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로 농촌이 잃은 것들, 어떻게 보상하나

[기획] FTA 시대를 사는 농민들①

  • 입력 2020.09.27 18:00
  • 수정 2020.09.27 19:3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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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004년 우리나라가 외국과 맺은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됐다. 농민들에게는 우루과이라운드(UR)에 이어 2차 대(對)개방농정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칠레산 포도의 시장진입을 허용한 결과로 지난 2019년 포도를 키우는 농가는 2010년 대비 39%(1만3,371농가)나 감소했다. 면적으로는 9,152ha(28%)다. <한국농정>은 첫 FTA 협상이 시작된 뒤로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FTA가 우리 농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점검하고, 수입농산물 개방 여파를 이겨낸 농민들의 후일담을 공유한다. 또 앞으로 우리 농정이 이 풍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고민해본다.

[예고] 숫자로 느껴보는 ‘개방농정’

① FTA로 농촌이 잃은 것들, 어떻게 보상하나

② 개방 풍파에 맞선 우리 농민들

③ FTA 시대 우리 농정의 방향은

 

지난 16일 경북 상주시 서상주농협유통센터에서 열린 캠벨 포도 미국 수출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NH농협무역 제공
지난 16일 경북 상주시 서상주농협유통센터에서 열린 캠벨 포도 미국 수출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NH농협무역 제공

피해보전·폐업지원 직불제도 운용

폐업지원, 예정대로면 올해 끝나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함께 제정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FTA농어업법)」에 따라 우리 농정당국은 FTA 체결로 인해 피해를 입는 농민들을 위한 ‘FTA 국내보완대책'을 실행하고 있다. 대책은 크게 직접피해보전, 품목별 경쟁력 제고, 근본 체질 개선 세 부류다. 세부사업까지 포함해 2008년부터 지난 2019년까지 총 31조955억원이 FTA 국내보완대책을 위해 집행됐다.

직접피해보전은 말 그대로 피해를 입는 농가에게 직접지불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원 대상 품목의 해당 연도 평균가격이 기준의 90%에 미달하고, 품목의 수입량이 기준 수입량을 초과하며, FTA 체결국으로부터의 수입량이 기준수입량을 초과하는 3가지 요건이 모두 갖춰졌을 때 대상이 된다. 기준가격과의 차액의 90%를 개인 당 3,500만원 한도까지 보상하는 식이다.

또한 이 때 해당 품목의 영농을 위한 투자비용이 큰 경우 3년간의 순수익을 지원하며 폐업을 유도하기도 한다. 주로 시설농업이나 과수, 축산이 해당되는데 올해는 돼지고기와 밤이 폐업지원 품목으로 최종 선정돼 신청을 마쳤다. 피해보전 및 폐업을 위한 지원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불 정책으로 이 보완대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폐업지원은 한-중 FTA 발효 뒤 5년간 한시적으로 운용돼 예정대로라면 올해가 마지막 지원이 된다.

축산과 원예에 한정해 생산·가공·유통에 걸친 경쟁력 제고 보조사업도 진행한다. 내용은 다양하지만 상당수는 기존의 농정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던 사업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많다. 축산물은 주로 시설 현대화와 친환경적 사육 환경 조성을 통한 품질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원예 분야는 집약·규모화 및 이를 뒷받침할 브랜드 육성·유통 지원으로 소득 향상을 유도하고 있다. 마지막 범주인 체질 개선 사업의 주 내용은 신규 농업인력 육성·경영체 역량 강화·영농 규모화·생산기반 조성 등이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FTA농어업법’에 따라 FTA 국내보완대책의 성과를 국회에 제출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은 매년 성과분석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2019년 FTA 국내보완대책 농업인지원 성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농경연은 피해보전 직불제의 경우 당시 지원 품목이었던 귀리와 목이버섯에 대해 133.1%의 가격지지율을 보였다며 경영안정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농식품부는 매년 가격지지 목표치로 110%를 설정하고 있는데 매해 이를 웃도는 수치가 산출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농업 부문에서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 농업보조금 제한 의무가 생김에 따라, 농경연은 피해보전 직불의 운용 제한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하고 수입보장보험 활성화와 같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농경연은 올해로 시행기간이 종료되는 폐업지원에 대해서 한우의 사례를 예로 들며 “사육규모와 실질가격이 상승하는 긍정적 영향이 있었지만 폐업 농가들이 다른 품목으로 전환한 결과로 전환 품목의 가격이 하락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등의 부정적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라며 “제도를 일몰 혹은 연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와 후속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농경연은 원예·축산 경쟁력 제고와 체질 개선 사업에 관해서는 전반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수입량에 비할 바 아니나

수출 증가폭은 기대해 볼만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과의 연이은 FTA 체결로 농산물 수입량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아직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원예 작물을 선두로 우리나라도 농업 분야에서 FTA를 활용해 수출량을 늘려가고 있는 모습이 관측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FTA 보완대책 내 수출지원 분야에 총 1,344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지난 2019년의 농식품 수출액은 70억3,000만달러로, 일단 목표치로 설정해뒀던 71억달러에 거의 근접하는데 성공했다. OECD 상위 5개국 농식품 수출액 대비 우리 농식품 수출액은 목표치(7.8%)를 약간 상회한 7.9%를 기록했다. 축산물의 경우 역시 목표 수출 증가율 8%를 넘어선 8.7%의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임산물은 -9.1%를 기록해 사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대폭 개방’의 사례로 꼽히는 한-미FTA의 경우, 우리나라의 대미 농식품 수출액은 발효 전 평균(2007년~2012년)과 비교해 67.2%나 증가했다. 당시 우리 수출액이 연 평균 4억달러였던 반면 발효 후(2012년~2019년)에는 평균 6억7,000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감자, 팥 등의 곡물(22.7%), 배, 김치 등 과일·채소(45%), 라면 등 가공식품(65.4%), 축산물(75.3%)에서 많은 상승을 보였다. 최근 추세로 보아도 대미 수출액은 2018년 8억 달러, 2019년 8억7,400만달러 등 연평균 6.7%의 증가 추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전체 농산물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4%까지 높아졌다.

 

상생기금, 이번엔 내실 채울 수 있을까

현재 시행되고 있는 FTA 대책 가운데 가장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것은 ‘농어촌 상생협력·지원사업 기금(상생기금)’이다. FTA 체결로 농업계가 피해를 보는 반면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분명한 상황에서, 국가 뿐만 아니라 이득집단이 그 피해 보전에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가 탄생을 뒷받침했다.

조성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17년으로, FTA농어업법 개정으로 관련내용이 추가되면서 매년 조성액 목표를 1,000억원으로 하고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을 관리주체로 하는 상생기금이 생성됐다. 법안에서 설정한 목표대로라면 올해 말에는 4,000억원이 기금이 조성돼야 하지만, 지난 8월 기준으로 기금의 규모는 약 833억원에 그쳤다. 특히 올해는 지금까지 모인 금액이 겨우 53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상생기금의 실패는 시작부터 이미 예견돼 있었다. 기금 조성의 근거가 되는 개정안의 탄생배경을 돌아보면 꽤나 흥미로운데, 기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FTA로 인해 이득을 보는 제조·서비스 기업들이 피해산업인 농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2008년 18대 국회에서였다. 당시에는 기금조성이 아니라 그 이득을 측정해 일부를 환수해야 한다는 개념이 주창됐다.

이후 19대 국회에서는 당시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강제성을 띄는 ‘환수’를 한 목소리로 주장했지만, 오히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나서 그들의 이득에 대한 현실적인 계측이 어려워 환수 대상과 규모가 불분명하다며 심사소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제동을 걸었다. 심사소위가 열렸던 시점은 마침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가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자동차 등 FTA ‘혜택품목’의 수출 증가로 51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고한 직후여서 전혀 위원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모습이 속기록에 남아있다.

이 법안은 결국 별다른 의무조항을 넣지 못한 채 폐기됐다. 당시 박민수 의원은 “여러 FTA 협상이 체결되고 있는데 정부, 국회의원 각자의 입장에서 농민과 농업의 피해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라며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어느 누구도 한 일이 없다. 이 조항이라도 만들어서 단초를 삼아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무역이득공유제를 실현코자 하는 염원은 끊어지질 않았다. 3년 뒤 19대 국회 농해수위의 무역이득공유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하는 위원회 결의안까지 받고 나서야 정부는 여·야·정 합의로 농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대신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로 재원을 확보하는 상생기금의 형태로 대책을 마무리 지었다. 누가 내야 하는지 그 대상도 불분명했던 상생기금은 오늘날 그 미진한 실적으로 실효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첫 활동을 시작한 21대 국회는 상생기금의 활성화를 위해 다시금 개정안을 내 여론의 환기를 유도하고 있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은 상생기금 조성액이 연 목표인 1,000억원에 미달했을 시 정부가 이를 채우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냈고,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혜기업의 참여를 강제하고 조성기간을 20년으로 늘린다는 보다 강력한 해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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