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인가, 경자유전의 원칙인가

  • 입력 2020.06.14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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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여기, 애지중지 농사지어온 땅을 송두리째 빼앗길 처지에 놓인 농민들이 있다. 땅 주인의 대리인과 매년 농지임대차 계약을 맺어 왔고 그렇게 농사짓기를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저농약 농지는 무농약으로, 무농약 농지는 유기농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동안 농민들의 손으로 일궈낸 값진 성과는 좋은 품질의 유기농 쌀로, 합당한 수준의 가격으로 인정받았다. 판로 또한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즉 태양광 발전 사업 추진 소식에 농지 소유주는 임차 농민들에게 경작 금지를 알리며 경작을 지속할 시 형사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난 8일엔 보리 수확이 끝난 논에 모내기를 준비하려는 농민들을 막기 위해 굴삭기까지 동원해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까지 이르렀다. 농민들은 유기농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내 땅처럼 여기며 경작해온 그간의 고생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꼴이 된다며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전남 해남군의 ‘혈도간척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간척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세우려고 하는 공기업과 이에 발맞춘 농지 소유주에 맞서 힘들게 농사지어온 농지를 빼앗기지 않으려 버티는 임차 농민들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농지 소유주와 임차 농민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례로 농지임대차 과정에서 실제로 농사짓는 이들이 받아야 하는 직불금을 농지 소유주가 요구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내줄 수밖에 없는 직불금 부당수령 사례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결국, 이는 농사짓는 이가 논·밭을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문항이 사문화된 탓이 아닌가.

10여년의 세월 동안 간척지를 비옥한 땅으로 가꿔 유기농사를 일군 농민들의 수고로운 노동이 농지 소유주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아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농지 소유주의 경고대로 법정 공방까지 치달을 경우, 과연 대한민국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사유재산인가, 경자유전의 원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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