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소작료도 못 낼 형편이다!’ 기자회견 제목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한 움큼씩 볏단을 쥔 농민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임대료 떼고, 농자재 비용 떼고, 대출금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호소가 뒤따랐다. 벼농사 농업재해를 인정하라는 구호에 농민들은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올해 벼 수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락을 거둔 들판엔 땅이 꺼질 듯한 농민들의 한숨만 가득하다. 올 여름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와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병충해와 쓰러짐 피해를 입은 논에서는 50%에 가까운 수확량 감소가 확인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평년 대비 20~30%의 수확량 감소가 현실로 다가왔다. 일 년 농사를 마무리하고도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농민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모두 다 잃었다는 표현이 진실에 더 가깝다.
통계청은 지난달 8일 쌀 생산량 예측 조사를 발표했다. 전국 쌀 생산량 3% 감소. 이구동성으로 “이런 흉년이 없다”는 농민들이 나락을 베며 눈으로 확인한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수치였다. 하여, 농민들은 통계청의 예측 조사가 엉터리라며 현장 조사를 다시 촉구하고 있다. 통계청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별로 쌀 생산량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현실을 왜곡한 통계청의 쌀 생산량 예측 조사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농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추수를 마무리한 지역에선 농민들의 기자회견이 잇따르고 있다. 나락이 담긴 톤백을 도로 위에 쌓고 도청 앞까지 콤바인을 끌고 와 탈곡을 하는 등 농민들은 올해 농촌이 처한 어려움을 알리려 백방으로 애쓰고 있다. 농민들은 재해 상황이라는데 정책입안자인 정부와 쌀 수매를 전담하고 있는 농협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로 수수방관 묵묵부답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그러나 가득 차야 할 곳간이 비었다. 흉흉한 농심을 달래려면 생존의 위기에 처한 농민들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그 시작은 올해 쌀 생산량에 대한 정확한 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