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아닌 ‘생산자’ 인정할 수 있나

육계협 생산자단체 표방에 양계협 ‘용납불가’
단체간 의견차 뚜렷 … 농식품부 개선의지는 ‘물음표’

  • 입력 2014.09.21 21:02
  • 수정 2014.09.21 21:0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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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가 한국육계협회(회장 정병학, 구 한국계육협회)의 협회 명칭변경을 승인한 것에 대해 대한양계협회(회장 오세을)가 반발하자 이동필 장관은 지난달 22일 명칭변경 승인 철회는 불가하되 양계협회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양계협회는 도축·가공업체로 구성된 육계협회가 생산자단체를 표방할 경우 생산자 권익 보호에 심각한 장애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장관에게 전한 양계협회 요구안의 핵심은 ‘생산자단체’ 개념의 명확한 정립.

이에 지난 16일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이 주최하고 국회 농해수위, 농식품부, 7개 축종단체가 주관한 ‘생산자 및 생산자단체의 개념정의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하지만 단체 간 뚜렷한 입장차만 확인했으며 정작 중재에 나선 농식품부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생산자 및 생산자단체의 개념정의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축산업은 사료·유통·가공 등 여러 과정이 생산과 분리돼 점차 세분화돼 왔다. 더욱이 생산 이외의 분야가 축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생산자 권익 보호를 위한 생산자단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생산자와 생산자단체의 정의는 세분화된 축산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상 생산자와 생산자단체는 해석에 따라 ‘농민’이 아닌 이들까지 포용하게 되며 축산법 등 여타 법령에서의 정의도 조금씩 달라 혼란의 소지가 있다.

김윤두 건국대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각 법률마다 용어의 정의가 일치하지 않아 필요에 따라 생산자단체의 정의를 확대해석할 우려가 있고 ▲농식품부도 관행적으로 생산자단체라는 용어를 공문에 사용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농식품부로부터 인가받은 축산관련단체들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는 등의 문제를 들어 생산자단체의 정의와 그 지원 대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용어 정의의 방향에 대해서는 각 축종단체들과 육계협회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지정토론에 참석한 4개 축종단체 대표들은 생산자단체의 범위를 최대한 축소해 가축을 직접 사육하는 농민들의 단체로 규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홍재 양계협회 부회장은 “산업이 발달할수록 생산부문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FTA문제 등 대책을 마련할 때 같은 축산업계라도 어느 쪽을 대변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충돌하게 된다”고 지적했고, 정선현 한돈협회 전무도 “생산자단체는 노조와 같은 성격이라 생각한다. 유사 단체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해 FTA 시대에 농가가 숨통이라도 틀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육계협회 측 입장은 정 반대다. 박상연 육계협회 부회장은 “FTA 위기가 가속화되고 닭고기 가격이 폭락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시급한 문제를 제쳐두고 생산자단체 정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 시점에 생산자단체의 정의가 필요하다면 종축·부화·사육업 외에 사료·동물약품·도축·가공·유통·식육판매업까지 확대해야 한다. 농식품부의 정책방향도 6차산업 등으로 넓게 보고 있으며 농식품부의 부서명칭 또한 그런 의미”라고 주장했다.

▲ 지정토론에서 축종단체들과 육계협회의 견해가 크게 엇갈렸다. 박상연 육계협회 부회장(왼쪽)은 생산자단체의 범위를 확대할 것을, 이홍재 양계협회 부회장은 최대한 축소할 것을 주장했다.

적극적인 관심을 쏟을 것으로 보였던 농식품부 측은 막상 논의가 이뤄지자 냉소적인 모습이었다. 김종구 농식품부 축산경영과장은 “생산자단체의 정의가 모호하다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농업농촌기본법상 정의를 축산법에서 인용하면서 조금 확대한 것”이라고 운을 떼며 “법률용어와 생활용어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 요구하는 내용을 들어 보면 생산자단체가 아니라 ‘품목별 농민단체’에 대한 정의를 해달라는 것인데, 이는 민법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토론회엔 정확하게 법을 전공한 사람이 와야 한다”고 훈계조로 말해 좌중의 빈축을 샀다.

청중으로 참석한 충북 증평의 한 농민은 “김종구 과장은 자기가 생각하는 용어를 여기서 호도하고 있다. 토론에 참석한 정책 집행자가 다른 의견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식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발제자인 김윤두 교수도 “지금 중요한 것은 왜 이것(생산자단체 정의)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지 용어의 문제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양계협회와 육계협회의 갈등으로부터 불거진 ‘생산자단체’ 개념정의를 위한 첫 발걸음은 서로간의 분명한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더욱이 장관의 약속에 따라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로 한 농식품부가 되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은 앞으로도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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