고 온 각지의 농민들은 농가보조금 인상과 친환경농업 패키지 유예를 촉구했다. 당시 모인 트랙터 규모만 600대에 이른다. 독일 연방정부가 탄소감축 등 환경보호를 강조하지만 농민들은 과도한 규제, 소득의 불이익 등을 반발하고 있다.  

독일도 전체 산업 가운데 농업의 비중은 작다. 하지만 농업을 중요한 산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전 사회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독일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2014년 60만6,000명 △2015년 58만7,000명 △2016년 57만7,000명 △2017년 56만4,000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18년 57만명이 집계돼 전체 종사자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전체 인구는 2021년 현재 8,390만명이다.   

*자료제공: 독일 연방 식품농업부, 주한 독일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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