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만들고 농민이 소외된 공공급식 체계

[2019 농업결산] 친환경농업&공공급식

  • 입력 2019.12.22 18:00
  • 수정 2019.12.24 15:0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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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19년 지자체들의 친환경 공공급식 정책은 사실상 농민들과 동떨어진 채 이뤄졌다는 게 농민들의 평이었다.

친환경차액지원 예산 어디로?

충청남도의 경우, 올해 229억8,000만원의 친환경급식 식재료 차액지원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차액지원사업이 실시됐어도 학교급식 참여 친환경농가들은 이점을 피부로 느끼기 힘들었다는 입장이다.

보령시 친환경 학교급식에 참여 중인 유승덕 보령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양파와 무, 고추 등을 재배한다. 올해 고추의 경우 1근당 1만6,000원에 학교로 공급했다. 이는 지난해 학교 공급가격 대비 20% 낮은 가격이었다. 올해 보령에서도 고추와 양파 생산량이 늘어나 가격 폭락 추세가 이어졌다. 차액지원사업 실시 목적 중엔 급식 참여 친환경농가의 가격안정 목적도 있음에도, 지자체의 관리 부실로 제 값에 친환경농산물 공급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유 회장의 설명이다.

태안군의 경우, 친환경 고추 1근당 1만4,000원 수준으로 학교에 공급됐다. 이는 매장에서 팔리는 관행 고추 가격인 1근당 1만5,000원보다도 낮은 가격이었다. 친환경 고추 1kg당 4만5,000원은 돼야 농가들 입장에서 인건비라도 건지는데, 현재 태안의 경우 1kg당 3만5,000원 밖에 못 받는 상황이다. 태안의 한 농민은 “그나마 올해 내가 납품하던 학교에선 친환경 고추는 안 받고 관행 고추만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충남 천안시에서 열린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진대회에서 한 농민이 ‘공적조달체계 확립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4일 충남 천안시에서 열린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진대회에서 한 농민이 ‘공적조달체계 확립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아직도 갈 길 먼 민·관 협치

각 지자체의 민·관 협치 체계에도 허점이 보이고 있다.

충남 홍성군의 경우, 지역 학교급식지원센터 의사결정구조에서 생산자단체가 소외된 채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홍성군 학교급식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는 물품선정분과위원회 운영 과정에서 홍성친환경농업인연합회 등 지역 농민조직 참여가 배제된 채 행정, 영양담당자 등의 단위끼리만 논의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가 상승분이 반영돼 매년 2%씩 급식비 인상이 이뤄짐에도, 학교현장에선 시중 가격보다 싼 농산물 가격을 요구 중인 상황이다.

전라북도에선 광역급식지원센터 설립 목소리가 높다. 전북도에서도 광역센터 설립 TF를 구성한 뒤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나, 농민들로서는 우려가 많다.

조성근 전북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처장은 “농민단체들은 공공성 담보를 위해 재단법인 형태의 광역센터 설립을 요구 중인데, 정작 이에 대한 전북도의 답변은 없다”며 “도 직영 재단법인으로 가려면 최소 2~3년간의 준비가 필요하며, 계약생산을 위한 지역별 데이터도 축적해야 한다. 그러나 전북도는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 밝혔다.

일부 농촌 지자체의 경우 학교급식지원센터 자체가 없어서 지역 농민조직들이 참여할 민·관 논의의 장도 찾기 힘들다. 한 농촌 기초지자체의 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매년 적자를 보면서도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농촌 아이들에게 먹이겠다는 생각에 영농조합 자체적으로 친환경 학교급식을 진행한다. 우리가 문닫으면 지역 친환경급식도 중단되는 셈”이라며 “군청에도 재단법인 형태의 먹거리지원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해 왔지만, 군청에선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공공급식 발전 위한 농민들의 노력

각지의 농민들은 관(官)이 여전히 미온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공공급식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경기친농연은 올해 봄 (재)지역재단과 함께 산지조사사업을 벌여 전반적인 작황과 품위를 파악했다. 또한 일부 품목재배 농가들은 연구조직을 만들어 기술교류 및 개발 노력을 기울였다. 경기친농연 사과연구반의 경우 매년 사과 품위기준을 높이고자 기술개발에 정진해, 지난해 25톤이던 친환경사과 출하량을 올해 36톤으로 늘렸다.

전북친농연은 최근 설립한 전북친환경연합사업단을 통해 자체적으로 각 지역별 농산물 생산량 및 학교급식 출하량 등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이 데이터를 모아 광역급식지원센터 설립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교급식 이외의 공공급식 정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충남친농연은 지역아동센터에 친환경먹거리 공급을 시작했다. 충남친농연은 학교급식 배송망을 이용해 홍성군에서부터 역내 12곳의 지역아동센터에 먹거리 배송 및 지역센터 아동 대상 식생활 교육을 진행한다. 충남친농연은 전농 충남도연맹, 부여여성농민회 등 지역 농민조직들과의 연대로 친환경 공공급식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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