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 된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과도한 물량 계획
사업구조 개편 이행 부진
경제사업 실적 저조
농민 만족도 하락

  • 입력 2021.01.10 18:00
  • 수정 2021.01.10 19:07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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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추진한 사업구조 개편이 완료됐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지 오래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10월 발간한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평가’를 통해 근본적 원인을 확인했다.

2019년 경제사업 달성률 62.2%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의하면 농협은 애초에 과도한 경제사업 물량 계획을 수립했다. 경제사업 물량은 농협중앙회와 농협 경제지주 등이 수행하고 있는 농·축산물 구매·판매·제조·가공 등의 물량 합계를 뜻한다.

농협은 경제사업 물량을 2011년 22조5,000억원에서 사업구조 개편 이후 2020년 46조8,000억원으로 24조3,000억원(108%)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2012년 실적은 목표 25조4,000억원 대비 24조3,000억원으로 95.6%의 달성율을 보였다. 하지만 매해 달성율이 하락해 2019년엔 44조5,000억원이라는 목표 대비 실적이 27조7,000억원으로 달성률이 62.2%에 불과했다.

농협의 2012~2020년 경제사업 물량 계획의 연평균 증가율은 11.8%다. 이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농협의 계획은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을 초과하는 수치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농협의 계획이 2001~2009년 연평균 증가율인 5.4%를 초과하고 있어 과다 산정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지적에도 농협에선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2012년 사업구조 개편 이후 8년간 경제사업 물량 증가율은 1.9%로서 개편 이전 8.5%에 비해 현저히 낮다.

게다가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투자 계획은 7회에 걸쳐 변경됐다. 연례적 변경은 결국 계획 자체가 부실했다는 걸 반증한다. 이로 인해 2012~2019년 계획 대비 평균 집행률이 67.2%에 불과하다.

자료=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국회 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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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지원 무이자자금 큰 폭 증가

농협은 농림축산식품부와 사업구조 개편 이행약정을 체결했지만 2020년까지도 이행부진 과제들이 계속 발생했다.

경제사업 자금 지원의 경우 조합상호지원자금의 경제사업 지원 비중이 늘어나야 했지만 계속 감소했다. 조합상호지원자금은 지역농협의 균형 발전과 사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이 공동으로 조성하고 무이자로 운용하는 자금이다.

조합상호지원자금의 경제사업 부문(유통지원자금·농기계은행·양곡사업 등) 지원액은 2013년 6조1,443억원에서 2019년 7조4,900억원으로 1조3,457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합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77.0%에서 62.4%로 14.6%p 감소했다. 이에 비해 교육지원 부문(지역농협 합병·재해·복지 지원 등) 지원은 같은 기간 1조8,332억원(23.0%)에서 4조5,100억원(37.6%)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물론 교육지원 부문 지원도 궁극적으로 경제사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성격이라는 게 농협중앙회의 해명이지만 이행과제의 목적은 경제사업 활성화고, 이는 농협중앙회 단독 추진이 아니라 지역농협과의 긴밀한 참여와 연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농협중앙회 재무안정성 확보를 위한 자체 자본 확충 계획도 실적이 저조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 당기순이익은 사업구조 개편 직후인 2012년엔 목표 1조382억원 대비 실적은 2,568억원에 불과했고, 2019년엔 목표 2조7,817억원 대비 실적은 8,878억원이다. 같은 기간 목표 대비 실적 차액이 7,814억원에서 1조8,939억원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사업실적 저조 및 당기순이익 감소로 인한 현금수입 정체와 지역농협 배당, 이자비용 등 현금지출 증가는 농협중앙회의 현금수지 악화와 차입금 증가로 이어졌다. 게다가 정부의 현물출자 지연·변경도 문제가 됐다.

산지유통 점유비·판매 실적도 저조

농식품부의 농협 사업구조 개편 이후 경제사업 평가 결과는 2018년 기준 농업경제 73점, 축산경제 66점으로 낮은 수준이고, 매년 하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핵심 지표인 산지유통 점유비(산지유통액 대비 농협 출하액 비중) 확대와 농협중앙회 판매 비중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산지유통 점유비는 2011년 45%에서 2020년 62% 달성이 목표였지만, 매년 실적이 감소하고 목표 대비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농협중앙회 판매 비중 확대(농가의 지역농협 출하액 대비 경제지주의 책임판매액)도 2011년 10%에서 2020년 51% 달성이 목표였는데 저조한 상황이다. 2019년 목표는 43.4%였으나 실적은 30.5%로 목표 대비 달성률은 70.3%에 불과하다. 목표 대비 격차는 2014년 1.5%p에서 2019년 12.9%p로 큰 폭으로 벌어졌다.

산지유통 점유비의 경우 산지유통 기반 강화가 필수인데 이 또한 저조했다. 농협은 농민조합원->공선출하회->지역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에 이르는 산지유통의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거래교섭력 증대 등을 개선하고자 했다. 공동생산조직인 공선출하회의 경우 2020년 2,500개소 육성과 공동계산액 5조원 달성이 목표였다. 조직 수는 2019년 2,919개소로 초과했으나, 공동계산액의 경우 2019년 실적이 2조1,533억원에 불과, 목표인 5조원 대비 43.1% 달성에 머물렀다. 조합공동사업법인도 2020년 66개소와 사업량 5조원 달성이 목표였지만, 2019년 42개소 조직에 머물렀고, 2019년 사업량도 3조119억원으로 목표 대비 60.2%만을 달성했다. 또한 조공법인의 경우 42개소 중 21.4%인 9개소가 적자 운영 중이다.

농협중앙회는 판매 비중을 높이기 위해 도매중심 유통계열화를 핵심사업으로 설정하고 농협 경제지주 공판장 효율화,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계통공급 및 외부거래처 판매 확대 등의 직접도매사업 강화를 추진했으나 계획 대비 성과가 부진했다.

또한 농협 경제지주 유통 부문 자회사의 매출 부진과 통합 지연도 여전하다.

핵심 성과들이 저조한 이유는 부실 계획과 잦은 변경, 집행 부진이 원인이지만 농민조합원의 농협 경제사업 미참여도 작용했다. 2019년 기준 192만명의 조합원 중 판매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은 70.8%인 136만명에 이르고, 가공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은 91%인 175만명에 달한다.

지난 2018년 4월 국회에서 열린 ‘농협 사업구조 개편 6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선 농협이 사업구조 개편으로 6년 만에 약 21조원에 달하는 빚더미를 떠안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18년 4월 국회에서 열린 ‘농협 사업구조 개편 6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선 농협이 사업구조 개편으로 6년 만에 약 21조원에 달하는 빚더미를 떠안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농협 경제사업, 농민 체감 미흡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의 목표는 판매농협 구현, 농축산물 가격안정 등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에 있다. 농가소득은 2019년 4,118만원까지 증가했으나 핵심인 농업소득은 같은 해 1,026만원으로 여전히 1,000만원 선을 못 넘어서고 있다. 농가수취가격의 척도인 농가판매가격지수도 농협 사업구조 개편 전후가 유사한 수준이다. 이는 결국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효과가 미흡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국회 예산정책처의 설명이다.

실제로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만족도 조사에선 2018년 기준 농민조합원의 평균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6.7점으로 낮고, 지역농협의 만족도는 51.8점으로 농민조합원 만족도보다 더 낮다. 같은 기간 소비자 만족도도 60.3점으로 저조한 편이다.

무엇보다 산지·도매·소비지 단계별 농축산물 유통비용 절감을 핵심과제로 설정했지만 농협 사업구조 개편 이후에도 유통비용률(소비자가격에서 차지하는 유통비용의 비중)은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한편, 농협 사업구조 개편에 따른 금융사업의 목적은 협동조합 수익센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전문성·경쟁력 강화였지만 농협은행을 비롯한 농협 금융지주의 사업 성과도 저조했다.

농협 경제·금융부문, 계열사 등의 수익 저하는 농협중앙회 배당수입 감소로 이어졌고, 이는 차입금(금융부채) 증가와 농협중앙회 재무구조 악화를 유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농협에 대한 배당 여력도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면밀한 계획 세워 후속 사업 이어가야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실효성 부족에 따른 대안도 제시했다.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평가 보고서를 통해서다.

과다·부실한 경제사업 계획이 전반적 집행 및 성과 부진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실행 가능성과 농업구조·유통구조 변화 등 환경요인을 반영한 면밀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고, 사업구조 개편 미이행 과제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게 국회 예산정책처의 설명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재원 지원 약속 이행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산지유통 점유비, 농·축산물 판매 비중 등에 대한 농협의 목표 달성 노력과 함께, △농가수취가격 향상을 통한 농업소득 증대 △농민조합원의 경제사업 이용 확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사업 시행 △산지 계통출하, 계통 도·소매 확대를 통한 농·축산물 적가 공급 △경제사업 활성화·금융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도 과제로 꼽았다.

더불어 향후 정부의 농협 경제사업 평가가 성과 향상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환류장치 보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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