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위기 대응과 농민을 우선으로 하는 공익형 시장도매인제

  • 입력 2021.01.10 18:00
  • 기자명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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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2020년이 저물었다. 고통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세계 현대사에서 전쟁 말고 이토록 처참한 해가 있었을까?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는 동안, 한편에는 최악의 기상이변까지 닥쳐 몸서리를 쳐야 했다. 국제시민단체 크리스천 에이드는 2020년 가장 충격적인 자연재해 15건을 소개했다. 그중 6건이 아시아지역의 홍수였다. 그리고 미국과 중남미 곳곳을 할퀴고 간 허리케인, 아프리카 동부의 메뚜기떼, 180만ha의 숲이 불에 탄 호주 산불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기후변화로 인한 병충해와 자연재해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그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만큼 농업재해보험 정책의 당위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자연재해 못지않은 것이 농산물 가격하락으로 인한 피해다.

농업소득은 1994년 1,000만원 대에 진입한 이후, 장기간 정체돼 있다. 농업소득의존도(농업소득/농가소득×100)는 2005년 38.7%에서 2019년 24.9%로 감소했으며, 도농 간 소득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농산물 가격 변화와 일정 부분 연관성이 있다. 특히, 전년 대비 채소류 가격이 하락한 2011년, 2014년, 2019년에 두드러졌다.

위기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보험이 농업재해보험, 농업수입보장보험인데,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 가락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가락동 시장의 대표 가격이라는 것은 농작물재해보험 보상가격의 기준이 됩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관련을 맺고 있다. 가락시장 대표 가격이라는 것은 가락시장 거래의 약 91%를 차지하는 ‘상장(경매)’에 의한 가격을 말한다. 출하 물량이 많을 때는 생산비 이하로 경매가가 형성되기도 한다. 가격변동 폭도 상당이 크다. 그런데 왜 정책보험이나 농업정책 수립 시 가락시장 경락가를 기준가격으로 삼는지 의아하다.

농업수입보장보험 기준가격은 가입 직전 5년의 가락도매시장 중·상품 올림픽 평균값(최대·최소를 제외한 수치)에 농가수취비율을 곱해 산출한다. 양파와 마늘의 경우 기준가격보다 수확기 가격이 낮을 가능성이 커 ‘역선택(농가에서 보험금 지급을 미리 예측·가입)’ 문제의 소지도 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야 할 농민을 생각한다면, 소득기반 전 국민고용보험 도입과 근로장려세제(EITC)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최저가격보장제’처럼 정책보험의 기준가격을 생산비가 반영된 가격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약 40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속속 최저가격보장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전남 장흥, 무안, 진도와 충남 당진, 서산, 홍성 그리고 경남 창녕, 함안 등 9개 지자체는 산지폐기 시 최저가격 지급 보장을 조례에 명시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채소류 수급안정 관련 지방자치단체 협력 방안> 연구에 따르면, 최저가격보장제도는 수급조절 정책과 연계·실시해야 하고, 채소류 수급안정은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에 의해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한다.

최저가격보장, 수급조절,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모델이 있다. 가락시장에 도입하려는 ‘전남형 공익 시장도매인’ 제도다. 이를 통해 품위별 기준가격(통계청이 매년 공표하는 농산물 소득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산출하며, 농산물별 경영비에 자가노동비를 합한 금액)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곧 농가 피해를 방지하고, 품질별로 투명하게 가격을 공개함으로써 소비자(구매자) 신뢰도 얻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생산자-소비자 중심 유통정책을 소비지에서 실현할 예정이다.

전라남도는 주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연간 약 300억원(2019년 기준)의 예산을 투여해 공급과잉 농산물의 산지폐기를 유도해 왔다. 가격폭락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산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소비지 가격안정 정책과 병행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생산자 의사가 반영된 소비지 가격 형성, 생산자와 구매자 간 수의거래(협상) 및 계약재배를 통한 농산물 가격 변동성 완화, 도매시장법인(경매회사)이 취하는 막대한 이익에 대한 농가 환원 등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이것은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안고 있는 난제일 것이다.

지난 2019년 9월, 농산물 전문 공공출자법인 설립 필요성을 놓고 토론회를 개최했던 제주 농민들은 제주형 시장도매인 설립 방안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전라남도를 시작으로 제주도,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9개 자치단체에 모두 공익 시장도매인법인이 설립되길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공익적이며 공정한 경쟁체제를 갖춘 안심·고품질 농산물 유통의 메카로 거듭나길 빌어본다. 새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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