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과거 농특위, DJ정권서 탄생해 MB정권서 끝나
[신년특집]과거 농특위, DJ정권서 탄생해 MB정권서 끝나
  • 원재정 기자
  • 승인 2019.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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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로 본 농특위, 지난 정부 국제통상 환경 변화로 출범
대통령 직속 농정협의체 위상, MB때 장관 직속 강등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어업·농어촌발전특별대책위원회(농특위)의 출발은 지난 2002년, 김대중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11월 14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의 출범을 위한 도하개발안젠다(DDA)가 채택되고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 협상이 시작되는 등 농산물 개방정책이 본격 시작되는 시기, 즉 국제무역환경 변화가 농특위의 출범 배경이다.

김대중정부는 시대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농어업·농어촌 중장기 정책방향을 세울 필요성을 느꼈고, 정권 후반부에 대통령 자문기구로 농특위를 설치했다. 농어민, 소비자,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 ‘협치농정’을 통해 농업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법적 기반을 갖춘 농특위는 2002년 2월, 3년 한시기구로 출범했으나 2004년 12월 법 개정을 통해 2007년 말까지 활동이 연장됐다가 3년 더 연장하는 법 개정 끝에 최종 2009년까지 활동했다.

대통령 자문기구로 역할을 부여받은 농특위는 2003년 2월 시작된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직속기구(부총리급)로 격상됐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정부는 지난 정부 흔적 지우기의 일환이자 ‘농어업선진화위원회’라는 새로운 틀을 꾸리면서 농특위를 농림부 장관 직속으로 강등시켰다. 농특위는 무용론이 대두되면서 출범한 지 8년만인 2009년 12월 결국 폐지됐다.

농특위가 운영되는 8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출범 초기만 해도 농민단체 불참 선언에 반발 성명까지 코너에 몰리기도 했다. 2007년 법정 일몰시한을 앞두고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가 3년 연장 법안을 낼 당시 농업계 여론은 농특위에 대한 ‘애증’이 그득했다.

2007년 9월 <한국농정> 사설 ‘농특위 존속 3년 연장의 전제조건’을 보면 “농특위가 출범하던 초기에 농민단체들이 불참을 선언하는 등 파행을 겪은 적이 있는가 하면, 지금까지도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민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농업정책을 수립하여 이를 추진토록 관계부처에 통보해야 할 농특위가 심지어 농민단체들이 강력한 반발을 사는 농림부의 입안정책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우를 범하는 등 농특위에 대한 개편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지난 과오를 들췄다. 하지만 농림부가 3년 연장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일단 농특위가 앞으로 더 존재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손을 들어줬고, 농업계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농업·농촌 종합대책과 119조 투융자 계획’ 등의 관철 △농지제도 개선 △직접지불제 확충 △농촌사회 안전망 구축 등에 대한 논의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 적지 않은 평가를 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명맥은 이명박정부까지 이어지긴 어려운 구조였다. 게다가 농림부 내에 ‘농어업선진화위원회’까지 만들어지면서 결국 2009년 정리됐다. 하지만 농민단체 내에서는 농어업선진화위원회가 법률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라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명문화된 농정협치기구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모은 것이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자문위원회 농정개혁TF는 지난해 10월 30일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2002년 김대중정부의 농특위에 대해 “국민적 합의로 농어업·농어촌발전 중장기 정책방향과 실천계획을 협의했다”고 의미를 밝혔지만 “관 주도, 관계부처 참여 저조, 현안 위주, 국민 참여 미비, 사무국 공무원 중심 운영 등”을 한계로 지적했다. 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올해 4월, 10년 만에 농특위가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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