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과 꿈꾸는 미원사과연구회

개방 풍파에 맞선 우리 농민들(2)

  • 입력 2020.11.08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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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004년 우리나라가 외국과 맺은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됐다. 농민들에게는 우루과이라운드(UR)에 이어 2차 대(對)개방농정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칠레산 포도의 시장진입을 허용한 결과로 지난 2019년 포도를 키우는 농가는 2010년 대비 39%(1만3,371농가)나 감소했다. 면적으로는 9,152ha(28%)다. <한국농정>은 첫 FTA 협상이 시작된 뒤로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FTA가 우리 농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점검하고, 수입농산물 개방 여파를 이겨낸 농민들의 후일담을 공유한다. 또 앞으로 우리 농정이 이 풍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고민해본다.

 

[예고] 숫자로 느껴보는 ‘개방농정’

① FTA로 농촌이 잃은 것들, 어떻게 보상하나

② 개방 풍파에 맞선 우리 농민들

③ FTA 시대 우리 농정의 방향은

 

미원사과연구회 사과재배 농민 이상철(왼쪽)씨와 윤중근씨가 미원면 내산리 이씨의 과수원에서 올해 사과 작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원사과연구회 사과재배 농민 이상철(왼쪽)씨와 윤중근씨가 미원면 내산리 이씨의 과수원에서 올해 사과 작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에서는 지난 2017년 미원사과영농조합과 청원생명사과작목반이 서로 몸을 합쳐, 청주시 농업기술센터의 지도를 받는 품목별농업인연구회 ‘미원사과연구회’로 재탄생했다. 청주시의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청원생명’의 대표 구성품목 중 하나인 ‘청원생명사과’를 생산하는 거점이 바로 미원면으로, 연구회가 출범하면서 이 지역 모든 사과 농가가 가입했다.

“본래 사과 관련 단체가 두 개 있었어요. 합병 직전에 각각 대표가 된 두 분이 마침 ‘같이 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죠. 개별 농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힘도 없고 행정과 소통이 어렵잖아요. 그런데 60농가가 모이니 우리가 원하는 게 어떤 거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이런 거다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지자체나 농협과 함께 논의하고 같이 사업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윤중근 미원사과연구회 사무국장은 무엇보다도 ‘고여 있지 않은 게’ 연구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연구회가 지역의 사과생산자 대표단체로 자리 잡으니 사과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이 계속 유입되고, 누군가 새로운 지식을 풀면 토론이 이어지고 틀에 박힌 농업을 하던 분들조차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자기 자랑이 될 것 같다며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있게 꺼낸 국내 품종 재배 이야기는 그런 변화 중 하나였다.

농촌진흥청은 매해 ‘최고품질 농산물 생산단지’를 선정해 시상한다. 국내 육성 품종을 재배하면서 규모화를 통한 품질 균일화 및 국내·외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동시에 달성한 농민 집단을 찾는데, 미원사과연구회는 주력으로 재배하던 홍로나 부사(후지) 품종뿐만 아니라 국내 사과 품종인 ‘아리수’ 재배에도 도전한 결과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올해 우수상을 받는 성과를 냈다.

“연구회 출범 직전에 국내 품종 보급 사업이 있었는데, 8농가가 선정이 돼서 식재를 시작했고 이후 계속 확대 보급하려고 노력했어요. 원래는 그게 정말 힘들어요. 사과 농사라는 게 추석 때는 홍로, 설 때는 부사 이렇게 정해져 있는데 그 틈을 파고들려고 심은 거니까요. 뻔하게 명절 맞추는 농사로 가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육성되는 품종으로 틈새시장을 노려보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사과 농사 10년 차인 윤 사무국장은 추석 사과로 홍로가 너무 많아 경쟁력을 고심한 끝에 아리수 나무 100주를 심어보고 주변에 권유해 보급을 확산시켰다. 겉으로 보이는 상품성은 기존 품종에 비해 조금 떨어지지만 맛과 향이 매우 좋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경북권에서 많이 심는 감홍이나 루비에스 품종으로 체험농장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이것도 연구회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밀식재배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올해부터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교육도 받고 그랬죠.”

지난달 25일 이상철씨의 과수원에서 사과 밀식재배에 대한 이씨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는 미원사과연구회 회원들. 윤중근 미원사과연구회 사무국장 제공
지난달 25일 이상철씨의 과수원에서 사과 밀식재배에 대한 이씨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는 미원사과연구회 회원들. 윤중근 미원사과연구회 사무국장 제공

 

연구회는 경쟁력을 키울 발판으로 재배법에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다. 2010년대 들어 기존 재배보다 사과나무 사이 간격을 좁혀 심는 ‘밀식재배’, ‘초(고)밀식재배’의 생산성이 주목 받았고, 사과 주산지인 경북 등지에서는 이미 나무를 모아 키우는 과수원이 많이 늘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도입이 더뎠다. 그러다 윤 사무국장 등 젊은 농민이나 귀농민을 중심으로 낡은 재배방법을 탈피해보고자 하는 회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7년 전 귀농해 과수원을 폭 3.8m에 주간 거리를 1m로 줄여 새로 조성한 이상철 회원의 농장은 회원들 사이에서 성공 사례로 꼽힌다.

“3년 차인데, 아직은 밑 부분에만 많이 달려 있잖아요. 지금은 잡아나가는 중인데 저 위쪽까지 달리기 시작하면 수확량은 훨씬 많이 늘어나겠죠.”

“이 선생님은 굉장히 효율적으로 키우고 계신 거에요. 관행은 4m 폭에 2m 간격 인데, 이렇게 되면 거의 한 그루를 더 심는 거죠. 굵은 가지를 만들지 않을 수 있고 나무들을 잘 정렬 시킬 수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는 거죠.”

사과를 만드는 과정, 무엇보다도 사과의 새빨간 빛깔 그 자체에 매료돼 은퇴 뒤 과수원을 인수하며 귀농에 도전했다는 이 씨는 3년 전 기존 사과나무를 전부 제거하고 수확을 포기하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밀식재배에 도전했다. 아직 나무가 다 자리 잡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전의 수확량을 거의 다 회복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지주와 와이어를 활용해 나무들을 정렬하고 가지의 생육을 조절하기 때문에, 농장 관리가 보다 까다로운 대신 풍파에 의한 가지 부러짐, 낙과 등의 피해가 덜한 장점도 가진다.

“관행하고 다르게 밀식재배를 했을 때는 2년 차부터도 수확이 가능해요. 6년 차 정도 되면 목표로 했던 수확량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제 과수원을 보고 작년에 두 분이 따라서 시작하셨고 올해도 두 분이 동참하셨어요.”

윤 사무국장은 이씨의 성공 이후 보수적인 회원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기쁘다며, 밀식재배에 관심 있는 회원들과 함께 연구모임을 계속할 생각이다. 초밀식재배를 넘어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한 ‘다축형 재배(한 그루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여러 개 올려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재배법뿐만 아니라 물을 자동으로 뿌려 과수원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노지 스마트팜 시설 도입 농가도 등장하는 등 연구회는 출범 이후 긍정적 효과를 연일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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