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국회의원 출신 장관도 ‘무기력’

[ 기획 ] 문재인정부의 ‘박근혜농정’

  • 입력 2017.08.26 22:58
  • 수정 2017.09.03 09:0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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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각 분야의 여론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서민 주거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역대 최대의 인상률로 2018년 최저임금을 진통 끝에 탄생시켰다. 반면 농업계는 ‘변화의 바람’이라곤 1%도 없는 무풍지대로 100일이 흘렀다. 문재인정부의 농정은 왜 제자리인가, 실태를 담아본다. 

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농식품부

② 야당 국회의원 출신 장관도 ‘무기력’

③ 대선공약 폐기하고 박근혜농정 답습


“이번 참에 농정을 싹 갈아엎지 않으면, 농민들 희망이 있간디? 근데 어째 장관이 불어터진 국수같이 멀거니, 밀어 붙이는 힘이 없어 봬.”

김영록 장관이 지난 7일 전남 진도에서 농민간담회를 연다기에 무슨 얘기를 하려나, 진도군청을 찾았던 농민의 후일담이다. 야당시절 농민들을 대변했던 그 카랑카랑한 힘이 당최 보이질 않는다는 아쉬움도 털어놓는다.

지난 7월 4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취임식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국무위원 입장 이해해 달라는 ‘약한’ 모습에 실망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문재인정부 첫 농정수장으로 취임한지 50여일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로 취임 100일이 지났다. 문 대통령 100일의 국정평가는 총평에선 높은 점수를 얻은 반면 농업계에선 맹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100개의 국정과제 속에 포함된 농정과제가 대통령 공약과 비교해 ‘개혁성’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농업문제는 촛불정권에서도 여전히 찬밥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들판을 가득 채우는 실정이다.

문제는 진도간담회에 참석했던 농민의 한마디처럼, 김 장관의 농정도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진도간담회는 김 장관의 면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아직 장관의 농정평가를 말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전 장관들이나 다를 게 없다”고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참석한 농민들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의원시절 가졌던 소신과 국무위원이 된 입장의 간극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특히 농업예산 축소문제도 털어놨다.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장관이 됐다고 한번에 다 명령하던 체제가 아니다, 장관이 됐다고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니 이해해 달라, 농업예산문제도 중재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는 등의 발언이 무력함 그 자체였다.

한 농민은 “국회의원 때 주장했던 것들을 해 보려고는 하는데 기대치만큼 못할 수도 있으니 이해해달라는 말에 기운이 빠졌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특히 농업예산에 대해 국무회의 때 대차게 ‘질러대지’ 않은 것을 두고도 쓴 소리를 했다.

이 농민은 “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농업예산 축소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 간담회에서도 농업예산 얘기를 꺼내면서 국무회의 때 난감함을 말했다. 농식품부 장관으로 대통령한테 농업예산을 줄이면 안 된다고 강력히 얘기했지만, 국가 전체의 효율적인 예산집행과 투자부분에서, 국무위원으로서 이해해달라. 그러면 좋지 않겠냐고 대통령이 말했다면서 참 난감하다고 했다”면서 “보아하니 내년 농업예산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답답해했다.

농민 대변하던 야당 국회의원, 옛말?

김영록 장관은 농해수위 야당 의원을 지내던 2015년 12월 22일 “쌀 재고가 넘쳐나는 실정에서 정부가 지난 7월에 이어서 또 다시 밥쌀용 쌀 3만톤을 추가 수입하겠다는 것은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밥쌀용 쌀 수입을 철회하고 보관창고마저 없어 홀대 받고 있는 농민들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서릿발 같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12월 27일 역시 농해수위 야당 의원으로서 쌀목표가격 결정에 진통을 겪을 때 “연내에 쌀 목표가격을 정하지 않을 경우, 입법 불비에 따른 변동 직불금 지급이 불가능해져 혼란과 반발이 야기된다. 농정표류에 대한 모든 책임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농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안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고 철야농성을 시작하는 결기도 보였다.

김 장관에게 거는 농민들의 기대는 야당 국회의원 시절 누구보다 농업·농촌·농민 문제에 앞장섰던 그의 과거에서 출발한다.

농정개혁, 지금 아니면 늦다
정치력으로 승부해야

지난 6월 안개 속에 가려졌던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로 ‘김영록’의 이름이 드러나면서 농업전문가라는 부분에 후한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 농정변화의 희망은 크게 낙관할 수 없는 처지다. 농정개혁위원회를 장관 직속으로 설치했지만, 구성과 운영의 면면에 대한 미더움과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한 목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계란대란’으로 장관이 진땀을 흘리고 혼란을 겪고 있지만 농식품부의 모든 조직이 새로운 농정 틀을 짜는데 온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농민들의 한목소리다.

진도 농민 조권준(66)씨는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듯 지금 농정을 싹 다 바꿔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쌀값대책, 농산물값 대책, 지주회사로 개악된 농협을 다시 연합회로 바꾸는 농협개혁 문제, 하나같이 어렵다. 농업이 힘이 없는데 순하게 기다리다가는 결론이 나질 않는다”면서 “새 정부 초반에 거칠더라도 대차게 농정개혁을 선언하고 성큼성큼 나가는 장관의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공무원 세계가 보수적이다. 장관이 바뀐다고 실·국장부터 직원들까지 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초반부터 장관이 자기 색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농정철학이 뭔지, 명확하게 잘 파악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전 장관들이 ‘디테일’을 챙겼다면, 현 장관은 농정과제를 분명하게 밝히는 차별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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