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농민권리선언’ 채택 의의와 국내 이행 방안 모색

[기고] 김정열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

  • 입력 2021.08.29 18:00
  • 기자명 김정열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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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

지난 2018년 12월 17일 뉴욕에서 열린 제 73차 유엔총회에서「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선언(농민권리선언)」이 각국 정부의 투표(찬성 121, 반대 8, 기권 54표)로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오랫동안 유엔 인권이사회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고 수많은 협상과 타협이 있었다. 전 세계 농민들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신장에 이바지하는 선언이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유엔총회에서 이 선언 채택여부 표결에 기권하는 등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유엔의 농민권리선언 채택은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국제규범으로 작동할 것이며 이후 각국 정부의 법, 제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농민권리선언은 2001년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 국제농민운동조직으로부터 제안되었다. 1993년 창립된 전 세계 소농들의 국제연합조직 비아캄페시나는 WTO 중심으로 농업의 국제무역이 확산되고 신자유주의 경제 체계로 기업들의 농자재 및 농업과 먹거리의 통제가 심화됨으로써 농민의 권리는 물론이고 농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되자 농업개혁과 농민의 생존권 보장,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되었다. 세계화된 먹거리체계를 한 국가의 정부정책만으로 막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법 및 규범, 질서를 새로 만들어 낼 필요성을 논의하게 되었다.

2001년 유엔에 제안된 뒤 2003년부터 유엔 인권이사회에 비아캄페시나 활동가들이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소농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7~2008년에 있었던 국제적인 식량위기 이후 소농의 권리와 식량의 안정성은 직결되어 있다는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 내에서 정부간 개방형 워킹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워킹그룹은 2013년부터 총 5차례에 걸친 논의와 협상 끝에 선언문 초안을 마련했고 이를 2018년 9월 인권이사회에서 유엔총회에 제출하기로 합의해 마침내 12월 총회에서 채택이 이뤄졌다.

이 선언은 총 28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본권으로서 누려야 할 사법권,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포함해 참여권, 정보에 대한 접근권, 교육 훈련에 대한 권리, 그리고 농민의 권리로서 토지, 종자, 물, 생물다양성, 자연자원, 전통지식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의 권리, 적절한 소득과 생계에 대한 권리, 적절한 먹거리에 대한 권리, 그리고 특별히 청년과 여성농민의 권리 등을 다루고 있다.

농민권리선언은 농민에 대한 시혜적 차원의 지원이나 복지정책의 강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 생산의 주체로서 생산자원의 접근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의 권리, 기업과 시장 중심의 먹거리체계가 아니라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심의 지역화된 먹거리체계에 대한 권리를 말하고 있다. 또한 법적인 지위가 없는 농민과 농촌노동자들의 권리까지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다뤄 국제적인 인권운동의 확장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정부는 1조 농민의 정의 4항에서 법적인 지위가 없는 사람들까지 이 권리의 주체자인 부분에서 동의하기가 어렵고, 17조 6항 토제 재분배개혁과 관련해 이미 한국은 토지개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국 상황과 맞지 않고, 19조 종자에 대한 권리 중 1항 d ‘농민에게 종자 판매의 권리가 있다’는 부분에서 국내법과 상충되기 때문에 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식량자급률 21% 밖에 되지 않는 나라, 65세 이상이 전체 농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 농지의 42.8%(2015년 기준)가 농민의 소유가 아닌 나라 한국에서 지속가능한 식량체계,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위해서 반드시 검토되고 참조해야 할 중요한 국제규범임을 한국정부는 놓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농민단체 중심으로 선언문 초안을 협상하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채택을 촉구하는 농민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고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선언문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혀 줄 것을 촉구하는 활동 등을 했다. 또한 민간포럼을 구성하여 국내에서 이를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과정 중에「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선언을 알리고 선언을 통해 국내법과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국 농업·농촌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농민권리선언포럼>을 지난 4월 발족하게 되었다. 이 포럼의 발족은 국내에서 논의가 활발하지 못 했던 ‘농민의 권리’에 대한 담론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이와 연관하여 농민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도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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