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

  • 입력 2014.09.21 20:5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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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됨에 따라 2011년 7월부터 한 사업장 내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졌다. ‘노조 파괴 전문업체’라 일컬어지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은 이를 이용해 여러 회사의 금속노조를 와해시킨 것으로 악명이 높다.

창조컨설팅의 시나리오는 뻔하지만 저항할 수 없다. 사내에 존재하는 전국단위 금속노조와 별개로 회사가 노조를 설립하고 회와 협박 등 직원들에게 구속력을 행사해 그들을 사측 노조로 끌어들인다. 기존의 노조는 온갖 탄압과 징계로 압박한다. 결국 조합원을 대거 뺏긴 기존의 노조는 유명무실해지고 더 이상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없게 된다. ‘회사의 사람’이 돼 버린 사측 노조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계육협회가 육계협회로 글자 위치 하나를 바꾼 데 대해 양계협회가 기를 쓰고 반대하는 모습이 혹자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고 어이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른바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육계협회’ 명칭은 ‘계육협회’에 비해 확연히 생산자단체의 분위기를 풍기며 실제로 육계협회는 회원사 계열농가들을 속속 협회에 등록시키고 있다.

양계협회와 육계협회는 그 동안 민감한 사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며 서로를 견제해 왔다. 양계협회의 우려는 다른 것이 아니다. 육계협회가 양계협회의 정체성을 침범해 농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양계협회의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열사와 농가의 화합을 내세운 육계협회지만 업체들과 농민들의 권익을 동시에 대변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것은 농식품부의 태도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한 농식품부의 대표는 생산자단체 개념정의를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듯한 투로 청중과 토론자들을 설교했다. 실로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좀 더 진중한 자세가 아쉽다.

복수의 생산자단체, 육계협회의 계열농가에 대한 구속력, 전형적 갑을관계. 양계업계의 판이 금속노조 몰락 사례와 꼭 닮은 조건을 갖춰가고 있다는 점은 무척 걱정스러운 일이다. 비록 육계협회에 그와 같은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이는 업계 모두가 문제를 공감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며, 농식품부도 한층 진지하게 해결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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