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2020년 8월 8일 멈춰버린 섬진강의 시간

  • 입력 2020.08.30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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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전남 구례)

설마 설마 했는데 어김없이 물이 들이닥친다. 낮은 곳의 물건을 책상 위로 올리고 잡다한 물건들 한곳에 모아 정신없이 위로 올려둔다. 물이 얼마나 들어왔나 싶어 문을 열어보니 잘 열리지 않는다. 물은 이미 창문 높이만큼 차오르고 있었다. 급하게 창문을 통해 물을 거슬러 높은 곳으로 가서 방금 나온 사무실을 쳐다본다.

물은 쉼 없이 차오른다. 30여분 만에 2층의 절반까지 물이 차오르고 말았다. 냉천삼거리 지리산 관문 바로 옆에 위치한 사무실은 그렇게 잠겨버렸다. 다음 주 월요일 개업 이틀 앞둔 6학년 3반 언니들과의 새로운 꿈은 물 따라 강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

25여 년 동안 “광평리 긴 밭머리 하우스로 가시면 됩니다” 택시기사께 이렇게 말만 해도 찾아와 주시는 비닐하우스는 괜찮겠지 설마 거기까지 들어올까? 이미 바로 앞 논까지는 물이 차 있다. 길 하나를 두고 찰랑찰랑하는가 싶더니 길을 넘어 물이 든다. 우리 하우스도 차는 거야? 100년 이상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하는데 오일시장을 포함해 구례읍의 절반이 물에 차 버렸다.

그 순간에도 재난문자는 계속 들어온다. 섬진강댐의 초당 방류량을 1,000톤에서 1,800톤으로 늘려서, 주암댐은 1,000톤을 방류하니 하류지역 주민들은 조심하라는 문자다. 이미 물이 찼는데, 이미 물이 하류지역을 뒤덮고 있는데 더 늘려 방류를 하니 조심하란다.

내가 무얼 더 조심해야 하나? 집이라도 떼 메고 산으로 올라가라는 문자인가? 기어이 하우스 끝에 발목만큼 차더니 하루를 머물다 빠져나갔다. 10년차 유기농 하우스에서 자라던 채소들에게 흙탕물을 가득 안기고 모든 것에 물을 먹인 채 나갔다.

전기가 나가고 모터가 나가고 하우스를 멈춤의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물에 침수된 작물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임시로 전기를 들여와 환기는 시켰지만 지금도 수리 보낸 모터는 말이 없다.

10평의 저온저장고는 진흙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허벅지만큼 물이 찼었다는 것을 가득했던 물건들이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미숫가루 쑥떡을 꿈꾸던 쑥, 지리산을 헤매며 조금씩 모아 봄내 말려뒀던 건나물들, 저온저장고는 물폭탄을 직격으로 맞은 모습으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당장 먹을 쌀 두 가마니를 포함해 허리춤 위에 있었던 모든 것이 살아남았다. 물이 천정을 넘어 지붕 끝에 닿지 않아,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아, 떠내려가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이제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소떼가 사성암으로 갔다느니 남해바다의 섬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소들이 구례의 수해 소식을 전국으로 알리고 있었다. 망연자실 빨간 눈을 하고 있는 언니들의 꿈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죽어가는 채소들을 살려내야 한다. 시름시름 앓는 소들을 살려내야 한다.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당장 복구에 정신없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며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댐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강 하류의 사람들은 수장돼도 마땅한 사람들인가? 날마다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꾼다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안심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발자국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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