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예외 축소’ 농안법 개정안, 도매시장 폐단엔 눈 감았나

김승남 의원 발의 농안법 개정안

도매시장 적폐 곪아터진 가운데

개혁은커녕 적폐 보호효과 우려

  • 입력 2021.03.23 18:05
  • 수정 2021.03.25 13:1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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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말 더불어민주당 김승남 의원이 발의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전국 도매시장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최근 <KBS> 등 유력 언론들에 의해 간신히 농산물 도매시장의 고질적 적폐 양태가 공론화됐는데, 법안이 이를 다시 덮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농안법 개정안은 상장예외제도의 보수적 운영을 골자로 한다. 도매시장 농산물 거래는 상장경매를 원칙으로 하되 경매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품목에 상장예외(중도매인 직접거래)를 허용하는데, 이 상장예외제가 과도하게 확대 운영되고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이에 개정안은 현재 개설자가 허가하게 돼 있는 상장예외품목을 농식품부가 한번 더 승인하도록 ‘방어벽’을 침과 동시에 지정기간 종료 후 평가를 통한 상장 복구를 의무화했다. 또한 농식품부 내에 ‘도매시장제도개선심의회’를 설치, 각 도매시장 거래제도에 대한 농식품부의 간섭권을 크게 강화했다.

농식품부는 도매법인(경매회사) 등 기득권과 함께 도매시장 개혁에 반대하고 있는 유일한 주체다. 갖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경매제의 ‘안정성’을 지상가치로 세우며 상장예외·시장도매인제 등 경쟁요인을 배척하는 기조를 고수해왔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농식품부는 전국 중앙도매시장의 상장예외품목을 매우 제한적으로 관리할 것이 자명하다.
 

지난 15일 새벽 부산 엄궁동 부산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상장예외거래동에서 배추가 거래되고 있다. 엄궁시장은 과거 경매를 통한 무·배추류 거래가 원활치 않아 상장예외를 허용한 시장으로, 현재 무·배추류의 거의 전량이 상장예외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 15일 새벽 부산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상장예외거래동에서 배추가 거래되고 있다. 엄궁시장은 과거 경매를 통한 무·배추류 거래가 원활치 않아 상장예외를 허용한 시장으로, 현재 무·배추류의 거의 전량이 상장예외로 거래되고 있다.

지방분권의 가치에 역행한다는 점도 논란거리지만, 실제 유통현장에 미칠 영향은 더 심각하다. 현재 개설자의 재량으로 상장예외를 허용한 대표적 품목이 대구·부산의 무·배추·양배추다. 무·배추류는 농산물 가운데 독보적이라 할 만큼 부피가 크고 감모가 심한 품목이다. 전문적으로 대량 취급할 수 있는 중도매인과 충분한 거래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경매가격이 극도로 불안하고 타 품목과의 공생조차 쉽지않다. 도매법인 입장에서도 물량유치 의욕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의무상장 체제에서 무·배추를 비롯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던 사건이 지난 1994년 ‘농안법 파동’이며 이후 가락시장은 무·배추 전문 도매법인인 대아청과 설립으로, 대구·부산은 상장예외 허용으로 간신히 무·배추류 유통의 활로를 뚫어 놓은 상태다.

정석명 한국농업유통법인대구경북연합회(출하자단체) 고문은 “무·배추는 도매법인들의 물량유치 노력이 소홀할 뿐더러 설령 경매에 낸다 해도 물량이 조금만 몰리면 가격이 형편없이 무너진다. 상장예외는 그나마 최대한 가격을 맞춰 출하하는 물량을 다 팔아주는 능력이 있다. 만약 (대구에서) 무·배추가 상장품목으로 묶여버린다면 출하자에게나 소비자에게나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극심한 혼란이 뻔히 예견되는 만큼 농식품부로서도 이들 무·배추를 의무상장으로 환원시키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대구·부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락시장과 대구·부산처럼 나름의 해법을 찾지 못한 여타 지역의 도매시장들은 △전송거래(가락시장 등 타 도매시장에서 이미 낙찰된 상품을 다시 가져와 입찰)에 의존하거나 △아직도 기록상장(중도매인이 불법 수집한 물량을 도매법인 수집물량으로 기록해 상장거래)을 자행하거나 또는 △반입물량을 소량으로 관리하며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전송과 기록상장은 최근 주요 언론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도매시장의 적폐며 반입물량 관리 또한 도매시장 설립의 본 취지를 담보하지 못하는 행위다. 상장예외제를 확대해 이같은 폐단을 양성화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축소를 꾀하다가는 폐단을 그대로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2017년 광주도매시장 쪽파 불법거래 파동이 상장예외 지정 실패로 그냥 묻혀버린 사례를 좋은 표본으로 들 수 있다.
 

광주 도매시장 문제는 지난 2017년 쪽파 불법거래 건으로 한 차례 그 단면이 드러난 바 있다. 2017년 1월 4일 전남지역 농민들이 광주광역시청 앞 대규모 집회로 유통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17년 1월 4일 광주광역시청 앞 쪽파농민 집회 모습. 당시 중도매인들이 스스로의 불법 행태를 고발하며 쪽파 거래 문제를 공론화했고 농민들이 분개해 집회를 벌였지만 끝내 상장예외품목 지정에 실패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사태가 봉합돼버렸다.

더 큰 문제는 이 개정안이 한창 불붙은 ‘도매시장 개혁’ 그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설자(서울시)가 개혁에 가장 적극성을 띠는 가락시장에 집중되는 문제로, 김 의원 역시 개정안 취지에서 서울시의 ‘재량권 남용’을 직접 지적했다.

서울시는 경매 독과점의 폐해로 가락시장이 정상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상장예외를 폭넓게 운영하고 있다. 올해 기준 가락시장 상장예외품목은 145개(물량기준 전체의 8%)며 이 중 명확한 법정 기준에 따라 지정된 것이 122개, 개설자의 ‘판단’으로 지정된 것이 23개다.

비록 물량은 매우 미미하지만 서울시의 이같은 상장예외제도 운영은 가락시장에 최소한의 경쟁을 유발시키고 있다. 경매와 상장예외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고구마·양상추·알타리 등의 품목이 그 예다. 상장예외가 경매와 경합하며 출하자들의 출하선택권을 보장하고, 그간 경쟁자가 없었던 도매법인으로 하여금 서비스 개선도 이끌어내고 있다. 개혁의 가장 효율적 수단인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농식품부에 가로막힌 상황에서 그나마 의미 있는 성과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개혁에 앞장서온 서울시와 개혁에 저항해온 농식품부의 대립에서 농식품부의 손을 들어준 법안이다. 서울시의 상장예외제 운영이 과연 재량권 남용이냐 아니냐를 떠나, 적어도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도매법인 과다수익과 투기화, 도매시장 경쟁력 약화라는 명백한 폐단에 대해 대안조차 없는 채로 상황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 농안법은 도매시장 개혁 취지(시장도매인제 도입)의 윤재갑 의원 개정안과 김 의원 개정안이 동시에 발의돼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두 가지 상반된 법안을 명쾌히 정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미 한 차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던 도매시장 개혁이 이번엔 여당 내 ‘자중지란’으로 무산되는 건 아닌지 도매시장 관계자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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