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식량과 에너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입력 2021.11.01 00:00
  • 기자명 최용재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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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정책국장
최용재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정책국장

 

 

1978년에 발간된 ‘Eating Oil(Westview Press 출판)’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화학자이자 저자인 모리스 B. 그린은 농식품 생산-가공-유통-소비 등의 먹거리 체계에 북반구 선진국들이 많은 양의 화석에너지를 얼마나 빨리 소모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식량 생산에 많은 석유를 투입할 수 없어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40여년 전 이런 책이 나온 걸 보면, 최근 상황처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과 먹거리 정의를 달성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서구사회에서는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 두 가지가 있다. 요즘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수급 불안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식량과 에너지인데, 식량은 신체를, 에너지는 사물을 움직이기 위한 것이다. 신체나 사물을 움직이는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역과 재화의 생산 때문이다.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은 다른 재화의 생산과 매우 다른 점이 있다. 농업은 인간이 식물의 유전적 재생산 기능을 활용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시켜 유기물을 추출하는 활동인 데 반해, 다른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활동은 생명의 재생산이 없는, 즉 온실가스를 배출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업생산의 자본재 투입 의존 심화로 식량과 그 외 재화의 생산 양식은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지난 2019년 농민농업 국회 국제심포지엄 자료집에 게재된 네덜란드 연구 사례에 의하면, 1950년 100GJ의 농식품을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에너지는 81GJ이었는데 2015년에는 225GJ로 3배 정도 늘어났다.

즉, 1950년대에는 적어도 19%의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반면, 최근에는 자재와 농기계 등의 사용으로 2~3배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Eating Oil’처럼 우리는 식량을 먹는다기보다 석유와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석에너지를 먹는다는 편이 맞다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온실가스 증가에 의한, 지구표면의 온도상승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부정적 영향이다. 이러한 온실가스는 대부분 석탄이나 석유같이 땅에 묻혀있는 탄소인 화석연료를 이용한 인간의 생산과 소비활동에 기인한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먹거리 생산소비 체계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7%를 차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우리 정부는 농업생산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적은 3.1%로 산출하고 있다.

그 차이가 너무 커 당황스럽지만, 적은 양일지라도 정부는 농업분야의 탄소중립 달성에 기술과 자본 중심의 해결 방안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앞서 농식품 생산의 에너지 효율로 기술한 바와 같이 탄소중립을 위해 농업에 에너지 고투입 자본재를 사용하는 것은 병주고 약주는 기만행위라 할 수 있다. 토양 자체가 거대한 탄소저장고이며, 지역자원 순환농업을 통해 토양 유기물 함량을 높임으로써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 정부가 농업의 주체인 농민을 진정으로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식량과 에너지 생산에서 태양에너지가 경합될 때는 갈등 형태로 표출된다. 삶에 필수적이든 아니든 각종 재화를 생산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은 계속 필요하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공급에서 벗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토지가 필요하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 가장 편리하게 확보할 수 있는 토지가 농지이기에 각종 제도 개악과 태양광 발전 보조사업으로 농지가 사라지고, 농촌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 식량 생산에 매우 중요한 농지와 농촌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도시와 공장에서 대부분 소비하는 전기 에너지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정부의「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지역에 10GW 태양광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1만3,000ha의 농지가 필요하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약 500GW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필요한데, 그중 대부분이 태양광 발전이라고 한다면 그 토지의 대부분은 정비 잘 된 80만ha의 논이 될 것은 자명하다. 논에 태양광 설비가 대규모로 들어선다면 쌀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사료 포함 21% 수준의 식량자급률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농지를 보전해 자원순환형 건강한 토양 농민실천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면 먹거리와 농자재 수입으로 인한 수송 분야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함께 건강한 식량 공급을 통한 식량자급률 제고, 농업 분야 탄소중립 달성, 공익직불 및 농민 기본소득 근거 제공, 농촌공동체 활성화 등의 다양한 긍정적 효과로 기후위기와 지방소멸 극복 등의 중요 난제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건강한 먹거리가 중요한가? 필수적이지 않은, 재화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이 중요한가? 이에 대한 답변이 요구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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