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지속가능한 농촌의 필수요건, 성평등교육과 성인지감수성

  • 입력 2020.11.29 18:00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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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얼마 전 농협과 한국단감연합회 행사 사진을 보고, 많은 분들이 경악하면서 전화를 주셨다. 나이든 남성들이 뒤편에 서 있고, 초등학생들이 맨 앞에 맨살이 다 드러난 공연복을 입은 채 감을 들고 찍은 사진이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연출된 장면이라지만, 많은 분들이 불쾌한 감정을 느꼈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언론사 및 행사주최 측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농협중앙회에서는 바로 사과했으며, 재발방지 및 성인지교육 강화를 약속했다.

몇 년 전 대호농기계 광고사건이 떠올라 씁쓸했다. 전여농은 당시 기계성능과 아무 관계없는 여성의 몸을 선전도구화해 항의했고, 사과문을 받아냈으며 광고내용도 바꿔냈다. 농기계 광고내용이 단지 여성을 상품화했다는 문제뿐 아니라, 농기계는 남성만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에 의한 성차별이 문제임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생활 곳곳에 뿌리박힌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전여농은 올해 여성농민들을 대상으로 성불평등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여전히 가정이나 마을 내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낮았고, 농지 등 생산수단 소유에서도 소외돼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일상화된 언어폭력과 성폭력,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때 혈연, 지연이 강고한 농촌사회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이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원인 제공자’로 공격당하는 등 마땅히 도움 받을 곳을 찾지 못해 폭력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청년여성들의 경우 마을 내에서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성희롱적 발언에 대해서도 기분 나쁘지만 버릇없다고 할까봐 항변하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사진 한 장에 너무 민감하게 구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어떠한 관점으로 여성을 보느냐 하는 것은 이후 여성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에서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단감 홍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여자아이들의 섹시한 공연복 차림이 먼저 눈에 띈 것은 공연을 기획하는 주체나 어른들의 성인지 의식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 사례가 우리생활 곳곳에 고착화돼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 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 농민수당 지급을 둘러싸고 전국 여성농민들은 ‘모든 농민에게 농민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하며 싸우고 있다.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농민들은 농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해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외국 인력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여성농민들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농업소득이 줄어들면서 농가소득에서 농외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주로 여성농민들이 겸업을 통해 농가소득을 유지하고 있어, 여성농민들의 과도한 노동 증가가 문제되고 있다. 여성들이 기존에 하던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 농업노동 등을 누군가 대체해주지 않기에 다른 일을 하는 만큼 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는 사상최악의 기상재해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 농민들의 소득이 반토막 났다. 기상재해로 기형과가 심해 이를 손질해야 하는 여성농민들의 일은 또 얼마나 많이 늘었던가. 소득이 줄어든 것을 메꾸기 위해 여성농민들은 농업 외 또 다른 돈벌이를 찾아 헤맬 것이다.

적당한 노동과 휴식은 여성농민들에겐 꿈같은 얘기다. 청년농 육성, 미래인력 육성을 부르짖지만, 농촌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농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누가 농촌으로 들어와 살려고 하겠는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당연시하면, 사회적 약자인 농민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 또한 당연시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접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인류가 살아남는 길은 협력뿐이라고 한다. 백신을 가진 일부 선진국가들이 살아남더라도 후진국가에서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자리잡는다면 인류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백신을 무상공급하는 등의 배려와 협력이 향후 인류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지 못하다.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 대통령이 17년만에 참가한 것은 대서특필하지만, 재해로 고통 받는 농민들의 생존권에는 관심이 없다. 쌀 수확량이 반토막 났지만, 농민들은 정부가 언제 비축미를 방출해서 그나마 회복한 나락값을 떨어뜨릴지 불안해하는 실정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주권이 위협받는 이 시점에 농민은 안중에 없고, 태양광이나 스마트팜 등 기업의 이익만을 앞세운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함께 몰락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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