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제는 시기상조? 오히려 늦었다

  • 입력 2020.12.13 18:00
  • 수정 2020.12.13 18:1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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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 도매법인들의 독과점 구조를 허물 도매시장 개혁의 첫 걸음이다. 농안법이 시장도매인제를 허용한 지 20년, 농식품부와 경매 기득권의 반대로 도매시장은 아직 그 첫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도매인제가 불안정하고 위험한 제도라 주장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 실체는 공허하다. 공정경쟁과 자본흐름의 관점에서 오히려 위험한 쪽은 경매제며,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늦어질수록 생산자·소비자의 공익이 크게 훼손되는 구조에 처해 있다.

경매제는 공정하지 않다

경매제는 1980년대 이전의 혼탁한 농산물 유통시장을 정리하고 거래질서를 바로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수의 중도매인이 물건을 놓고 경쟁하는 거래방식과 낙찰되자마자 가격이 공개되는 전자경매 시스템은 겉보기엔 지금도 매우 공정한 제도로 보인다.

하지만 2020년 지금, 경매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농민은 극히 드물다. 산지에선 경매사 등 도매법인 직원에 대한 출하자의 로비활동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으며 실제로 영세출하자나 신규출하자는 경매에서 정상적인 가격을 받기가 쉽지 않다. 즉 출하자와 도매법인의 관계가 경락가격, 최소한 경매 순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혹이다. 지난 10월엔 수입업자가 경매사에게 보낸 물품 청탁 문자메시지를 농민들이 입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하자뿐 아니라 중도매인과 도매법인 간의 관계도 작용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공사)가 집계한 2019년 한 해의 경매기록을 보면 응찰자가 단 1명인 1대1 경매건수가 24만3,378건으로 전체의 3.8%다. 1대1 경매 낙찰자 가운데 60% 이상은 단독입찰 실적 상위 5위 이내의 중도매인들이다.

더 심각한 건 1초 경매다. 경매 개시 1초 만에 낙찰을 결정한 경매가 106만9,051건으로 전체의 17%, 3초 안에 낙찰한 경매는 383만4,641건으로 전체의 60%에 육박한다. 중도매인들이 충분히 입찰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경매사 주관에 따라 빨리 응찰한 중도매인에게 낙찰을 시킨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경매 경락가엔 출하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될 수 없다. 출하자가 올려보낸 농산물의 가격 결정은 오롯이 중도매인과 경매사의 몫으로, 설령 생산비에조차 못 미치는 가격이 매겨지더라도 출하자는 속수무책이다. 농민의 생계를 고려하지 않고 농민 없는 곳에서 유통인들의 마진만을 도모하는 비인간적 가격결정 구조야말로 경매제의 가장 불공정한 단면이다.
 

지난 8일 밤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산물을 싣고 온 차량과 이를 하차하려는 노동자들로 붐비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일 밤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산물을 싣고 온 차량과 이를 하차하려는 노동자들로 붐비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자본의 적폐

의무경매 시행 30년, 반복되는 폭락으로 농민들이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이 경매회사인 도매법인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특히 전국 도매시장 유통물량의 30% 이상이 집중되는 가락시장의 도매법인들은 타 시장보다 낮은 4%의 위탁수수료로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의 당기순이익은 법인별 편차와 연도별 등락이 있지만 통상 연 40억원 수준이다. 특별히 자금이나 노력을 투입한 결과가 아닌, 순전히 저절로 쌓여가는 출하자 위탁수수료다. 자유경제 시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높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는 자본세력의 구미를 당겼고, 현재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은 모두 기업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도매법인 주주기업들은 연간 10억~20억원의 배당을 기본으로 가져간다. 법인을 매매할 시엔 수백억원의 차익을 한 번에 올리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개인이 수십억원의 연봉을 챙길 수 있는 경영구조를 가진 곳도 있다. 본지가 이미 보도한 바 가락시장 5개 청과도매법인들은 최근 5년간 418억원, 20년간 3,000억원을 모기업에 안겨줬다.

공정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기업들은 농민들을 보란 듯이 착취하고 있다. 도매법인은 수익 환원이나 유통개혁에 노력할 이유가 없다. 기업들이 인출해 가고 남은 돈은 자연스레 도매법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 경매제의 가장 큰 폐단은 도매법인의 독과점적 지위와 그로 인한 비정상적 자본구조다.

농식품부는 도매법인 과다수익 문제를 기금조성, 재지정요건 강화를 통한 환원 유도 등 경매제 내에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기대효과는 기껏해야 몇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도매시장 자본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경매제 자체에 경쟁요소를 부여할 근본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다.

경매제·시장도매인제, 안전성 똑같다

시장도매인제는 경매제의 가장 기본적인 경쟁상대지만, 농식품부와 도매법인은 그 안전성을 지적하며 가락시장 도입을 막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경매제 이전의 위탁상 시절과 같은 혼란이 우려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은 도매법인과 마찬가지로 공영도매시장에서 지자체의 관리를 받는 공적 성격의 유통주체다. 도매법인이 경락가를 공개하는 것처럼 시장도매인도 판매가를 철저히 공개해야 하며 재정불안이나 심각한 윤리적 결함 등의 문제가 있다면 도매시장에서 퇴출된다. 출하자들은 시장도매인 개인이 아닌 공영도매시장과 지자체라는 울타리를 믿고 거래할 수 있다.

지난 3월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에서 일어난 출하대금 미지급 사건으로 시장도매인의 안전성이 다시 한 번 공격받았지만, 이 또한 제도의 결함으로 볼 수는 없다. 불법전대를 받은 상인과 출하자가 송품장이나 장부기록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 거래를 하다 정산금액에 이견이 생긴 비정상적인 사례로, 최근 법원에서도 출하자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불법전대는 시장도매인과 경매 중도매인을 막론하고 시장을 병들게 하는 고질적 문제지만, 출하자가 정상적으로 송품장을 작성해 출하하기만 한다면 거래처의 불법전대 여부와 관계없이 출하대금을 100% 보장받을 수 있다.

단지 도매법인에 비해 자금력이 약한 시장도매인이라 경영사정에 따른 대금 미지급 우려가 남는데, 지난 2009년 백과청과 부도 사태 당시 동료 시장도매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미지급금을 전액 변제했고 그 도의적 책임이 지금은 ‘정산조합’이라는 공식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다.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 또한 이같은 정산기구 마련을 필수전제로 하고 있다.

개인 일탈 사고나 미지급 사건은 경매제에서도 적지 않은 빈도로 일어난다. 가락시장에선 지난 2017년 경매사가 운송비 명목으로 출하대금 일부를 횡령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역대 대금미지급 사건도 세 건이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는 그 안전성이 똑같으며 기록상으로는 오히려 시장도매인제가 더 안전한 모습(일탈사고 1건, 미지급 1건)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서울시 강서구 외발산동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한 시장도매인 직원들이 각 마트로 발송될 농산물들을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월 중순 서울시 강서구 외발산동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한 시장도매인 직원들이 각 마트로 발송될 농산물들을 옮기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준가격의 허상

‘기준가격의 붕괴’는 농식품부가 도매시장 개혁을 반대하는 핵심 논리다.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가락시장 경락가 하락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고, 농산물 기준가격인 가락시장 경락가가 하락하면 농민들에게 광범위한 피해가 닥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농산물 기준가격을 꼭 가락시장 경락가로 삼아야만 한다는 건 아무도 강제한 적이 없다. 입찰·전자경매를 통한 가격이 가장 객관적·합리적이라고 그 근거를 들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경매 가격은 전광판에 낙찰가가 그대로 표시된다는 점 하나만 투명할 뿐, 낙찰가가 결정되는 과정은 결코 공정하다 볼 수 없다.

현재 경매제에선 단 하루 사이에 가격이 온냉탕을 오가는 것은 물론, 같은 날 같은 규격으로 출하한 같은 상품임에도 낙찰가가 서로 10배 이상 차이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기준가격으로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더욱이 특·상·중·하 품질구분 중 오직 상품가격을 단일 기준가격으로 삼기 때문에 중하품 가격이 크게 떨어질 땐 실제 유통가격과 농가소득을 왜곡하는 일도 발생한다. 지금의 기준가격 체계 또한 깊이 들여다보면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사실 단일 기준가격에 목을 매야 할 이유도 없다. 일본·프랑스·미국 등 도매시장이 발달한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도매시장을 통한 단일 기준가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도매인제가 발달하면 경매제·시장도매인제 거래가격과 대형유통업체 거래가격 등 정책과 국민들이 참조할 수 있는 기준가격은 다양해질 수 있다.

하락하는 경매가격에 시장도매인 거래가격이 따라가게 되리라는 주장도 기우다. 이미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거래가격이 독자적인 가격형성을 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도출된 바 있으며 국내 최대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가 들어선다면 더 확실한 가격독립성을 기대할 수 있다. 경매가격만이 기준가격이 될 수 있다는 농식품부의 관점은, 변화하는 유통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준가격들을 찾아낼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평가했거나 혹은 행정편의주의적 태도가 기저에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핵심은 경쟁이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으로 가락시장 경매가격이 하락하리라는 명제 자체도 뚜렷한 근거가 없다. 유통단계와 법정수수료 구조상 시장도매인제가 경매제보다 가격경쟁에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고품위 상품이 시장도매인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매제는 이를 타개할 수 있을 만한 커다란 규모와 자금력, 수집·분산 노하우를 갖고 있다.

도매법인들은 지금껏 한 번도 출하자에게 제대로 수익을 환원한 역사가 없다. 연간 수십억원씩을 곳간에 쌓으면서도 가장 원초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위탁수수료 인하나 출하장려금 인상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정가·수의매매 확대나 유통환경 변화에 따른 역할변신 시도 등 유통구조 개선에 있어서도 매우 보수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모기업에 배당하는 수십억원의 돈을 출하자를 위해 사용한다면 농가수취가를 높이고 더 많은 물량을 거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동안 자발적으로는 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경쟁요소가 도입되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기 수익을 줄일 수밖에 없다. 자연히 기업자본은 수익성이 줄어든 도매법인에서 손을 거두고 농산물 유통에 좀 더 뜻이 있는 사업자가 도매법인을 맡는다. 공영도매시장 공공성은 더욱 강화된다.

출하자 입장에선 통장에 들어오는 돈을 비교해 더 좋은 출하처를 선택할 수 있다. 도매법인에서 도매법인으로, 시장도매인에서 시장도매인으로 옮길 수도 있고, 도매법인에서 시장도매인으로, 시장도매인에서 도매법인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도매법인들과 시장도매인들은 출하자의 통장에 더 많은 돈을 넣기 위해 경쟁하고, 중도매인과 시장도매인들은 소비자의 지갑에 더 많은 돈을 남기기 위해 경쟁한다. 국내 독보적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기 때문에 그 경쟁의 파급력은 전국에 미친다.

우리나라 도매시장 문제의 뿌리가 도매법인의 독과점 구조라는 건 명확하다. 독과점 구조란 경쟁체제를 구축하지 않고는 절대 해소할 수 없다. 경쟁체제 구축에 대한 다른 대안도 없이 20년째 막연히 시장도매인제를 가로막고 있는 이상, 농식품부를 ‘기득권 수호에 안달이 난’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 농민들의 시각을 마냥 감정적이고 과격하다 치부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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