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니겠지

  • 입력 2021.02.2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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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의견수렴 활동이 결국 요식행위에 그쳤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정책 입안자가 진정 열린 자세로 의견을 새겨듣지 않는 이상, 아무리 절절한 의견들이 나온들 이미 정해놓은 답에 견강부회로 짜맞춰져 그저 명분으로 활용되기 십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대국민 의견수렴과 거래실태 일제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열린 자세로 의견을 듣고 실태를 보고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 17일 도매시장 공익성 강화 심포지엄에서 개혁에 대한 농식품부의 소극적 태도가 다시 한 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날 다각적으로 제안된 도매법인 과다수익 환원안에 대한 농식품부의 의견은 ‘자발적 환원’이었다. 이미 FTA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실패가 입증됐음에도, 여당에서조차 논란거리인 정부 정책기조(코로나 이익공유제)를 거론하며 자발적 환원을 주장하는 것은 도매법인 과다수익을 보호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설사 강제 환원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기자는 회의적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수익을 강제로 환원시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법인당 수억원씩을 환원시키는 데 성공한다 한들 주주기업들이 가져가는 수십 수백억원의 돈이나 도매시장 거래행태엔 하등의 변화가 있을 리 없다. 이 작은 환원조차도 허용하기 싫을 만큼 농식품부의 기조가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건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이다. 도매법인 과다수익과 도매시장 정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도매법인(경매제) 독과점 구조며 독과점을 깰 유효한 경쟁수단이 바로 시장도매인제다. 경쟁을 통해 건강한 시장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구태여 공 들이지 않아도 수익은 매우 효율적으로 환원된다. 시장도매인제의 결점 보완 내지는 그에 준하는 대안 마련이 지금 시점에서 마땅히 최우선으로 논의돼야 할 바다.

이날 심포지엄은 의도적으로 시장도매인제를 주제의 중심에서 비껴 놓은 흔적이 역력했으며, 그럼에도 불거진 언쟁에 대해 농식품부는 “한 시장에 두 거래제도는 어렵다”고 답했다. 대대적인 의견수렴을 한다면서 중요한 개혁안들엔 벌써부터 ‘불가’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수익 환원을 위한 소규모 기금 조성과 겉으로 보이는 단편적 거래실태 정비, 지방도매시장 어딘가에의 선심성 시장도매인제 도입, 그리고 온라인경매를 중심으로 한 청사진 제시. 2월 18일 현재 기자의 눈 앞에 떠오르는 농식품부의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방안이다. 앞으로 의견수렴 및 조사 과정이 한참 남아있는 만큼, 오는 6월 농식품부가 발표할 실제 개선방안이 적어도 기자의 예상만은 훨씬 뛰어넘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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