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천덕꾸러기 돼버린 감귤보험

  • 입력 2021.11.21 18:00
  • 기자명 고창건(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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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건(제주 서귀포)
고창건(제주 서귀포)

‘귤림추색(橘林秋色)’이라. 제주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돌담길 사이로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을 보노라면 올 한해 마무리되는 계절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제주는 날씨가 따뜻해서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다. 때문에 농민들은 계절감각을 농산물의 파종과 수확으로 구분한다. 올해 24년차 감귤을 재배하는 나는 3월부터 부지런히 감귤나무 전지·전정을 시작하였다. 감귤은 2년을 주기로 전지·전정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봄순 가지에 열리는 열매가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에 올해의 전지는 내년을 계획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봄에 전지·전정이 끝나면 봄비료 시비와 병해충 방제로 넘어가서 본격적인 감귤 농사가 5월 초부터 시작된다. 4월 말 5월 초 만개한 감귤꽃 향기는 과원을 넘어 제주섬 전체에 싱그러운 향을 뿜어댄다. 5월 밤에 별을 보며 산책하면서 깊은 숨 한 번 들이마셔 보시라. 향기와 공기가 폐부 속을 말끔히 청소해주는 상쾌함을 느낄 것이다.

감귤은 5월에 1차, 6월에 2차 낙과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가지에 열매가 남는다. 감귤나무 가지에 달린 열매는 타 과일에 비해 한 번 맺힌 열매가 태풍에도 잘 견디는 편이다. 그래서 제주의 효자 과일이라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기후위기로 냉해, 긴 장마와 태풍 등 자연재해가 심해지면서 다양한 고민거리가 생기고 있다. 감귤재배를 50년 이상 하신 어르신들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병해충의 발생이 빈번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과실 상태도 문제다.

필자는 농민회 활동을 하기에 감귤 재해보험에 가입하기를 주변에 권해왔다. 이유는 농산물 보험이 보장성 정책보험으로 가입비용 부담이 적고 영농비 수준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귤은 극조생과 조생으로 나뉜다. 극조생감귤 수확기는 10월 초부터 한 달이며 조생감귤은 11월 초부터 두 달가량 수확시기로 나뉜다. 수확 전 반드시 보험조사원에게 연락해서 피해율을 조사시켜야 보상금이 나온다. 그러나 올해는 감귤 피해조사 온 손해사정인과 한바탕 했다. 감귤은 긴 장마와 태풍으로 비상품이 눈에 보일 정도로 피해를 봤는데 피해율이 20%도 안 나오니 올해는 피해 신청하지 말고 내년에 하라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미 농협에 비상품 시장격리 신청 50% 이상을 해놓고 왔는데 보험회사는 20%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항의하니 23% 피해율을 잡아준다. 자부담 20%를 빼니 3% 피해율이다. 이마저도 내년에는 할증이 붙으니 올해는 피해 신청하지 말라는 얘기다.

감귤은 사과나 배 등 타 과일에 비해 태풍 등 바람에 의한 낙과는 없는 편이다. 그러나 껍질에 상처나 흠집이 잘 나기때문에 이를 격리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주변 선배는 직접 감귤 껍질을 까서 “흠집 난 부분은 버리고 깨끗한 나머지는 판매하란 말이냐”고 조사원에게 시연해 보여줬다. 그럼에도 조사원과 손해사정인들은 회사에서 교육된 방침 안에서만 조사하고 있다.

이럴 거면 왜 감귤 재해보험을 가입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내년에 가입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일 테니 맘대로 하라고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보냈다. 어처구니없이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감귤 재해보험이 이럴진대 결국 농산물 재해보험은 농민들 보상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보험회사 운영을 위한 정책 쇼에 불과한 상태로 전락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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