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북지역 9개 농협이 부실한 절차로 기업대출을 진행했다가 큰 손실을 입게 됐다.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는 경매·공매 등 환수작업 이후의 예상피해액을 40억~45억원으로 밝혔지만 현재로선 137억원이 미수 상태다. 농민들은 지역농협 신용사업의 한심한 행태를 비판하며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대출이 이뤄진 건 2017년 12월에서 2018년 3월 사이다. 김제지역 7개 농협(동김제·백구·광활·진봉·금산·공덕·용지농협)과 무주농협이 군산의 한 미분양 연립주택을 담보로 225억200만원의 공동대출을 감행했고 전주농협은 인천의 상가를 담보로 49억5,400만원의 대출을 승인했다. 인천 상가 역시 군산 연립주택과 사실상 채무자가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한 사업자에게 275억원 규모의 공동대출이 이뤄진 것이다.
대출규모나 공동대출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문제는 대출 승인 과정이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 감사 결과 문제의 농협들은 △소요자금 적정성과 상환능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음은 물론 △담보인정비율을 상향할 수 없는 미분양 연립주택임에도 10%를 상향해주고 △외부감정평가 의뢰 시 절차를 위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장조사를 아예 진행하지 않거나 △미분양 상태임을 인지하고서도 자의적으로 분양으로 간주하고 절차를 진행한 농협도 있었다.
농협이 특히 철저를 기하는 신용사업에서, 일개 농협도 아닌 9개 농협이 무더기로 절차를 얼버무렸다는 점에서 단순 과오를 넘어 내부 유력인사를 중심으로 한 모종의 비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채권 부실이 발생했고 현재 미수금 규모는 동김제농협 38억원을 필두로 대부분의 농협이 10억원대씩, 총 137억1,953만원이다.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가 최근 규정 개정과 전산시스템 강화를 중심으로 한 ‘전북농협 부실대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농민들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의장 이대종)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규탄에 나섰다.
이들은 “농협이 조합원인 농민들을 위한 경제사업보다는 수익만을 중시하는 신용사업에 더 몰두하고 있으며, 그 수익마저 대부분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라며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짚었다. 또 “지역농협의 대출에 지연·학연 등 개인적인 인연이나 인맥을 내세워 활동하는 브로커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브로커들은 건실한 기업의 대출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대부분 부동산업자를 중심으로 한 개발업자들과 공모해 부실대출을 유도·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역농협 경제사업 비중을 높이는 규정을 만들 것 △전국 지역농협 경영지표 관련사항을 매년 언론에 공표할 것 △비상임 이·감사의 감시기능을 높이고 조합장·상임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규정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대종 의장은 이에 더해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배후 브로커와 의혹을 남김없이 밝혀내 처벌할 것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가 근본적·구조적 대책을 제시할 것 △국회와 정부가 농협법·농협관료 문제 등 농협개혁에 발 벗고 나설 것을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지역농협들은 추가 환수작업 후 대손충당금 처리를 하면 피해를 거의 상쇄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이 대손충당금 사용 역시 논란거리다. 표면상으로만 봐도 직원의 과오로 인한 손실이며 이면에 임원 비리의 가능성이 짙게 드리워 있기 때문이다.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은 “조합의 대손충당금은 정상적인 절차로 대출을 했고 불가피한 사유로 회수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엄연히 직원의 잘못이고 총체적 비리가 관련된 것인데 대손충당금을 활용하는 건 부당하다”며 “이참에 대손충당금이 너무 많게 혹은 적게 적립되고 있진 않은지, 이번과 같은 일에 엉뚱하게 지출되진 않는지 반드시 점검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