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대파 폭락 “하늘만 바라볼 뿐”

4개월 만에 똥값 된 ‘금대파’

수확하면 손해 나는 현실에

8월에도 새파란 중부 대파밭

고랭지·겨울대파까지 먹구름

  • 입력 2021.08.06 16:22
  • 수정 2021.08.13 13:2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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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대파가격이 지독하게 폭락해 경기·호남지역은 물론 강원·전남까지 도미노 피해가 예상된다. 지난 3일 경기 이천시 대월면 대파농가 이강억(80)씨가 아직 출하하지 못한 파밭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대파가격이 지독하게 폭락해 경기·호서지역은 물론 강원·전남까지 도미노 피해가 예상된다. 지난 3일 경기 이천시 대월면 대파농가 이강억(80)씨가 아직 출하하지 못한 파밭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대파 가격이 대책없는 폭락에 빠졌다. 이미 지난달부터 가격이 바닥을 찍었음에도 반등의 기미는 없고, 후속 출하 지역의 재배면적도 크게 늘어 말 그대로 출구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중부지역 농민들은 수확을 포기한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처지다.

올해 초 대파는 ‘도매가격 kg당 4,000원대’라는 이례적인 폭등을 맞으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각종 매체에선 마치 국민경제가 파탄날 것처럼 자극적 보도를 쏟아냈지만, 폭등세는 채 4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4월 하순부터 급격한 내리막을 타기 시작해 지난달 한때 kg당 500원대를 찍었고 현재 700~800원대에 멈춰 있는 중이다. 폭등 때도 그랬듯 폭락이 일어나도 국민경제엔 아무런 영향이 없으며, 다만 농민들의 피해만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역 대파는 전남 겨울대파와 강원 고랭지대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상 8월이면 수확이 거의 마무리돼야 할 시점이지만, 중부지역 대파밭은 아직 푸른색이 여실하다.

농민들에 따르면 1kg 한 단 기준 대파 생산비는 약 333원, 임차료를 포함하면 500원이 된다. 여기에 수확기 작업비·운송비가 700원이다. 도합 1,033~1,200원. 현재의 도매시장 시세 700~800원으로는 수확하는대로 손해를 볼 뿐이다. 그 손해액이 12톤 트럭 한 대당 약 300만원이다. 중부지역 대파 수확이 시작되는 6월부터 대파값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속수무책 밭에 손을 못 대고 있다.

정상 출하시기를 지난 대파. 보통 줄기에 8마디가 형성되면 출하하는데 9마디를 넘기고 있다.
정상 출하시기를 지난 대파. 보통 줄기에 8마디가 형성되면 출하하는데 9마디를 넘기고 있다.

대파값이 이렇게 폭락한 이유는 단연 겨울대파 폭등에서 비롯된 재배면적 증가다. 하지만 이를 농민들의 욕심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우선 코로나19로 촉발된 인력난에 상대적으로 손길이 덜 가는 대파 재배가 늘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어느 작목 하나 안정적 소득보장이 안되는 농업현실 속에서 대파는 당시 시점에서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즉 농가 개개인의 판단에 앞서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인데, 아직까지 대파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은 전무하다. 같은 중부지역이라도 농가가 광범위하게 산재돼 있는 대파의 특성상 품목 조직력이 취약해 정부-농민 간 소통창구마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문제는 중부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측에 따르면 올해 고랭지대파와 이어지는 겨울대파 모두 재배면적이 전년대비 12%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폭락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중부지역의 경우 8월까지 출하하지 못한 물량을 그대로 포전에서 관리하다 고랭지대파 출하가 끝나는 10월경 출하하는 경우도 있지만, 올해는 그조차 희망이 없는 셈이다. 10월까지 끊임없이 투입되는 관리비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갈아엎고 재파할 작목조차 마땅찮은 현실이다.

경기 이천의 대파 농가 A씨는 “도저히 수확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무 것도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피해를 입어도 좋다. 태풍이라도 몇 번 쓸고 가 큰 피해가 나지 않으면 대파는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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