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

  • 입력 2020.08.30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전남 곡성군 오곡면 수해 이재민들이 머물던 대피소는 굳게 닫혀 있었다. 지난 8일 폭우로 집이 물에 통째로 잠겼던 마을 주민들이 임시로 지내던 장소였다. 오곡면 주민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지난 20일 군은 대피소를 폐쇄했다. 감염 확산 예방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재민들은 다시 마을로, 수마가 할퀴고 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침수 피해를 입은 각종 가재도구 등은 모두 빼낸 뒤 치워졌지만 방바닥과 벽은 마르지 않은 채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전기가 복구되며 24시간 선풍기를 켜놔도 상황은 비슷했다. 집 벽면엔 침수의 흔적이 물결을 이루며 남아 있었다. 도배와 장판까지 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텅 빈 집에서 만난 한 주민은 최근 며칠간 마루에서 모기장을 치고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8호 태풍 ‘바비’의 북상 소식은 수해로 고통받고 있는 농촌 주민들을 한층 더 시름에 잠기게 만들었다.

농촌 주민들의 삶이 악화일로에 있다. 특히,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에 내몰린 주민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긴 장마와 폭우에 전국 곳곳에서 인명피해를 비롯한 매몰, 침수, 붕괴 등의 재산피해가 잇따랐다. 특히, 피해는 농촌에 집중됐다. 둑이 터지고 강이 범람하며 시설하우스가 엿가락처럼 휘었고 소와 돼지 등 가축을 쓸어가 버렸다. 물살에 휩쓸린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뤘다.

한시가 바쁜 수해 복구 현장엔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작업 중단, 재개가 반복되며 예전의 평온했던 삶으로 하루 빨리 되돌아가려는 농촌 주민들의 의지를 무참히 꺾고 있다.

지난봄엔 갑작스레 찾아온 저온 현상에 개화기를 맞아 꽃을 피운 사과, 배, 복숭아 등의 과수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모두 얼어버렸다. 장마 이후 고추엔 탄저병이, 벼엔 도열병이 발병했다. 올 가을엔 수확할 게 없다는 농민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삼 년 가뭄엔 살아도 석 달 장마엔 못 산다’는 말까지 곱씹게 되는, 그야말로 ‘삼중고’에 빠져 허덕이는 농촌이다. 지금 그곳엔, 지원의 손길이 절실하다.

키워드
#기자수첩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