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중고’ 속에서 농사짓고자, 팔고자 분투하는 365일

제주 친환경농민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 입력 2021.02.01 00: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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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코로나19, 그에 따른 학교급식 파행, 기후위기, 땅과 지하수의 오염, 농민을 사실상 범죄자 취급하는 친환경인증제 등….

제주도 친환경농민들은 이와 같은 ‘n중고’, 즉 겹겹이 쌓이는 위기 속에서 오늘도 농사짓고자, 그리고 농사지은 먹거리를 팔고자 분투한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오직 팔기 위해’ 왕복 10시간 강행군

 

지난달 27일 경기도 과천시 렛츠런파크 ‘바로마켓’에서 제주 서귀포 농민 윤순자씨가 감귤상자의 감귤들을 골라내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과천시 렛츠런파크 ‘바로마켓’에서 제주 서귀포 농민 윤순자씨가 감귤상자의 감귤들을 골라내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친환경농민 윤순자씨. 그는 지난달 26, 27일에도 어김없이 경기도 과천시 렛츠런파크 과천(경마공원)의 직거래 장터인 ‘바로마켓’ 내 천막에서 친환경 감귤과 한라봉 등을 팔고 있었다.

윤씨는 매주 화, 수요일이면 서귀포에서 과천까지 ‘출퇴근’한다. 새벽 4시 30분 서귀포에서 출발, 6시경 제주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장장 4시간 반 내지 5시간의 강행군을 거쳐 9시경 과천 렛츠런파크에 도착한다. 윤씨는 바로마켓 참가 농민들 중 현재로선 유일한 제주도민이다.

윤씨는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엔 1주일에 6~7일, 즉 매일 제주도와 수도권을 왕복했다. 윤씨는 바로마켓과 서울 혜화동 마르쉐@ 장터, 그리고 명동성당 등을 오가며 물품을 팔았다. 수도권의 직거래 장터들을 매일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저녁 늦게 제주도에 가서 농사일을 돌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코로나로 마르쉐@와 명동성당 직거래 장터는 중단됐다. 수도권에 가는 날은 1주일에 이틀로 줄었지만, 그에 비례해 판로도 줄었다.

인터뷰 도중 윤씨에게 전화가 왔다. 윤씨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네, 잘 생각하셨어요. 저도 어떻게든 도와드릴게요.” 무슨 전화냐고 물으니, 서귀포에서 이제 막 친환경농사의 첫발을 뗀 사람이란다. 그 ‘새내기 농민’은 농사를 시작하면서도 도저히 팔 곳을 찾을 수 없어 윤씨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전화한 것이다. 윤씨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친환경농민들의 판로까지 같이 고민한다.

지난해 12월 8일 제주도 친환경농민단체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학교급식 중단에 따른 피해농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8일 제주도 친환경농민단체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학교급식 중단에 따른 피해농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판로 확보의 어려움은 윤씨와 그 새내기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레몬·양배추·감·브로콜리 등을 재배하는 강순희씨는 제주도 친환경농민 공동체인 생드르영농조합법인을 통해 학교급식에 먹거리를 공급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로 학교급식이 파행운영되는 기간이 길어져, 강씨는 지인이나 지역주민과의 직거래를 통해 당근, 레몬 등을 팔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도 강씨는 인터뷰 직후 먹거리를 택배로 부치고자 급히 일어났다.

강씨는 직거래 과정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제주도의 여성 친환경농민들은 대부분 읍·면 지역에 있다. 직거래를 하려면 대부분 시내로 나가야 한다. 이동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린다. 로컬푸드 매장 또는 그 밖의 직거래를 위해 먼 거리를 왕복하는 과정에서 농사에 시간을 쏟기 어렵다. 많은 여성농민들은 다양한 품목을 소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각 품목마다 세세하게 신경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어려움이 많다.”

기후위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지난달 26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다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유기농 비트를 착즙하기 위해 손질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6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다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유기농 비트를 착즙하기 위해 손질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선생님 죄송합니다. 물건 보시고 얼마나 속상하셨겠어요.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언니, 여기 (감귤) 큰 거, 상태 좋은 거 몇 개만 더 얹어 줘. 이 분 일부러 찾아오셨어.”

윤순자씨는 지난달 27일도 내내 바빴다. 윤씨를 비롯한 제주 친환경농민들의 감귤이 진열된 천막 앞을 지나가는 차량에 “제주 친환경 감귤 잡숴보세요”라고 외치느라(바로마켓은 현재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시민들의 ‘클레임(항의)’ 전화에 대응하느라, 직접 클레임 걸러 온 시민에게 사죄하면서 상태 좋은 감귤 더 얹어주느라, 감귤 중 상태가 안 좋은 것 걸러내느라, 그리고 기자와 인터뷰하느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윤씨의 손은 쉴새 없이 감귤을 상자에서 골라내고 있었다.

윤씨는 문자를 보여줬다. 학교급식에서 1kg당 2,000원엔 나가던 감귤이 직거래 과정에서 1kg당 700원에 나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씨는 “네 알겠습니다. 행복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란 문자를 보냈다.

“어떻게든 농산물 팔려고 이곳저곳 다니며 에너지를 쏟다 보니, 부득불 농사에 소홀해지는 상황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최근 기상이변도 심하지 않나? 이 감귤들 좀 봐라(윤씨는 냉해를 입은 감귤들을 보여줬다). 최근 폭설로 감귤에도 냉해가 많이 생겼다. 품위도, 맛도 떨어졌다. 클레임 거는 분들께도 상황 설명을 드리지만, 참 죄송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친환경 무·당근을 재배하는 고광덕씨의 작물들도 냉해를 입었다. 최근 내린 폭설로 재배한 무들에 갈변이 생겼다. 고씨 뿐 아니라 구좌읍, 서귀포시 성산읍 등지의 무밭 중 거의 50%에서 갈변 현상이 나타난 무가 나왔다고 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제주도 농민들, 특히 병해충에 더 민감한 친환경농가들에 난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여름엔 50여일에 걸쳐 초장기 장마가 제주 농민들을 괴롭히더니, 올 겨울엔 제주도에 사상 첫 한파경보가 발령됐다. 강순희씨는 “지난해 폭우로 레몬밭이 침수됐고, 그 영향으로 10월초엔 레몬의 3분의 2가 떨어졌다”며 “기후위기는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바람은 농약을 싣고

여기에 더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마저도 농민들을 더 힘들게 한다. 본지 친환경 면에서 자주 거론했던 ‘잔류농약의 비의도적 혼입’ 문제 때문이다. 강순희씨부터가 ‘비의도적 농약 혼입’의 피해자다.

“2000년에 친환경농사를 시작하며 처음 재배한 작물이 깻잎이었다. 20년간 깻잎농사를 잘 짓던 중인 지난해 초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잔류농약 검사를 다녀갔다. 농약을 뿌린 적이 없는데도 농약이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나마 인증은 취소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밭의 작물에선 농약이 검출됐다. 깻잎농사를 짓던 밭은 임대농지였는데, 원래 일반농사가 이뤄진 밭이었기에 잔류농약이 그때껏 남아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 남편과의 합의하에 깻잎농사를 그만뒀다.”

제주도의 삼다(三多)요소 중 하나인 바람(風)도 농약을 옮긴다. 고광덕씨는 “지난해 구좌읍의 일부 친환경농가가 ‘인증제 위반’으로 인증을 취소당했는데, 사유가 농약 비산이었다”며 “제주도 노지재배 농가들은 필연적으로 옆에 일반농가의 밭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농가들로서도 가림막 설치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것만으로 비산을 막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적발’당해 오명을 쓰거나 의심 받는 농민들이 많으며, 이를 못 견디고 농사를 접는 어르신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제주 농업 앞날 좌우할 지하수 문제

중장기적으론 제주도의 지하수 보전 여부에 따라 제주도 농업의 운명이 좌우될 판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래 상품작물 재배가 늘면서 농약·화학비료 사용량도 필연적으로 늘었는데, 이 농약·화학비료의 적지 않은 양이 제주도의 토양을 뚫고 내려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2018년 한국환경과학회지에 실린 논문 <제주도 토양 중 비이온계 농약의 흡착 및 용탈 특성>(전시범 제주대 환경공학과 교수 등 공저)에 따르면, 제주도엔 분류학적으로 토양층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곳이 많아 표토층이 얕고 물이 매우 잘 빠지는 지질학적 특성을 갖는 곳이 많다. 따라서 제주도의 토양에 살포되는 농약·화학비료는 지하수 오염에 직결될 수 있다는 게 해당 논문의 분석이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제주 서귀포)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약 2만2,000톤이었던 제주도의 연간 화학비료 사용량은 2019년 약 2만7,000톤으로 늘어났다. 화학비료 사용량의 증가로 제주도 일부 지역의 지하수에선 질산성 질소함유량의 비율이 허용한계치 수준에 육박하는 상황인데, 이는 지하수를 식수로 쓰기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제주도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당장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멈추라고 할 순 없다. 결국 제주도, 나아가 범정부 차원에서 친환경농업 유도를 위한 정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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