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도, 자체기술도 없는 스마트팜 확대는 불가능”

[인터뷰] 최영찬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 입력 2018.07.22 08:00
  • 수정 2018.07.22 19:4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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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최영찬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지난 9일 농식품부가 주최한 스마트팜 혁신밸리 정책 관련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에 대규모 스마트팜 밸리 조성을 추진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현재로선 생산기능 대신 연구와 교육, 실증 위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 대부분은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최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 대해 “농식품부는 사실상 (혁신밸리 사업을 추진한다는)답을 정해놓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느낌”이었다고 비판했다. 오랫동안 우리 농업·농민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최 교수를 지난 12일 직접 만나, 스마트팜 혁신밸리 계획의 문제점에 대해 들었다.

정부는 토마토, 파프리카 등의 수출시장을 일본에서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다변화한다는 입장이다. 수출시장을 비롯한 판로 다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중국은 남방지역에서 대규모로 채소작물을 많이 생산한다. 중국에서 과연 우리나라보다 좋은 조건으로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팔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좋은 가격 조건 형성이 가능하다면 진즉에 우리 양파나 마늘 등 다른 작물이 중국에 수출됐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일본에도 그 동안은 파프리카를 많이 수출해 왔지만, 최근 일본 내 한국산 파프리카 가격이 폭락한 상태라 수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기본적으로 과일 및 채소 생산을 많이 하는 지역이라 제대로 된 판로 개척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스마트팜을 확산시키려면 판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생산물을 제대로 팔아줄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국내 시설채소 농가들만 봐도 큰 조직이 없고 일부 시·군 조직이 있을 뿐이다. 계약생산 농가도 드물다. 따라서 각 농업분야별로 규모화된 조직의 설립과 계약재배 농가 확대부터 시급하다.

정부는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유능한 청년농을 유입시켜 일자리를 창출한단 계획이다.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은?

스마트팜 사업은 일자리를 늘리는 사업이 아니다. 스마트팜 자체가 기계자동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라, 이를 추진하며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네덜란드처럼 시설농업이 주가 되면서 토지면적이 작고 임금이 비싼 나라들이 노동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하는 정책이 스마트팜이다.

정부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추진과정에서 네덜란드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걸로 보인다.

우리는 네덜란드 농업을 마냥 벤치마킹할 수 없다. 화훼 중심의 시설농업 발전 과정에서 낙농업을 주요 농업으로 발전시킨 네덜란드와, 쌀을 비롯한 식량작목 위주의 농업을 하는 우리나라 농업구조의 차이도 크다. 결정적으로, 네덜란드는 주변에 프랑스, 폴란드 등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수출할 나라가 많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스마트팜 혁신밸리 추진을 위한 국내 자체적인 스마트팜 기술 수준은 어떻게 되나?

우리나라의 현재 기술 수준으로 스마트팜 확대 추진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유리온실은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들여오고, 연동형 유리온실 관련 기술은 스페인에서 수입한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의 기술을 수입한다.

그나마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복합환경제어기술 개발에 매진 중인데, 이 기술이 유효하려면 우리 자체적으로 생육 데이터, 즉 온도·습도·이산화탄소량 등 생육에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이 생육 데이터가 전무한데, 데이터 확보를 위한 자체 모니터링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마트팜 확대를 위해 필요한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혁신밸리 사업을 추진한다면, 모든 기술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혁신밸리 사업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가?

국내에서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연구·교육단지 성격으로 기획됐는데, 왜 갑자기 생산단지까지 포함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농식품부의 농업정보화 정책 관련 논의과정에서도 내가 빠진 적이 없는데, 이번 혁신밸리 논의 과정만큼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나도 잘 모르는 상태라 답답하다.

현재의 혁신밸리 사업 과정에서 청와대의 의지가 발현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이미 올해 1월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현수 농식품부 차관과 함께 전북 김제의 (주)농산무역을 방문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농산무역은 자동화된 유리온실에서 일본 수출용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곳으로, 당시 이 총리의 방문도 스마트팜 육성을 위한 정부의 의지 표현 차원에서 이뤄진 듯하다.

그렇다면 스마트팜 관련 사업은 어떤 식으로 추진해야 하나?

사업을 추진한다면 스마트팜 관련 교육과 연구, 실증 위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맞다. 그러면서 점차 농가의 시장 확보를 위한 유통조직 육성 및 스마트팜 관련 자체 기술 확보, 산학연 연구 촉진 등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벤치마킹하려는 네덜란드도 네 군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려는 우리와 달리 딱 한 군데에 스마트팜 밸리를 만들었다. 바게닝겐 대학이 운영하는 이곳은 네덜란드의 농업 대학 및 연구소, 농업기술 관련 기업이 총집결한 곳으로, 철저히 연구·교육·실증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요컨대, 스마트팜 자체는 지속적인 교육과 연구가 필요하나 현재와 같은 혁신밸리 추진 방식은 현실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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