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똑같은 과일 색다른 맛 어때요?

  • 입력 2021.09.10 11:14
  • 수정 2021.09.10 11:2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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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추석 명절을 보름 가량 앞둔 지난 7일 전남 나주시 삼영동에 위치한 한배농원 작업장에서 농민들이 국내육성품종인 황금배의 꼭지를 다듬고 포장용 캡을 씌우고 있다.한승호 기자
추석 명절을 보름 가량 앞둔 지난 7일 전남 나주시 삼영동에 위치한 한배농원 작업장에서 농민들이 국내육성품종인 황금배의 꼭지를 다듬고 포장용 캡을 씌우고 있다.한승호 기자

 

“올해는 배가 별로 맛이 없네.”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시기 맛본 명절 과일에서 맛을 찾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점 하나 없이 불꽃처럼 빨간 사과, 껍질이 아기 피부처럼 매끈한 배가 그저 그런 맛을 보여주는 명절이 종종 생긴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적어도 명절 과일의 경우엔 항상 들어맞진 않는다.

그동안 사과와 배는 명절 제사상 위 홍동백서(紅東白西)를 실현하기 위한 대표 제수 과일이자, 선물용으로도 널리 쓰였다. 바로 그 용도의 특수성 탓에, 엄연히 ‘맛’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할 먹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소비 시장에서는 깔끔한 외관과 큰 크기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곤 했다. 집안의 조상들을 한데 모셔 숭배하는, 유교 문화권에서 최고로 중요한 의식을 군데군데 물 빠진 사과로 장식할 순 없었을 테다. 명절을 구실 삼아 선물과 함께 인사를 할 정도로 중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모양이 울퉁불퉁한 배를 보내는 것 역시 사회적 통념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용인이 쉽지 않다.

이러한 배경 속에 자리잡은 소비 행태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결과, 오늘날 이 두 과일이 유통되는 시장의 구조는 가히 기형적인 수준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추석은 해마다 다른 날에 오는데 농가들은 시장이 찾는 단일 품종으로만 대응해야 하니, ‘제철 과일을 제철에 먹지 못하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예를 들어 배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전파된 이래 재배되고 있는 중만생종 ‘신고’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사실상 신고 외의 다른 물건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고급스럽고 균일한 색감, 매우 큰 크기 등 외관 중심의 장점이 커 주목받은 결과지만, 이 품종의 당도는 때로 12브릭스(°bx, 당도의 단위)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날이 증가하는 농산물 수입으로 체리·포도 등 15브릭스 이상의 고당도를 뽐내는 수입 과일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특히 젊은이들은 더 이상 오늘날 기준으로는 맛이 없고 먹기까지 불편한 과일을 쉬이 찾지 않는다. 포도 시장 개방 이후 국산 캠벨 포도의 지위가 몰락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진 게 대표적 사례다.

지금껏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과와 배의 소비량이 일정 수준 유지된 건 막대한 양의 명절 수요 덕이 컸으나 코로나19 이후 각 가정에서 대규모 인원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문화는 이제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전통적 과수 농업은 명백하게 위기에 놓인 상황이지만, 달리 해석하면 농산물 수입 개방 시대에 차츰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는 우리 사과와 배가 다시 도약할 좋은 기회로도 바라볼 수 있다. 맛에 있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국내 품종들이 이미 다수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과수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질 이 품종들의 시장 안착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적 홍보가 진행되고 있지만, 고착된 시장을 깨기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 후 벌써 세 번째 다가온 명절, <한국농정>은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거란 확신을 담아 국내 품종 사과와 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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