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뚫고 퓨처’ … 대북제재 벽 뚫고 미래 통일농업으로

  • 입력 2021.06.20 18:00
  • 수정 2021.06.20 20:3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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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입구에서 ‘대북제재 해제! 통일품앗이 실현! 4.27 전국농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전국에서 올라온 통일트랙터 27대가 임진각을 향해 대열을 이룬 채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19년 4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입구에서 ‘대북제재 해제! 통일품앗이 실현! 4.27 전국농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전국에서 올라온 통일트랙터 27대가 임진각을 향해 대열을 이룬 채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대북제재. 남북농업교류를 틀어막는 주요 장벽 중 하나다.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사회는 국제연합(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대북제재 해제가 어렵다면, 제재의 틈바구니를 뚫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가는 경기도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제재의 철옹성에 좌절만 할 것이 아닌, 어떤 식으로든 제재 장벽을 뚫고 통일농업의 미래를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제재가 야기한 북의 농업위기

헤이젤 스미스 영국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 교수는 지난해 7월 28일 미국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주최 웨비나 ‘대북제재의 윤리’에서 “제네바협약에선 전시(戰時)의 식량 생산(체계) 파괴를 명백한 전쟁범죄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교수는 유엔 대북제재가 북의 농업 생산체계를 파괴하고 식량위기를 부추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은 연간 약 550만톤의 곡물이 필요하다. (중략) 2018년 (유엔의 대북) 에너지 제재 시행 후 농업생산량은 2019년 400만톤으로, 150만톤의 식량이 부족했다.”

최근 북의 식량위기 요인 중 하나로 스미스 교수는 ‘2017년 유엔 제재 강화에 따른 원유 부족’ 문제를 든다. 북은 원유가 나지 않기 때문에, 비료와 살충제의 원료이자 각종 관개장비·농기계에 사용할 원료로서의 원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7년 9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으로의 유류 공급을 30% 가량 차단하는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채택했다. 유류를 전차나 전투기 등 무기 연료로 쓰는 거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이찬우 일본 테이쿄대 교수는 북의 비료생산 상황에 대해 “성분량 기준으로 1985년 76만톤 수준에서 1994년 22만톤, 1998년 5만톤 수준으로 급감했다. 2008~2012년 사이 평균 국내생산량이 22만톤 정도로 다시 회복됐으나 필요성분량 70만톤의 30% 수준에 불과했다”고 2019년 저서 <북한경제와 협동하자>에서 언급했다.

이 교수는 “중요 농자재인 비닐박막은 조기수확, 냉해방지, 잡초 방제, 동물피해방지 등의 효과가 있으나 석유화학산업 미발달로 국내생산량이 부족했다. 그리고 석유에너지 부족에 따른 농기계화 미진도 농업생산량을 제약하는 요인”이라 지적했다.

제재정국에 대한 북의 농업분야 대응은?

대북제재에 따른 에너지 부족 만성화와 그에 따른 농자재 부족 심화는 북의 농업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 그러나 북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북측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4년 2월 6일 열린 전국농업부문 분조장대회 참가자들에게 <사회주의 농촌테제의 기치를 높이 들고 농업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자>는 서한(농업혁신서한)을 발표했다. 북녘 연구자인 유영구 전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은 농업혁신서한의 주요 혁신조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지대적 특성과 자연기후조건에 맞는 작물·품종배치와 적시(適時)의 질적인 시기별 영농작업이다. 각 포전(논밭)별 자율적 책임영농을 중시하자는 내용이다. 둘째, 과학기술적 비료치기와 유기농법의 적극 장려이다. 셋째, 선진 영농방법과 기술의 광범위한 도입 및 농산·축산의 고리형 순환생산체계(경축순환농업) 확립이다.

이 중 유기농법과 고리형 순환생산체계 강조가 눈에 띈다. 유기농법 강조는 1차적으로는 경제제재에 따른 농약·화학비료 부족 문제와 무관하지 않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질소비료 사용에 따른 토양 산성화와 수질오염 문제도 고려한 듯하다. 농축산 결합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농산·축산·과수·잠업 등 각 부문별 생산물과 배출물을 서로 다른 부문의 비료·사료로 활용하게 해 전반적인 생산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경제제재에 따른 자원 부족 상황에서, 북은 기존에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농업분야의 혁신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쿠바가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 뒤 미국의 경제제재에 맞선 ‘자립농업’으로서 유기농업과 농생태학 실험을 시작한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한 동기라 볼 수 있다.

이찬우 교수는 향후 농업부문 남북협력 강화를 위해 "생산기술, 자재공급, 품종개량, 비교우위 품목의 유무상통, 계약재배, 협동조합 간 직거래, 판매시장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게 좋다"며 "북한의 옥수수, 감자, 특용작물과 남한의 쌀, 기타 특용작물 교환도 좋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농업기술과 농자재에 대한 국제협력도 좋다. 농업부문의 인재육성은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뚫을 수 있는 건 뚫자

대북제재의 철옹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통일농업 실현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궁극적으론 △대북제재 철폐 △한미연합군사훈련 등 대북 적대시 군사정책 중단 △6.15 공동선언 등 남북합의 이행 △대북(對北)·대중(對中) 적대적 한미일동맹 해체 등이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흥식, 전농) 등 평화통일 촉구 시민사회의 입장이다.

우선은 철옹성의 ‘뚫을 수 있는 공간’을 찾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당장 대북제재 철폐는 쉽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제재 면제 신청과 설득을 통해 ‘할 수 있는 교류’는 하자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남북교류협력사업 재개를 위한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노력이 눈에 띈다. 경기도는 2019년 12월 2일, 황해북도 개풍군 양묘장 조성사업을 위한 지원물자 152개 품목(22억7,500만원)에 대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다.

경기도는 또한 지난해 8월 4일엔 ‘온실지원을 통한 남포·평안남도 지역의 영유아·여성·노약자 등 취약계층 영양개선 사업’을 위해 자동화 유리온실·채소종자·비료·농약·태양광에너지·지하수 관정 등 온실자재 298개 품목(4억5,000만원)에 대한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아냈다.

물론 면제 승인 과정은 쉽지 않다. 대북제재위원회는 대북 사업 중 △인도주의적 지원 성격 △북측에 들어간 물자가 목적대로 분배되는지 상시 모니터링 가능, 이 두 가지 모두 해당돼야 제재를 면제해준다. “이건 인도주의적 지원 성격이 아닌 ‘경제협력’ 성격 아냐?” 또는 “이 물자는 금속류인데 군사 목적으로 쓰이는 거 아냐?”는 식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과정도 복잡하다. 유엔 대북제재 면제 신청절차는 신청서 작성(신고인) → 신청서 검토 및 번역(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 내부/관계부처 협의(통일부) →신청서 유엔 제출(외교통상부) → 면제 신청 심의/협의(유엔 대북제재위원회) → 거부 또는 승인, 승인 시 반출신청 등 후속조치(신고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조영철 경기도 평화협력국 주무관은 “제재 면제를 위해 우리로서도 치밀한 논리와 명확한 근거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의한다”며 “어떤 사업이 한 번 제재 면제를 받으면 같은 성격의 사업은 계속 면제받을 수 있고, 반면 한 번 거절당한 사업은 완전히 내용을 뒤집어엎지 않는 한 계속 거부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남북농업교류 관련 대북제재 면제 승인 사례는 교류를 고민하는 타 지자체에도 귀감이 될 만하다. 경기도는 타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참고가 되라고 ‘대북제재 면제 실무 매뉴얼’까지 제작해 배포했다. 조 주무관은 “농업분야에서라도 제재 면제를 더 적극적으로 신청하자는 취지”라며 “대북제재가 존재하는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되, 그 속에서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힘을 합쳐 교류할 수 있는 것은 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 이찬우, <북한경제와 협동하자>(시대의창, 2019), 유영구,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2>(경인문화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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