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가격 ‘유리천장’에 허리 못 펴는 농민들

전남지역 중만생양파 농협수매가 1만1,000원 수준 형성

나쁜 가격 아니지만 인건비 급등 탓에 농민 적자 위기

조생폭락·통계불신·수입우려 등 가격상승 제한요인 많아

  • 입력 2021.06.27 18:00
  • 수정 2021.06.28 13:4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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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중만생양파 농협 수매가가 하나 둘 결정되고 있지만 농민 입장에선 썩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농가에 따라서는 적자를 볼 수도 있는 정도다. 문제는 현 수준에서 가격을 더 올리자면 유통분야에서 상당한 저항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실 어느 작목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지만 올해 중만생양파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최근 중만생양파 농협 수매가는 나쁜 편이 아니다.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20kg당 1,000원가량 오른 1만1,000원 수준의 수매가가 결정되고 있으며 으레 그렇듯 영남지역은 그보다 높은 가격이 기대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불만이 거의 나오지 않을 가격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력난이 극심해진 올해는 농촌 인건비가 최대 2배까지 상승해 1만1,000원의 가격으로도 농민들이 수익을 보장받기 어렵다. 평당 23kg 이상을 수확해야 간신히 생산비를 건지고, 20kg을 수확하는 밭은 적자를 보는 실정이다.

사실 중만생양파 생산량 감소가 점쳐지면서 농민들은 인건비 상승을 감안한 수매가격 현실화가 가능하리라 기대했고 전국양파생산자협회 또한 전남지역부터 ‘1만2,000원’ 보장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수매가 1만1,000원을 넘기는 데엔 농협을 비롯한 유통업계가 몇 가지 부담요인을 안고 있다.

농촌 인건비가 전례 없이 급등했지만 산지농협들이 중만생양파 수매가 결정에 이를 반영하길 주저하고 있고 이에 민간 수집상들은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전남 함평군 대동면 상옥리의 한 마을 앞 공터에 쌓아놓은 만생종 양파 모습.한승호 기자

농촌 인건비가 전례 없이 급등했지만 산지농협들이 중만생양파 수매가 결정에 이를 반영하길 주저하고 있고 이에 민간 수집상들은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전남 함평군 대동면 상옥리의 한 마을 앞 공터에 쌓아놓은 만생종 양파 모습. 한승호 기자

첫째는 조생양파 폭락으로 인한 농협의 재정부담이다. 올 봄 농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생양파가 kg당 400원대의 폭락을 맞았고 이로 인해 양파를 취급하는 농협들이 큰 손실을 봤다. 중만생양파까지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조합 경영 자체에 큰 타격을 입는 만큼, 수매가 결정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배정섭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은 “조생양파로 무안지역 주요 3개 농협이 각기 3억~5억원씩은 적자를 봤을 것이다. 적어도 수매가 1만2,000원은 책정해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농협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며 속상해했다.

둘째는 정부 통계에 대한 불신이다. 터무니없는 수치를 발표한 통계청 통계는 현재 양파산업 전체에서 외면받고 있으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측이 모든 정책과 논의의 기반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 공식통계를 버리고 연구기관 관측에 의존하는 모습부터가 기형적이거니와, 그렇다고 공식통계가 아닌 이상 농경연 관측 역시 신뢰도를 제대로 담보할 수 있을 리 없다.

농경연은 올해 중만생양파 생산량이 평년대비 2.8~4.2% 감소할 것이라 전망했고 작황이 더욱 좋아진 최근에 이르러서도 당초 관측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보고 있다. 하지만 농협과 유통업자들은 최근 산지의 비상한 작황을 거론하며 평년대비 생산량 ‘증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실 여하를 떠나 양파산업의 통계 신뢰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건 분명하며 이는 적어도 농협과 유통업자들이 양파가격을 낮춰 잡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는 수입에 대한 우려다. 양파 시장가격이 20kg당 1만8,000원을 넘어가면 수입양파가 대량 유통될 조건이 되는데, 산지 수매가가 1만1,000~1만2,000원만 돼도 운송·보관·출하비, 감모율 등을 따지면 시장가격이 거의 1만8,000원에 육박한다. 때문에 산지 유통업자들 사이에선 “1만2,000원 이상의 수매가가 나와선 안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수입양파가 국산양파 가격형성에 ‘유리천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며 올해 같은 인건비 급등 상황에선 농민들이 압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는 중국 산둥성의 양파 생산량이 줄어 수입 걱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일본 및 동남아 각국으로 수입국이 다변화됐고 중국 간쑤성의 양파 생산량이 늘었다는 소문까지 있어 안심할 수가 없다. 통계 신뢰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적어도 양파가격 상승을 저지하는 명분이 되기엔 충분하다.

조만간 영남지역까지 속속 농협의 중만생양파 수매가 결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전남지역과 달리 여타 지역은 사후 수익 환원조차 활발하지 않은 분위기라, 결정되는 수매가 자체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두의 촉각이 한껏 곤두서 있지만 도처에 가격을 억누르는 요인만이 가득한 탓에 농민들의 피해가 한층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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