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장도매인제를 가로막나

  • 입력 2020.12.13 18:00
  • 수정 2020.12.14 08:0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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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8일 밤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한 도매법인 경매장에서 채소 품목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중도매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농산물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일 밤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한 도매법인 경매장에서 채소 품목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중도매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농산물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구태여 법을 개정한 것은 현실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은 지난 2000년 도매시장 단일 거래제도인 경매제를 보완할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허용했다. 하지만 시장도매인제는 2004년 강서시장에 일부 도입한 것을 끝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강서시장의 시장도매인이 의미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전국적 영향력이 없는 시장인 만큼 이것이 정상적인 유통개혁으로는 이어질 수 없었다.

당연히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됐다. 법 개정 후 10년 20년이 흐르는 동안 경매제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구조는 콘크리트처럼 공고해졌고 필요 이상, 노력 이상의 수익이 도매법인의 곳간에 꾸역꾸역 들어찼다.

도매법인들은 개혁이라는 화살에 맞서 자본이라는 철갑을 둘렀다. 학계에선 이미 오래 전에 ‘바나나 장학생’으로 표현되는 학자들의 부정유착이 폭로된 바 있고 도매시장 개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도매법인의 후원을 받는 단체들이 앞다퉈 개혁을 반대하고 있다. 복수 도매법인들이 얽힌 법정 소송엔 이름만 들어도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 국내 최고의 로펌들이 총출동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도매법인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쓰는 신문엔 광고가 끊기고 각종 정보제공이 차단되며 경매장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심한 경우엔 고정 출입기자임에도 방문 거부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변함없는 경매제 사랑을 과시하고 있다. 그동안 ‘유통주체 간 합의가 우선’이라며 에둘러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반대했던 농식품부는 김현수 장관 취임 이후 ‘절대 반대’를 노골적으로 피력하는 중이다. 도매법인협회에 농식품부 퇴직 공무원의 ‘고정석’이 마련돼 있다는 사실은 이와 겹쳐 바라보기에 매우 불편한 그림이다.

개혁은 기득권을 해체하는 일이다. 기득권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이들의 의견은 뒤로 미루고, 수혜를 받지 않는 이들 중에서 먼저 찬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이치에 맞다.

대세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이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의지를 보이고 있고 국무총리 산하 공정위가 철퇴를 준비하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개혁 의지는 이미 농해수위 단위를 뛰어넘었으며 농업은 물론 비농업분야 학자들까지 혀를 차고 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사실상 농식품부에 반기를 들었고, 도매법인으로부터 한 푼 지원도 받지 않는 농민·소비자·유통인단체들의 개혁 요구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난무하는 찬반 양론 중에서 빼야 할 것들을 빼고 보면 남은 것은 명료해진다. <한국농정> 927호 커버스토리는 그 ‘빼고 남은 것’을 정리한 기획이다.

농식품부의 시장도매인제 도입 결정권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농안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20대 국회 때처럼 치열한 토론을 벌이게 될 의원들이 부디 현명한 자세로 찬반 양론을 판단하길 농민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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