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신년사, 유감이다

  • 입력 2021.01.17 23:3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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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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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감자를 키워 내는 시설하우스도 영하 20도 안팎의 한파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온풍기도, 고체연료통도 전혀 소용없었다. 지난 6일부터 전국에 휘몰아친 ‘북극한파’에 감자 잎은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제주의 무와 감귤, 브로콜리 등 월동작물은 눈 속에 파묻혀 아예 얼어버렸다. 전북 김제에서만 감자를 심은 시설하우스 96ha에서 냉해가 발생했다.

농민들은 새해 정초부터 시작된 자연재해에 망연자실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 11일 김제시 광활면에서 만난 한 농민은 11월 중순경에 심은 감자의 8할이 한파에 얼면서 제초제를 뿌린 듯 시커멓게 타버렸다고 말했다. 하우스 내부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온갖 고육지책을 동원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행여 살린다 해도 수확량은 애초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도 했다. 피해조사가 된들 보상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송출됐다. 기자도 김제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신년사를 경청했다. 요지는 회복·도약·포용이었다. 코로나19에 빼앗긴 일상을 되찾고 경제를 회복하며 격차를 줄이는데 힘을 쏟겠다고 발표했다. 주거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송구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혹여 농업, 농촌, 농민에 관한 언급도 있을지 귀를 기울였건만 거기까지였다. 가축전염병, 자연재해가 거론됐지만 농업과의 연결고리는 없었다.

되레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해 농업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CPTPP가 농산물을 포함한 각종 제품의 역내 관세 철폐를 원칙으로 하기에 기존의 FTA 사례처럼 농업계의 희생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농민은 식량안보를 지키는 공직자’라고까지 추켜세웠던 문 대통령의 다짐과 언약은 사실상 국정운영의 마지막 해라고 할 수 있는 올해에도 정책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파에 시커멓게 시들어버린 감자 잎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애쓰는 농민들의 노고가 더욱 안쓰럽게 다가왔던, 문재인 대통령 집권 5년차 1월 11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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