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급식? 실상은 ‘절망급식’ 바우처

  • 입력 2021.05.30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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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서울시 한 편의점에 붙은 희망급식 바우처 홍보 포스터. 서울시교육청이 주도한 희망급식 바우처 지원사업은 ‘친환경 무상급식 취지 망각’이란 오류를 범했다.
서울시 한 편의점에 붙은 희망급식 바우처 홍보 포스터. 서울시교육청이 주도한 희망급식 바우처 지원사업은 ‘친환경 무상급식 취지 망각’이란 오류를 범했다.

“야 과일 내놔!”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A편의점. 이곳에선 때아닌 ‘과일 쟁탈전’이 벌어졌다. 학생들 몇몇이 편의점을 두리번거렸다. 한 학생이 편의점 과일 칸에서 예닐곱 송이짜리 컵포도를 발견했다. 그 컵포도는 매장에 남은 유일한 컵포도였다. 컵포도가 탐난 친구들은 “야 과일 내놔!”라고 외쳤다.

“야 이거 되냐? 안 된다고? 야 이건?”

또 다른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든 채 편의점 안을 돌며 물품을 골똘히 살폈다.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이 원격수업 학생 56만명에게 지급한 10만원 어치 희망급식 바우처로 이용 가능한 품목인지 아닌지 일일이 확인하는 중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우유 또는 도시락을 들고 삼삼오오 편의점 직원에게 가 “이거 바우처 돼요?”라고 물었다.

이는 희망급식 바우처가 낳은 진풍경이다. 언론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원하는 먹거리를 찾기 힘들어 곳곳을 헤맨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다수 언론의 비판은 ‘품목의 다양성 부족’에 방점이 찍혔다. 그것도 문제는 맞다. 그러나 그게 핵심일까?

희망급식 바우처의 진짜 가장 큰 문제는 ‘친환경 무상급식 취지 망각’ 및 ‘이 땅의 농민과의 단절’이다. 이를 드러내는 예시를 일부 살펴보자.

첫째, ‘유전자조작식품(GMO) 배격’ 원칙의 망각이다. 서대문구 B편의점. 희망급식 바우처 구입 대상인 도시락 및 샌드위치 몇 개의 식품 성분을 살펴봤다. 포함된 성분 중엔 ‘외국산 대두유’가 있었다. 어디라고도 안 나와 있고 그냥 ‘외국산’이다. 현행 유전자조작식품(GMO) 표시제 상 외국산 대두유는 GMO 대두로 가공했어도 ‘가공 과정에서 단백질이 안 남았기에’ GMO 표시대상이 아니다. ‘GMO가 섞였을지도 모르는’ 도시락이 대상품목으로 버젓이 팔린다.

물론 기존 학교급식도 GMO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이에 서울시는 조금이라도 더 Non-GMO 먹거리를 늘리고자 2018년부터 ‘GMO로부터 안전한 학교급식’ 시범사업을 시작한 뒤 올해부터 이를 본 사업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의 Non-GMO 급식에 ‘타당성이 없다’며 협조하지 않아 Non-GMO 급식을 가로막았다. 학교에서든, 편의점에서든, 서울시교육청은 Non-GMO 먹거리 공급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다.

둘째, ‘국산 먹거리 우선’ 원칙의 망각이다. 학생들이 과일 쟁탈전을 벌였던 A편의점. 학생이 컵포도를 가져간 과일 칸을 살펴보니, 미국산 폴&박 레몬 2입짜리 1묶음, 뉴질랜드산 제스프리 썬골드 키위 4입짜리 한 상자가 있었다.

편의점 체인 중 하나인 세븐일레븐 측이 작성한 ‘서울시 급식 바우처 결제 가능 상품목록’을 봤다. 품목 중엔 델몬트(Del Monte) 바나나, 돌(Dole) 코리아 바나나·아보카도 등 수입 과일이 포함돼 있다.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과정에서 편의점들이 ‘과일꾸러미’를 판매하고는 있다. 그러나 과일꾸러미는 수박 5kg 미만이 1만5,900원, 과일꾸러미 소형이 3만9,000원, 중형이 5만5,000원, 대형이 7만7,000원이다. 학부모들이 희망급식 바우처로 구입 가능한 범위이지만 학생들이 구입하려면 부담이 적지 않은 가격이다.

물론 원격수업 학생들에게 온전히 국산 과일만을 공급하는 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 먹거리운동 시민사회 관계자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강조하던 서울시교육청이, 왜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편의점 업계와는 접촉하면서 정작 생협이나 친환경먹거리 전문점 등과는 접촉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사회 관계자도 “어떻게든 지역 농민들과 연계해 먹거리를 공급하는 식당들이 많은데, 서울시교육청이 이런 식당들과 연계해 먹거리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과정에서 ‘어디서 나온 먹거리인가’란 점도 사실상 무시되는 상황이다. 과일꾸러미의 출처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측은 “판매자들 입장에선 ‘영업비밀’이라 여기니, 편의점 측에 구입 경로까지 묻긴 힘들다”고 답했고, 편의점에서도 “정보를 알려드리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희망급식 바우처 품목 중엔 샐러드가 속해 있는데, A편의점을 둘러보니 모 농업회사법인에서 생산한 샐러드가 ‘희망급식 바우처 대상상품 10% 할인’이라 쓰인 칸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해당 농업회사법인은 식물공장을 각지에서 운영하는 업체로, 식물공장에서 수경재배로 생산된 채소류를 샐러드 재료로 납품 중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부터가 친환경 무상급식 실천을 표방해 온 만큼, 좀 더 ‘원칙 고수’를 위해 노력할 순 없었을까? 지난해 진행했던 친환경농산물 꾸러미에 대해 학부모들의 불만이 있었고 보관상의 어려움이 있었다면, 학부모와 농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하는 방법을 강구할 순 없었을까? 하다못해 탄력적 희망급식(본지 947호 <세 번째 ‘코로나 학기’ … 학교급식 현장 상황은?> 참고)은 선택사항에 없었을까? 어찌 됐든 서울시교육청의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은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절망급식 바우처’로 비판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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