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돼지 통해 소농이 유지되는 새로운 대안 찾겠다”
“재래돼지 통해 소농이 유지되는 새로운 대안 찾겠다”
  • 홍기원 기자
  • 승인 2019.04.1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 송학농장, 1990년대부터 대 이어 재래돼지 보전 노력
종개협, 9일 농장 방문 조사 … 최초 토종돼지 인정 받을까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돼지농장에 이유두수가 고작 2두인 모돈이 있다면 어떨까. 농장주는 당장 돼지농사를 망쳤다고 탄식을 할 것이다. 다산성모돈이 인기를 끌면서 너나없이 종돈 수입에 열을 올렸던 최근 흐름을 생각하면 기막힌 상황이다.

포항시 송학농장은 지난 1992년부터 이 돼지를 27년 동안 사육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종과 교잡하기는커녕 이 돼지의 순종을 골라 보전하는 데 집중했다. 이 돼지의 종 이름은 그저 ‘재래돼지’로 불린다.

이석태 송학농장 대표는 1990년대 사라진 토종가축을 보전하는데 뜻을 두고 제주, 남원, 고성, 지례 등 전국의 흑돼지 산지에서 재래돼지에 가까운 돼지를 수집했다. 재래돼지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져 기록에만 그 특징이 남아있다. 이 대표는 기록에 남겨진 외모대로 재래돼지에 가까운 돼지를 선별해 약 400여두의 돼지를 모았다.

현재 송학농장은 이 대표의 아들 이한보름 부대표(농학박사)가 운영하고 있다. 이 부대표는 1995년 석사논문을 준비하며 송학농장 재래돼지의 유전적인 특징을 연구했다. 송학농장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경상북도 지원을 받아 영남대학교 축산학과 유전학 연구실과 산학협동으로 유전적으로 고유한 한국재래돼지 집단을 선발하게 된다. 또, 총 7개의 재래돼지 특이 DNA 마커를 개발해 국내 최초로 특허 등록도 했다.

외형적·유전적으로 고유한 재래돼지를 선별했지만 민간농장이 막상 종을 보전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식당을 차려 재래돼지를 판매하려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 부대표는 “식당보다 농장이 버티질 못했다. 결국 판매는 접고 지금까지 종 보전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농장엔 종돈 10두를 포함해 200여두의 재래돼지가 남아있다.

이 부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송학농장의 재래돼지는 이유두수 2~6두에 9개월을 사육하면 80㎏까지 성장한다. 2년 가까이 키워야 150㎏까지 큰다고 한다. 우리나라 평균 이유두수는 10두 내외이며 115㎏ 규격돈 사육까지 약 200일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치명적인 생산성이다. 그는 “소형종이라기보다 만생종이다”라면서도 “재래종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협회까지 구성하며 재래돼지 사육이 번성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2010년 구제역 발생에 번식기반이 무너지고 재래돼지 농가들이 경영난에 시달리며 이제 극소수의 재래돼지만 남은 상태다.

지난 9일 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송학농장에서 최임수 한국종축개량협회 등록심사팀장(앉은 이)과 이한보름 부대표(왼쪽 두번째)가 재래돼지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일 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송학농장에서 최임수 한국종축개량협회 등록심사팀장(앉은 이)과 이한보름 부대표(왼쪽 두번째)가 재래돼지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쉐프 통해 재래돼지 알려야

이 부대표 역시 한 때 재래돼지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2년 전 프랑스 토종닭 프로젝트를 견학한 뒤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토종닭인 브레스닭으로 요리를 하는 쉐프를 만났는데 그가 토종닭협회장이더라. 농가들에게 물어보니 그 쉐프가 소비자들에게 이 닭이 왜 맛있는지 어떻게 요리하는지 알려 브레스닭이 유명해졌다고 한다”면서 “소비자들은 품종엔 큰 관심이 없지만 쉐프의 말은 듣는다. 그리고 쉐프는 식재료의 품종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쉐프를 통해 재래돼지를 알리는 방향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재래돼지는 육질과 풍미에서 높은 상품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원재료만으로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없다. 지금처럼 삼겹살, 목살 등 구이용이 주로 소비되는 시장에선 재래돼지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다. 쉐프가 재래돼지에 맞는 요리를 개발하고 레시피를 보급해 고급육으로서 위상을 확보해야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후 이 부대표는 다시 유전학적 연구를 재개했다. 기존 연구는 재래돼지의 차별성을 파악해 종을 보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부터는 육질에 연관된 DNA를 파악해 퀄리티를 높이기 위함이다. 건조숙성 가공장을 지어 재래돼지 생산자와 쉐프, 그리고 소비자가 만나는 공간도 구상 중이다. 이 부대표는 “우리농장 재래돼지는 외래 품종은 물론 제주 재래돼지와도 유전적 차별성을 지닌 집단이 구축된 게 확인됐다”라며 “일본처럼 지역적 특색을 살려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종으로 소농 살리자

송학농장은 최근 토종가축 인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9일엔 한국종축개량협회 종돈개량부에서 농장을 찾아 재래돼지 사육현황을 조사했다. 농장을 찾은 최임수 종개협 종돈개량부 등록심사팀장은 “이전에 축산과학원과 산우리농장이 최초로 재래종 품종등록을 한 바 있다. 2013년 토종가축 인정 기준이 만들어진 뒤로 이 농장이 최초로 토종돼지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고 부연했다. 최 팀장은 “토종돼지는 선형심사상 모색은 순흑색에 거칠어야 하고 머리는 가늘고 긴 편에 미간에 주름이 산(山) 모양으로 잡혀야 한다. 또, 귀는 직립해야 하고 옆구리에 주름이 잡히고 둔부는 협소해야 한다”고 묘사했다.

이 부대표는 “종을 보전하려면 근친교배를 피해야 해서 어떻게든 계대를 벌려야 하는 게 숙제다”라면서 “농장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장차 소농들이 재래돼지의 부가가치를 높여 일정 소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만들고 싶은 모델이다”라면서 “현재로선 소농들이 양돈으로는 유지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재래돼지가 돈이 되면 작은 농장이 유지되고 농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주할 수 있지 않겠나. 규모화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