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농산물과 경쟁하는 FTA 시대, 농정 방향은

[토론회] FTA 시대를 사는 농민들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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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21일 세종시 조치원읍 SB플라자 회의실에서 열린 ‘FTA 시대를 사는 농민들’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1일 세종시 조치원읍 SB플라자 회의실에서 열린 ‘FTA 시대를 사는 농민들’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토론 1 / 양정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수입농산물, 국내 농업 교란

양정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양정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WTO가 출범하고 FTA가 추진되면서 우리 농민들의 숱한 저지투쟁이 있었지만, 정부는 FTA 확대 전략으로 직진했다. 농축산물의 관세가 철폐되면서 우리 농업의 구조도 변화됐는데, 2000년 403만1,000명이던 농가인구는 2019년 224만5,000명으로 20년만에 절반가량 줄었다. 또 65세 이상 고령 농민은 2000년 87만6,000명에서 2019년 104만6,000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국민 전체 인구 중 농민인구는 4.3%에 불과하다. 수입농산물이 국내 시장에 밀려들어오면서, 농업소득은 1,000만원대로 매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반면 농업외소득은 2000년 743만2,000원에서 2019년 1,732만7,000원으로 늘었고 농가소득 내 비중도 42%로 커졌다.

국가적으로도 FTA가 발효된 이후 농산물 수입은 증가하고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칠레산 포도, 미국산 오렌지, 미국·EU 등의 수입축산물의 시장점유율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 여파로 국내산 농축산물 가격은 낮아지고 있다. 결국 FTA 모범국으로 20년이 흐르는 동안 농민들의 생활은 더 나빠지고 말았다. 특히 심을 품목이 마땅치 않다보니 재배품목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생산과잉이 반복되는 등 농산물 재배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수입농산물은 처음엔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시장을 넓혔지만, 현재 국내산 농산물의 소비자가격에 근접해 가고 있다. 수입단가가 높아진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유통업자의 유통마진이 증가한 것이 더 큰 원인인데, 농민도 소비자도 모두 손해를 보는 구조다.

토론 2 / 황의창 한국포도회 회장

스스로 FTA 대책 세운 포도농가들

황의창 한국포도회 회장
황의창 한국포도회 회장

한-칠레 FTA의 최대 피해품목은 자타공인 포도다. 당시 정부의 발표는 FTA 체결 이후 10년이 지나도 수입량은 7,000톤 정도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피해가 미미하다고 여기면서 농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국민을 상대로 설명과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수입포도는 시장개방 10년 만에 3만5,000톤으로 500% 증가했고 2019년 말 약 7만톤으로 1,000% 늘었다. 참담한 결과다. 각종 농자재 값은 오르고 포도농가 소득은 줄어들면서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정부는 폐업자금을 지원해 폐원을 유도했는데, FTA 이전 3만4,000ha였던 전국 포도재배 면적은 2017년 기준 1만2,000ha로 급격히 축소되고 말았다.

품목별 대표조직들은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2012년에 한국포도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기존의 포도농업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새 품종, 시설, 농자재, 재배매뉴얼 등을 한국포도회 중심으로 연구하고 교육했다. 2013년에는 수입포도와 전쟁을 선포하면서 국내시장과 수출시장 모두를 주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내시장을 장악한 품종 중엔 샤인머스캣이 있다. 국내 뿐 아니라 중국시장에서도 크게 호평받았고 가격도 중국 백화점에서 700g 한 송이당 12만원에 판매하는 등 수출시장에도 광풍이 불었다. 그러나 수출이 늘어나면서 덤핑 문제로 어려움이 찾아왔다. 정부에 요청해 포도수출회사를 설립했다. 2019년 5월 인가를 받아 지난해 말까지 1,100톤의 포도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올해 2,000톤 수출 계획을 세웠으나 기후조건이 좋지 않아 1,400톤 수출까지 가능할 것 같다. 생산자들의 노력으로 포도농가들이 재기의 발판을 스스로 만들었는데 여전히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노력은 아쉬운 상황이다.

 

토론 3 / 김창남 전농 제주도연맹 정책위원장

FTA 체결로 쑥대밭 된 제주농업

김창남 전농 제주도연맹 정책위원장
김창남 전농 제주도연맹 정책위원장

FTA로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품목이 제주 감귤이다. 2004년 한-칠레 FTA에 이어 2006년 한-미 FTA가 이어지면서 감귤농가들은 자구책으로 폐원을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시설하우스의 만감류 감귤재배로 전환했는데, 그마저도 한-중 FTA가 체결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제주 역시 FTA 체결 이후 농민수가 급감했다. 특히 한-중 FTA 이후 경지면적이 줄었는데 6만2,642ha에서 5만9,338ha로 감소했다. 경지면적 감소는 농민층이 붕괴되면서 그 틈을 투기와 무분별한 개발사업이 차지했다. 아직도 농지감소는 진행형이며, 소멸위기 농촌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수입농산물 증가, 농업소득 감소는 곧 농가부채 확대로 나타났다. 한-중 FTA를 기점으로 제주농산물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농가부채도 6,000만원이 넘었다. 전국 평균 농가부채 2,700만원의 3배가량이나 된다. 수입농산물에 제주 월동채소는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손해를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 경지면적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곧 자본에 지배되는 농업으로 구조가 바뀌는 것이고 중소농의 설자리를 뺏는 결과를 낳는다. 한-중 FTA 당시 김치 관세율은 27%, 신선 통마늘 관세율은 360%였다. 농민단체는 김치 관세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으나 정부에서는 김치 종주국임을 내세워 김치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 김치가 국내 김치시장의 70%를 잠식하는 상황이다. 당근 역시 50%는 수입산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정책담당자들이 식량의 중요성, 다음 세대를 위한 혜안을 가지고 철두철미한 정책설계를 하지 않으면 농업은 더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농지보호특별법을 제정해 농지소유, 임차농 보호 등 식량자원 생산의 기반을 지켜내는데 더 늦기 전에 앞장서야 한다.

토론 4 / 권상준 나주하늘이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배과수원에 ‘신고’ 품종만 심을 게 아니다

권상준 나주하늘이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권상준 나주하늘이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FTA로 농민들 불안심리가 크지만, 변화와 도전을 시도한다면 FTA 파고는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동남아지역에도 우리 배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일하는 동남아출신 농업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국에서 먹던 농산물 찾는 것이 새 수출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인들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찾는 배를 생산하기 위해 기존 외관이 깨끗한 갈색배, ‘신고’만 재배할 것이 아니라 맛과 식감이 뛰어나며 특색이 있는 다양한 국산 품종을 선택하는 것을 권장한다. 배 농가들이 주로 심는 ‘신고’ 대신 국내산 좋은 품종들이 많이 개발돼 있다. 나는 추황배로 소비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국내산 배 품종을 소개해 보면 8월 초부터 9월까지 수확하는 조생종 한아름·원황,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수확하는 중생종 화산·신화·만풍배 그리고 9월 중순 이후 수확하는 추황배·만황 등 시기별로 꾸준히 수확할 수 있도록 종류도 다양하다. 녹색계열 배인 조이스킨, 설원, 슈퍼골드, 그린시스 등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출 수 있는 품종들이다. 무엇보다 배 재배의 최고기술은 ‘유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먹고 싶은 배를 생산한다는 마음으로 교육도 적극 참여하고, 소가족들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포장 유통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우리나라 배 산업 발전을 위해 농가, 학계, 정부 혼연일체 된다면, FTA도 극복할 수 있다.

 

토론 5 / 정아름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과장

농산물 개방은 상수, 기후변화도 전략 세워야

정아름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과장
정아름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과장

농림축산식품부는 다각도의 FTA보완대책을 시행 중이다. 물론 토론회에 참석한 현장 농민분들의 말처럼, 숫자들이 현장에선 공허하고 현장상황이 중요하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그동안 정부가 투자한 37조원이 부족한 분야도 있고 나아진 분야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어느 쪽을 강조할 것인가에는 이견이 있지만, 조금 더 긍정적인 데 방점을 두고 말씀드리겠다.

FTA로 농가인구와 농가소득이 감소되는 것이 주로 지적되는 지표들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농림어업 취업자 수가 2017년부터 증가하고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코로나 상황 속에 전 분야의 고용여건이 어려워지지만 농림어업 취업자 수 증가세는 유지되는 상황이다.

실제 과거에는 찾기 어려웠던 농업에 도전해서 성공한 청년들 사례도 많다. 농업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정책담당자 입장에서 가슴 아프다. 총 수입에 비해 농자재값 등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농업소득도 정체돼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강조하고 싶은 게 이전소득, 농업외소득 증가 부분이다. 기초연금, 직불금 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인데 정부도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농축산물 수입이 더 늘었으나 수출 증가세도 반가운 변화다. 신남방·신북방 등 새 시장 창출도 일정정도 성과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농가양극화 문제다. 60대 이하 농가는 소득이 늘고 고령농가는 일반적으로 소득이 줄고 있는데 각각의 상황에 맞는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농업정책이 지금까지의 방향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상국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개방문제’는 상수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현장 전략에서도 기본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2030년까지 기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농업도 탄소배출산업이다. 농법을 바꾸고 농어업정책도 탄소감축을 고려해야만 한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전략을 세워 개방화 보다 기후변화를 더 고려해 정책파트에 반영해야 할 때다.

 

좌장 / 심증식 본지 편집국장

농정 패러다임 바꾸는 게 우선

심증식 본지 편집국장(좌장)
심증식 본지 편집국장(좌장)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농산물도 상품으로 교역대상이 됐다. 여러나라들이 다자간 협상에 진전이 없자 양자간 협상으로 전환한 것이 FTA다. 우리나라는 FTA를 많이 체결한 나라 중 대표적인데, 그야말로 농산물 전면 개방시대가 됐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농민들은 나머지 절반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다.

오늘 토론이 농업의 산업적 측면만 강조된 것 같다. 농정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

우리 농민들이 헤쳐나가야 할 어려운 과제가 바로 농산물 개방과 기후변화가 아닌가 싶다. 농민들이 잘못했거나 농민들이 만든 문제도 아닌데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은 난망하다. 전면적 농산물 개방 시대에 맞서는 농민들을 주제로 본지에서 취재도 했는데, 현실은 쉽지 않고 정책은 현장과 거리가 있다. 현장에서 땀 흘리는 농민들의 얘기들이 다음 세대에도 농업을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정책으로 구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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