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 중심 친환경인증제에 민간인증기관도 못 버틴다

  • 입력 2021.02.07 18:00
  • 수정 2021.02.08 13:4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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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문재인정부의 친환경농업, 제대로 가고 있는가' 정책 토론회에서 (사)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관계자들이 '과도한 행정처분 철회'를 촉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017년 12월 1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문재인정부의 친환경농업, 제대로 가고 있는가' 정책 토론회에서 (사)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관계자들이 '과도한 행정처분 철회'를 촉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이주명, 농관원)의 ‘잔류농약 검출농가 적발’ 중심 친환경인증제에 농민은 물론이고 민간인증기관들의 지속가능성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민간인증기관들은 엄연히 현재 국내 친환경농업을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인 만큼, 민간인증기관의 지속가능성 악화는 친환경농가에도, 친환경농업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현재 민간인증기관의 수입은 사실상 친환경농가로부터 받는 인증수수료가 전부다. 반면 들어가는 비용은 다양한 데다 점차 액수도 늘어나고 있다.

2014년 10월 농관원은 기존엔 ‘최소 2명 이상’이던 민간인증기관 최소 상근인원 기준을 ‘최소 5명 이상’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민간인증기관들은 예전보다 ‘규모화’하지 않으면 안 됐다. 특히 2013년 이래 농관원의 ‘인증기관 지정 운영 요령’ 고시가 점차 강화됨에 따라, 각 민간인증기관의 인증심사원 1인당 관리 농가 수 기준도 강화됐다. 2013년 1인당 500명을 맡도록 돼 있던 관리 농가 수 기준은 2015년 400명, 2019년 300명으로 고시 개정 때마다 줄었다.

물론 1인당 관리 농가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관리가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기에 관리 농가 수를 줄이는 것 자체는 필요하나, 이 과정에서 민간인증기관들로선 추가적인 심사원 채용을 해야 했다.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현재 친환경인증제와 관련해 농관원의 주요 기조는 ‘사후관리 강화’다. 여기서 사후관리란 △매년 인증 건 별 1회 이상의 정기조사 △수시조사 △불시조사(행정처분 농가 6개월 이내 추가조사) △불고지 조사(인증 건의 5%) △최근 3년간 행정처분 이력자 매년 2회 조사 △생산물 잔류농약 검출 이력자 매년 2회 조사 등이다. 쉽게 말해 ‘인증 관련해 문제를 일으킨 농가’에 대해 수시로 감시·확인하라는 게 사후관리 강화조치의 핵심기조다.

농관원은 이 같은 사후관리 강화 기조를 수시로 강조해 왔다. 2010년 이래 농관원은 ‘친환경 인증농가 사후관리 의무화’를 표방하며 ‘소비자 신뢰도 제고’를 그 이유로 들었다. 현재 친환경인증 업무를 직접적으로 진행하는 민간인증기관들로선 농관원의 이 기조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사후관리를 강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농가를 자주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사했던 농가도 또 가야 했고, 불시조사 또는 불고지 조사 명목의 방문도 사실상 강요됐다. 그 과정에서 출장비는 늘어났다.

민간인증기관이 농관원의 이러한 기조를 따르지 않을 시 행정처분을 비롯한 각종 규제조치가 잇따랐다. 아니, 엄밀히는 기조를 잘 따라도 마찬가지였다. 농관원은 수시로 ‘민간인증기관 때려잡기’를 시행했다. 2014년 농관원은 ‘민간인증기관 행정처분 강화’를 표방하며 ‘고의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인증을 승인할 시 단 1회의 위반으로도 인증기관 지정취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소위 ‘살충제 계란파동’ 직후였던 2017년 11월에도, 농관원은 57곳의 민간인증기관 중 49곳을 관련 규정 위반 명목으로 적발했고, 그 중 5개소에 기관 지정 취소 처분, 30개소에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한 민간인증기관 대표자는 “농관원의 ‘결과 중심’, 아니 정확히는 ‘적발·색출 중심’ 인증제 하에서, 민간인증기관이 비의도적 농약 혼입으로 억울한 상황에 처한 농가의 상황을 봐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만약 이러한 상황을 참작해 인증 취소처분을 하지 않을 시 민간인증기관이 징계를 받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고 증언했다.

규제만 강화하고 민간인증기관의 권한 및 업무환경은 고민하지 않는 농관원의 ‘적발 중심 친환경인증제’ 하에서, 민간인증기관의 지속가능성은 약해지고 있다.

손상목 단국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친환경 인증심사원 전문성 강화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조기퇴직 인증심사원으로서 근무여건 관련 설문조사에 응한 219명 중 135명(61.6%)이 1년 이내에, 71명(34.7%)이 2년 이내에 퇴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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