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농정은 아직도 박근혜 시대

  • 입력 2021.01.2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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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정권은 바뀌었지만 농정은 변하지 않았다. 개혁을 외친 농민들의 목소리는 이 나라의 농정을 움켜쥔 관료들의 벽에 막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닿지 못했다. 여기, 한 늙은 여성농민이 있다. 풀을 매던 중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는 손, 흙먼지로 범벅된 두 손과 켜켜이 잡힌 주름이 유달리 도드라진다. 문재인정부의 농정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은 과연, 이 주름진 손을 제대로 잡아본 적 있는가. 한승호 기자
정권은 바뀌었지만 농정은 변하지 않았다. 개혁을 외친 농민들의 목소리는 이 나라의 농정을 움켜쥔 관료들의 벽에 막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닿지 못했다. 여기, 한 늙은 여성농민이 있다. 풀을 매던 중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는 손, 흙먼지로 범벅된 두 손과 켜켜이 잡힌 주름이 유달리 도드라진다. 문재인정부의 농정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은 과연, 이 주름진 손을 제대로 잡아본 적 있는가. 한승호 기자

지난 20일 청와대가 소폭 개각을 단행했다. 지난해 말 법무부 장관 등 일부 인선을 발표한 데 이어 20일만의 개각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문재인정부에서 정책을 소신 있게 이끌어갈 수 있는 마지막 얼굴들이라 볼 수 있다.

당초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가 유력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등 재임 1년 반이 경과한 장관들의 교체 가능성이 높게 제기됐다. 2019년 8월에 취임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가장 유력한 교체 후보군에 올랐다. 김현권 전 국회의원,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 등 새 장관 하마평까지 구체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발표 결과 중소벤처기업부·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등 3개 부처 장관이 바뀌었을 뿐, 김현수 장관은 자리를 보전했다. 그동안 몇 차례의 교체론에도 잡초처럼 살아남은 김 장관은 이제 문재인정부 18개 부처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참’ 장관이 됐다.

문재인정부의 농식품부 장관 인선은 줄곧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초대 김영록 장관은 지방선거 출마차 취임 8개월 만에 자리를 떠 5개월의 농정공백을 초래했고, 2대 이개호 장관 역시 총선 출마 계획을 밝히며 취임과 동시에 ‘임기 1년’을 스스로 정해버렸다. 자연히 이렇다 할 업적을 낼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장관직은 경력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됐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3대 김현수 장관은 문재인정부의 농정을 오롯이 담당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문재인정부의 농정이 농민들의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묘하게 과거의 정책들을 되풀이하고 있고 벌써 대통령 임기 4년을 지남에도 농촌에선 하등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 ‘박근혜 퇴진’의 선봉에 섰던 농민들이지만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선 가장 소외돼 있다.

김현수 장관은 30여년을 농식품부에서 근무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관료 출신 장관은 대개 안정성이라는 장점을 갖는 반면 반(反)개혁성이라는 중대한 단점을 갖는다. 개혁은 정책 기조의 수정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그간의 정책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기존에 정책을 주도하고 공력을 쏟아부어온 관료들이 개혁에 가장 저항적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개인의 판단 이전에 조직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관료집단이 스스로 그 흐름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개혁 의지가 확실한 장관이 필사적으로 관료들과 줄다리기를 해도 수월찮을진대, 도리어 관료들의 대표를 장관에 앉혀 놓았으니 대통령이 아무리 농정개혁을 외쳐도 이행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의 곁에서 농정을 챙기고 보고해야 할 제1·2대 농해수비서관 역시 선거 출마를 위해 자리를 내던졌고 제3대 농해수비서관은 어처구니 없게도 농식품부 차관으로 들어가 관료 출신 장관을 보좌하기 시작했다. 농식품부의 관료주의는 견제할 수단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앞으로도 최소 1년 반 이상 같은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 퇴임 8년, 박근혜 대통령 실권 4년. 두 전직 대통령의 실정이 확인되고 징역형마저 확정될 만큼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농정은 아직도 관료들의 손아귀 안에서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버젓이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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