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보다 통제’ 친환경인증제, 바꾸자

‘연대책임’ 따른 작목반 전체 인증취소 문제 등 시정 필요성 제기

  • 입력 2021.11.01 00: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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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9월 전북 정읍 들녘에서 한 농민이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드론에서 살포된 농약은 바람 방향에 따라 인근의 논으로 쉽게 비산됐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월 전북 정읍 들녘에서 한 농민이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드론에서 살포된 농약은 바람 방향에 따라 인근의 논으로 쉽게 비산됐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농업 발전’이라는 원래 취지와 동떨어진 채, 사실상 ‘농민 통제’ 목적으로 오용되는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친환경인증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다.

최근 전라북도 한 지역에선 관내 친환경영농조합법인 소속 농가 중 상당수가 친환경인증 취소 위기를 겪고 있다. 해당 영농조합 소속 4개의 작목반 중 올해 6월부터 신규 친환경인증을 받은 한 군데를 제외한 나머지 세 군데 작목반은 지난 9월부터 인증 갱신 과정을 밟았다. 인증을 갱신받으려면 친환경농가들의 인증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민간인증기관으로부터 잔류농약 검출 여부를 재확인받아야 한다.

세 군데 작목반 합해 총 18농가가 표본을 제출했는데, 그중 4개 농가가 표본을 제출한 작목반 한 군데에선 잔류농약 검출 사례가 없었다. 그런데 나머지 두 작목반의 총 14개 농가가 제출한 표본에선 전부 잔류농약이 검출돼, 두 작목반 소속 농가 37군데가 전부 인증취소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게 영농조합 대표의 증언이다.

영농조합 대표는 “작목반 세 곳은 전부 다 쓰는 농자재도 같고, 농사방식도 같건만 세 곳 중 한 곳에선 농약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건 항공방제에 따른 비산 이외엔 원인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해당 영농조합은 국립농산물품질관원(원장 이주명, 농관원)에 이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지만, 농관원 전북지원에서 나온 답변은 “극소량의 잔류농약이 나온 걸 봤을 때 비산에 의한 것임은 인정되나, 현행 제도상 비산에 의한 잔류농약 검출도 인증제한 사항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표본을 제출해 잔류농약 검출이 직접적으로 확인된 농가뿐 아니라, 해당 농가들과 같은 작목반 소속의 농가들도 전부 인증을 취소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말하자면 ‘연대책임’ 문제다.

현행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시행규칙)」에 따르면, 친환경인증 취소는 “위반행위가 발생된 인증번호 전체(친환경인증서에 쓰인 인증 농산물 품목, 인증농지 전체)를 대상으로 적용”되는데, 생산자단체 차원에서 인증받은 곳에 대해선 “구성원 수 대비 인증취소 처분을 받은 위반행위자 비율이 20% 이하인 경우엔 위반행위를 한 구성원에 대해서만 인증취소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달리 말해 ‘위반행위자’ 비율이 20%를 초과할 시 어찌 될까. 예컨대 100명의 친환경농민이 속한 작목반에서 21명의 농지에서 ‘위반행위’가 벌어졌다고 가정할 시, 잔류농약 검출 사실이 나타나지 않은 79명의 농민도 인증취소를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대책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8년 6월, 모 지자체에선 9명의 유기농민이 모인 작목반 구성원 중 2명의 농지에서 제초제 성분이 발견됐다. 시행규칙 상, 생산자단체인 해당 작목반 구성원 9명 중 2명이 위반행위자라 그 비율이 20%를 초과(22.2%)했다는 이유로, 2018년 7월 5일 담당 민간인증기관은 해당 작목반의 유기농산물 인증을 취소시켰다.

이에 해당 작목반은 2018년 7월 18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친환경농산물 인증 취소처분에 대한 취소를 청구했다. 요점은 제초제 성분이 발견된 농지 자체에 대한 처분은 이의가 없으나, 실제 위반행위를 하지 않은 작목반원들까지 전부 유기농산물 인증을 취소시키는 처분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해당 청구에 대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측은 “설령 이 사건 작목반원들이 제초제를 살포하지 않았다 해도 농지에 대한 인증을 받은 자는 작목반원들이며, 작목반원들에 대한 인증변경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농지에서 유기합성농약 성분이 검출됐다면 인증기준에 맞지 않게 된 것”이므로 다른 농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상과 같은 상황도 잔류농약 검출만을 중시하는 ‘결과 중심 친환경인증제’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농지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됐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농민의 농사 과정을 판단하기에, 생산자조직이 단체인증을 받을 시에도 그들의 농지에서 잔류농약이 발견됐다 하면 ‘그들 모두가 책임지는 농지’라는 명분하에 단체로 인증 제한을 거는 것이다.

따라서 친환경인증제 개선을 위해 생산자의 유기적 생산과정 평가뿐 아니라, 부적합 사항을 통해 나타난 기준 이탈의 위험을 생산자와 공유하며 생산자가 시정조치를 효과적으로 실시했는지 재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의 입장이다.

37농가가 인증취소 위기를 겪고 있는 전북의 영농조합 대표는 “현행 친환경인증제는 모든 농민을 ‘언제 농약 칠지 모르는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제도”라며 “이제야말로 잔류농약 검출 중심 결과 중심 인증제가 아닌 ‘과정 중심 친환경인증제’로 개선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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