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가락시장 대개혁이 필요하다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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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2년 전, 기고했듯이 가락시장은 나의 청년 시절에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후반 무렵 나는 전남의 상업농 지대, 그곳에서는 ‘개간지’라고 불렀던 농촌에서 잘나가는 청년 일용직이었다. 내가 특별히 일을 잘해서가 아니다. 당시 출렁이던 가락시장 가격을 지켜보고 출하를 할지 말지 고심하던 대농이 마침내 가락시장에 내자고 결정을 하면 신속히 작업할 인부들이 급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산지 현지 마을에 거주했기 때문에 별도의 수송 없이 즉시 현장 투입이 가능했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나를 찾는 집 전화 소리 중 열에 아홉은 가락시장용 작업 호출이었다. 내가 잠을 더 잘 수 있을지 말지 중요한 문제의 배후에는 가락시장이 있었던 셈이다.

숙련 농사꾼이 아님에도 쉬지 않고 호출을 받았던 배경에는 경매 가격의 불안정성에 노심초사하는 농민의 고충이 있었다. 상업농 지역에서 살면서 농사가 도박이 됐다는 말을 피부로 느꼈다. 경매 가격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가격이 좀 좋다고 너도나도 가락시장으로 보내면 경매에 그대로 반영돼 가격은 마구 떨어졌다. 경매는 그 본질상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가격을 알 수가 없다. 경매 방식은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을 더욱 부채질한다.

가락시장은 국내 생산 농산물의 5분의 1을 소화하는 대표적 도매시장이다.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최대의 유통통로다. 가락시장과 같은 소비지 도매시장이 존재함으로써 농민은 직접 소비지에서 수요자를 만날 유통통로를 가질 수 있다.

지금, 가락시장의 대개혁이 필요하다. 핵심은 출하자인 농민의 선택권이다. 가락시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농민에게 경매를 원칙으로 강제하는 점이다. 경매는 공급과 수요에 따른 가격 결정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의 생산비 보장에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공급량이 많다면 생산비를 보장하는 경매 가격을 받을 수 없다. 반대로 수요가 많으면 생산비용을 크게 웃도는 가격도 받는다. 농산물은 필수재이면서도 수요량이 정해져 있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조금만 공급이 늘어도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 반대로 공급이 조금만 줄면 가격은 폭등한다. 이런 농산물의 특성이 작용하는 농산물 경매는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을 부채질한다.

16만평의 공영 가락시장은 왜 존재하는가? 그 목적은 분명하다.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좋은 농산물을 안정된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소비자 또한 변동이 심하지 않고, 농민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안정된 농산물 가격을 원한다.

가락시장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출하자 농민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첫째가는 원칙이다. 농민은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경매장에 낼지 아니면, 가락시장의 ‘중도매인’에게 계약 판매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자를 선택할 때에는 경매를 담당하는 ‘도매시장법인’에 위탁하게 된다. 후자를 선택하면 가격을 정해 중도매인과 직접 계약을 맺는다. 이 두 유통경로가 활발하게 작동할 때 농민은 자신의 농산물 특성을 더 잘 반영해 주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두 경로가 건강하게 조화를 이뤄 발전하게 할 책임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농식품부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라고 하는 ‘계약거래 인증 중도매인제’ 도입을 더 이상 막지 말아야 한다. 이는 농민과 직접 계약거래를 할 만큼 농산물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고, 매매대금을 확실히 지불할 신용이 있는 유통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계약거래라는 또 하나의 유통 공간에 진출할 세력이다.

농식품부는 이들이 가락시장에 출현하지 못하도록 한사코 막고 있다. 대신 경매를 담당하는 회사인 도매시장법인이 계약거래 방식도 독점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의 회사가 왼손으로 경매를 하고, 오른손으로 계약거래를 하는 두 방식을 독점해서 잘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약거래는 인증 중도매인도 직접 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농민의 출하선택권 보장에도 유익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두 유통 경로에서 생산비가 보장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생산비를 보장하는 유통인을 지원할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새해에는 가락시장이 가격보장의 선순환 공간으로 탈바꿈해 농민에게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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